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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의 잠정 합의안은 노동 배제의 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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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사정의 잠정 합의안은 노동 배제의 연장이다 [민교협의 시선] 한국사회의 노동 배제와 매도, 도를 넘었다
최근의 한국 언론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노동운동에 대한 배제와 매도를 노골적으로 자행하고 있다. 이들 언론은 코로나 이후의 위기 상황에서 모처럼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협력과 상생의 정신에 입각하여 합의안을 마련할 수 있었는데, 오로지 투쟁에만 골몰하는 민주노총의 강경파들 때문에 이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판이라며 연일 이들을 성토하고 있다. 조중동은 물론, <경향신문>은 “민주노총의 고질적인 정파 갈등이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라고 보도했고, <한겨레>도 “22년 만에 민주노총까지 참여한 사회적 대화로 기대를 모았던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가 민주노총 내 강경파의 반발로 끝내 불발됐다.”라고 보도했다. 이어서 정파가 없는 김명환 위원장을 정파들이 공격한다는 식으로 살짝 비틀은 기사도 보인다.

노사정 대화의 발목을 잡은 정파나 강경파는 없다

민주노총 안에 크게 현장파와 중앙파, 국민파의 정파가 있다. 정파 사이의 분열이 때로 노동운동에 장애가 된 적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최소한 이번만큼은 아니다. 강경파인 현장파와 온건파인 국민파에 이르기까지 대다수 노동자들이 노사정 잠정 합의안의 폐기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현장파 활동가들은 노사정 대표자 협약식을 막기 위해 민주노총에서 지난 1일부터 시위를 벌였으며, 국민파에 속하는 ‘민주노동자전국회의’(전국회의)는 지난 2일에 독소조항이 있는 합의안을 폐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서 중앙집행위원 34명도 잠정합의안을 폐기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 성명에는 민주노총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 대표자 이름도 올랐으며, 성명에 동참한 조직은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의 70%를 차지한다. 김명환 위원장을 전면적으로 비판하는 7월 3일의 합동성명서에는 부위원장 7명 중 6명, 산별노조대표자 16명 중 8명, 지역본부장 16명 중 16명 전원이 연서명을 했다. 정파의 구분 없이, 강경파와 온건파의 구별 없이 민주노총의 대다수가 잠정합의안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대로 합의가 되면 가장 큰 고통을 당하고 당장 생존위기에 놓일 비정규직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들이 매우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언론은 노동자의 최소 요구조차 수용하지 않은 데 따른 당연한 반발을 정파 갈등으로 프레임을 구성하고 있다. 더 나아가 민주노총 안의 강경파들이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시대적 요청도 거부하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것으로 조작도 하며 국민의 공분을 조장하고 있다. 아마 며칠 안으로 한국 노동운동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비판하고 노동운동의 변화를 요청하는 분석 기사나 칼럼들이 쏟아질 것이다. 그동안 정부와 자본의 총공세로 생존위기에 놓여 노동자들이 이를 반대하는 행동에 나설 때마다 ‘빨갱이, 용공, 종북’으로 매도한 것과 궤를 같이 하는 여론 조작이다. 백보 양보하여 설혹 소수 강경파가 발목을 잡은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강경이 곧 악은 아니다. 삼전도 굴욕이나 을사늑약에서 항복이나 협상을 거부한 주전파나 강경파가 악했는가. 싸움에는 늘 강경파와 온건파가 있기 마련이다. 전략과 전술 속에서만, 역사의 긴 평가에서만 어떤 노선이 더 나은 선택이었는 지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대다수 노동자가 잠정 합의안을 반대하는 이유

그럼, 민주노총의 노동자 대다수가 왜 잠정합의안을 반대하는가. 한 마디로 말해, 현 국면에서 노동자들에게 가장 절박한 요청이 단 하나도 합의안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노동자의 가장 큰 문제는 해고와 비정규직화다. 기업은 회계조작과 같은 탈법까지 동원하여 대량해고를 하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운다. 그 바람에 2천만 노동자 가운데 대략 절반인 1,100만이 비정규직이다. 같은 일을 하고도 비정규직은 평균적으로 정규직의 임금의 절반을 받는다. 문재인 정권에 와서 공공부문 정규직화가 추진되었지만, 상당수가 자회사라는 꼼수를 통한 것이며 외려 전체 비정규직은 늘었다. 관련 악법들이 조금도 개정되지 않아 기업들이 더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코로나가 닥치자 노동자는 기존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더하여 재택노동자와 재택 불가능 노동자로 나뉘고,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자동화와 로봇화 추세까지 더해지면서 상당수 노동자가 해고의 공포 속에 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 대량해고에 저항하는 파업투쟁에 참가한 노동자 절반 이상이 참전 병사들이나 겪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를 겪었으며, 여기에 생존위기와 절망이 더해지며 30명이 자살하거나 죽었다. 당시 해고노동자와 이와 연대한 이들이 외친 구호는 “일터로 돌아가자! 해고는 살인이다!”이다. 한국 사회처럼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해고가 살인이란 말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지금 거의 모든 공장이 쌍용자동차처럼, 한진중공업처럼, 유성기업처럼 대량해고나 비정규직화의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노사정 대화 합의안에 ‘해고금지,’ ‘총고용보장’, ‘사회 안전망 확대’를 포함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절박한 요청이며 현 코로나 위기를 노사가 함께 어울려 극복할 수 있는 전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는 수용되지 않은 채, 추호의 법적이고 제도적인 장치도 없는 상황에서 합의안에는 “고용이 유지되도록 최대한 노력한다”라는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표현만 있는 상황이다. 비정규직, 고용보험 미가입자에 대한 대책도 빠졌다. 반대로, 휴업 수당 감액, 휴업 조건 완화, 노동시간 단축 등 자본에 유리한 것은 구체적으로 명시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선언한 전 국민 고용보험에서 문제의 핵심인 특수고용노동자의 경우 전속성이 인정될 때만 적용한다고 규정하여 실효성이 없다. 22년 전에 사회적 대타협의 결과 정리해고와 파견법이 통과되면서 절반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대량해고로 생존위기에 놓인 전례도 있다.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사회적 대타협이 아니라 코로나를 빌미로 자본과 국가가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고통 전가를 하고 있고 언론이 총공세를 펴고 있는 형국이다. 대다수 노동자들이 합의안 폐기를 주장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김명환 집행부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협상의 내용을 중집과 공유하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깜깜이 교섭을 강행하였기 때문이다. 중집은 협약식이 열리는 사실도 몰랐으며, 이것이 알려진 다음에 열린 11차 중앙집행위원회(이하 ‘중집) 논의에서 다수 중집 성원이 합의안 문제를 지적하고 철회를 요구했지만, 집행부는 중집 다수결에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6월 29일부터 4일 연속 중집 소집을 강행했다. 더구나 임시대의원대회를 오는 20일 열어 노사정대표자 합의안을 처리하겠다고 3일에 밝혔는데, 위원장 직권으로 이를 소집하는 것은 규약 상 가능하지만, 민주노총 창립 이래 단 한 번도 중집의 동의 없이 대대 소집이 이뤄진 적은 없다. 합의문에서 이행점검 및 후속 논의를 ‘경사노위’에서 다루기로 한 것 또한 경사노위에 불참한다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결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아픈 곳을 우선하는 정의의 구현 없이 코로나 극복은 없다

보수적인 입장에서는 민주노총의 주장이 과격하게 들릴 수 있다. 중도적인 이들도 코로나사태라는 비상 상황을 맞아 민주노총도 양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에서 불평등이 오히려 심화하고 노동배제 또한 이명박근혜 정권과 다름없이 진행되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2018년의 통계를 종합하면,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8.86%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2009년의 44.38%에서부터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박근혜 정권 말기인 2016년의 47.76%,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에 48.79%, 다시 2018년에 48.86%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월간 노동리뷰> 2020년 2월호, 88쪽.) 상위 10%의 배당소득과 이자소득은 각각 93.9%와 90.8%를 차지한다.(<한국세정신문>, 2019년 10월 4일) 실업률은 4.2%에 달한다.(<월간 노동리뷰>, 2020년 5월호, 93쪽.) 부동산까지 포함하면 이 격차는 더 절망적이다. 이렇게 더욱 열악해진 상황에서 노동 관련 악법 중 개정된 것은 하나도 없고, 비정규직은 더욱 늘어났다. 그럼에도 사회 안정망이 확대된 것은 전혀 없다. 여기에 더하여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비재택 근무 노동자들은 모두 해고를 당하거나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위험에 처했다. 민주노총이 ‘해고금지,’ ‘총고용보장’, ‘사회 안전망 확대’를 사회적 대타협에 명시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마지노선을 확보해달라는 절규다. 한국 사회는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아주 특별하다. 진보정당이 거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고, 그 토대인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대에 지나지 않으며, 자유주의 정당, 그것도 신자유주의 체제를 떠받드는 보수여당인 민주당이 진보인 것처럼 착시효과를 낸다. 그 바람에 민주당의 보수적인 정책이 진보적인 것으로 둔갑하고, 민주당의 노선보다 진보적인 정책이나 논리, 운동은 ‘빨갱이’나 ‘과격이나 비현실’로 매도된다. 체제에 가장 위협적인 운동방식인 시민들의 집회마저 민주당과 노선을 같이 하는 이들이 좌지우지한다. 담론의 장에서도 보수적 담론이 진리인 것으로 통용되고 진보적 담론은 철저히 배제된다. 무임승차로 이기적 탐욕을 추구하는 자에 의해 공유사회가 파괴된다는 개렛 하딘(Garrett Hardin)의 ‘공유지의 비극’이 허구이고 실제 공동체를 조사한 결과 개인이 사리사욕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더 앞세우며 각자의 당면 상황보다 공유 자원의 장기 보존을 더 중시한다는 엘리노어 오스트롬(Elinor Ostrom)의 ‘공유의 희극’이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사실인데, 전자의 담론만이 무성하다(Elinor Ostrom, Governing the Commons: The Evolution of Institutions for Collective Action, Th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0). 수렵 사회는 물론 농경사회도 8,000년 동안 평등한 공동체였고, 인류 역사 700만 년 가운데 불평등한 사회는 0.00057%인 4,000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에이미 보가드 등의 연구는 전혀 알려지지 않는다(Amy Bogaard et al., “Comparing ancient inequalities: the challenges of comparability, bias and precision,” Antiquity, Vol. 93, 2019, 853-869.).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IMF조차 신자유주의 체제의 실패를 인정하면서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는 허구에 불과하며 분수효과(fountain effect), 곧 지금처럼 장기 침체 상황에서는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것이 경기도 부양하고 성장도 도모할 수 있음을 보고서를 통해 발표했다. “국제통화기금의 전략 정책 및 분석국은 에라 더블러-노리스 등 경제학자 5명이 소득 불평등과 경제발전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1980년부터 2012년까지 세계 159개국의 자료를 조사하고 분석하였다. … 이에 따르면, 상위 20%의 소득이 1% 증가하면 5년 동안 GDP는 0.08%포인트 감소했지만, 하위 20%의 소득이 1% 증가하면 GDP는 같은 기간에 0.38%포인트 증가했다.(IMF Strategy, Policy, and Review Department, “Cause and Consequences of Income Inequality: A Global Perspective,” IMF, 2015, 7.)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낙수효과 논리가 언론계와 정치계, 학계를 지배한다. 이렇게 계급 모순에 분단모순이 중층적으로 결합한 토대에서 자본만이 아니라 정부, 언론, 학계가 나서서 철저히 노동과 진보적 주의주장과 담론을 배제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본에 유리한 법과 제도를 만들고 노동운동을 갖은 방법으로 탄압하는 바람에,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임에도 노동자들은 OECD 최하위권의 열악한 상황에 있다.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통하여 아픈 곳을 우선하는 것이 정의임을 확인하였다. 당위적이거나 윤리적인 차원에서 약자를 위하자는 것만이 아니다. 아픈 곳은 자신을 녹여서 집을 화재로부터 지키는 ‘퓨즈’이자, 질식사를 막는 ‘잠수함의 토끼’다. 한국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은 해고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는 곳이다. 이들을 포용할 때만 국가는 정당성을 갖는다. 이들의 주장을 수용할 때 경제도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 회복될 수 있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코로나 위기 극복의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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