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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고용평등법'은 있는데...대전MBC 채용 성차별 못 막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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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남녀고용평등법'은 있는데...대전MBC 채용 성차별 못 막은 이유는 "차별은 훨씬 구조적·간접적...차별시정기구 필요"
대전MBC는 남성만 정규직 아나운서로 채용했다. 여성의 몫은 계약직이나 프리랜서였다. 1997년 이후 신규 채용된 정규직 아나운서는 모두 남성, 계약직과 프리랜서 아나운서는 모두 여성이었다. 채용 단계부터 작동한 성차별은 임금과 수당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전MBC의 두 여성 아나운서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그리고 인권위는 지난 6월 "대전MBC가 모집단계에서부터 성별에 따라 고용형태를 달리하는 차별의사가 있었다"고 판단하며 차별시정을 권고했다. 대전MBC도 최근 인권위의 이같은 권고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여성 아나운서들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고 인권위가 이에 대해 시정권고를 내리는 동안 '남녀고용평등법'(고평법)은 존재감이 없었다. 고평법으로는 채용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조적·간접적 차별을 막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대전MBC아나운서채용성차별문제해결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가 서울 마포구 MBC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채용 성차별 해소를 촉구했다. ⓒ프레시안(조성은)

"정규직은 남성만" 대전MBC의 채용 성차별은 어디에나 있다

28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에 대한 국가인권위 권고와 의미' 토론회에서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남녀고용평등법은 모집, 채용에서의 성차별을 명확하게 금지하고 있지만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느끼는 채용 성차별과 분리채용은 여전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런 고용 성차별은 미디어 업계에만 한하지 않는다. 2018년 기준 여성 노동자의 22.2%는 시간제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으며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은 50.7%로 남성 33.2%보다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초단시간 노동자의 73%가 여성인 데 반해 여성 관리자 비율은 12.5%, 기업 이사의 여성 비율은 2.3%에 불과하다. 이 모든 현실이 종합된 결정판인 성별 임금 격차는 2019년 기준 36.7%로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 중 1위다.

남녀고용평등법, 채용 성차별 막기에는 역부족

1987년 제정된 고평법은 "고용에 있어 남녀의 평등한 기회 및 대우를 보장하는 한편 모성을 보호하고 근로 여성의 지위 향상과 복지 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에 따라 여성들이 고용시장의 모집·채용·임금·배치·교육 훈련·승진·정년·해고에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고 육아의 권리와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를 보장받게 됐다. 고평법은 남녀를 명시적으로 다르게 대우하는 직접적 차별을 금지하는 한편 나아가 "사업주가 여성 또는 남성 어느 한 성이 충족하기 현저히 어려운 인사에 관한 기준이나 조건을 적용하는 것"도 차별로 해석한다. 즉 표면상 남녀를 차별하지 않는 것 같지만 특정 성별이 충족하기 어려워 결과적으로 특정 성별에 불이익한 결과를 초래하는 기준, 예를 들어 업무와 상관 없이 '키 170 이상'을 조건으로 걸었다면 결과적으로 여성이 불이익을 받는 결과가 나타난다. 고평법은 이런 간접차별도 규제한다. 그러나 고평법의 이런 내용에도 불구하고 대전MBC와 같은 성별 채용 분리를 방지하기에는 현실의 벽이 높다는 진단이 잇따랐다.
ⓒ프레시안(조성은)

성차별 시정 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박 연구위원은 고평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이유로 고용 성차별 시정 정책이 부재하다는 점을 꼽았다. 법을 이행할 정책이 없으니, 성차별을 신고하고 소송을 해도 달라지는 점이 없다는 의미다. 고평법상 간접차별 규정이 있으나 박 연구원은 제도의 미비로 인해 "구조적·간접적 고용차별의 판단기준이 없거나, 있어도 적용이 되지 않"아 관련 규정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전히 고용차별 관련 인식과 근로감독 기준은 명시적·직접적인 차별 단계에 머물러있다"며 간접차별 규정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런 경향은 성차별 사건을 신고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고용노동청에 접수된 성차별 사건 접수는 매년 18~46건 수준이었다.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더욱 적다. 1988년 남녀고용평등법 시행 이후부터 2012년까지 성차별 소송의 숫자는 32건에 불과하고 그 후로 추가된 판결도 10건 미만에 불과하다. 박 연구위원은 "2018년 이후에는 미투 운동의 영향으로 고용노동부 익명신고센터에 접수된 성차별 사건 수가 년 100여 건을 넘을 정도로 증가했으나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고 했다. 미국의 경우 고용기회균등위원회(EEOC)로의 성차별 진정 건수는 연평균 약 2만5000건 내외이고 EEOC가 노동자를 대리해 고용차별 소송을 제기한 경우도 연평균 약 100건 내외다. 영국의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에서 1년간 고용심판소에 제기된 성차별 사건은 2018년 1369건, 2019년 2279건이다. 인구 및 경제 규모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한국의 고용상 성차별 관련 신고나 소송 건수가 현저히 적다.

또 다른 대전MBC, KEC 구미공장..."차별은 구조적"

박 연구위원은 그러면서 KEC 구미공장 사례를 들었다. KEC 구미공장은 지난해 인권위로부터 생산직군 내 여성 노동자들이 남성들에 견줘 평균 등급, 승격까지 걸리는 시간, 임금 부분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며 시정 권고를 받았다. 인권위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KEC 구미공장의 생산직 노동자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여성들은 모두 하위 등급에 속해 있었다. 반면 남성의 90% 이상은 '관리자급' 등급에 속했다. 특히 20년 이상 재직자 중 가장 낮은 등급으로 입사한 생산직군 근로자 가운데 남성은 모두 관리자급 이상으로 승격했지만 여성은 모두 하위 등급에 머물러 있었다. 2010년 이후에는 하위 등급으로 채용된 남성 노동자가 아예 없었다. 승격까지 걸리는 기간도 남녀 간 차이가 있었다. 2010년 이후 신규 채용된 1871명의 전체 노동자 가운데 제조 직렬에서 근무하는 남녀 노동자의 승격 현황을 보면 남성 노동자의 평균 승격 소요 기간은 3.95년, 여성 노동자는 7.12년으로 3년 이상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인권위의 판단과는 달리 해당지역 노동청은 '간접증거만으로는 성차별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여성을 불리하게 대우하겠다'는 명시적·직접적인 요소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박 연구위원은 "KEC 사례에서 사용자의 명시적인 성차별 의사를 보여주는 직접증거는 없었으나 신입 생산직의 배치 직급과 직무가 다르고 이로 인해 임금 및 승진에서의 격차가 발생하는 방식으로 차별이 발생했다"며 "대전 MBC 사례에서는 남성 아나운서의 결원 시에는 정규직 채용을 하고 여성 아나운서의 결원은 계약직이나 프리랜서 채용을 통해 충원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처럼 고용 성차별 양태는 명시적인 차별보다는 통계적 격차와 같은 간접증거나 정황증거를 바탕으로 판단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따라서 차별시정제도의 실질적 작동을 위해서는 간접증거나 정황증거를 통해 차별을 판단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프레시안(조성은)

"고용 성차별 관련 전문기구 필요하다"

박 연구위원은 "고용차별은 일반 근로감독관이 판단하여 조사하기에 어려운 주제이고 임금체불처럼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분쟁이 아니라는 특성이 있다"며 "KEC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구조적, 간접적 고용차별은 일선 근로감독관이 차별로 인식하고 판단하기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노동위원회가 고용 성차별 사건을 관할한다면 EEOC나 캐나다의 연방인권심판소를 모델로 하여 고용차별 사건 조사, 판단 관련 전문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특히 구조적 차별로 그 지속성, 반복성이 큰 경우에는 사회적 영향이 크기 때문에 차별시정기구가 직권으로 조사하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EEOC는 100인 이상 민간기업 및 연방정부와 5만 달러 이상의 조달계약을 체결한 50인 이상 기업으로부터 성별, 인종별 고용 및 임금 현황 정보를 제출받는다. EEOC는 이 데이터를 상시로 분석하여 고용에서의 큰 격차가 지속해서 나타나는 기업을 조사할 수 있다. EEOC가 주도하는 이러한 조사 및 소송은 개별근로자의 피해 보전에 그치지 않고 사업장 전체의 구조와 관행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영향이 훨씬 큰 정책으로 평가된다. 반면 한국에서 직권으로 성차별을 조사할 수 있는 곳은 국가인권위가 유일한데 EEOC와 같은 데이터 접근 권한은 부족하다. 한국에서는 300인 또는 500인 이상 민간기업과 공기업을 대상으로 AA 제도(적극적 개선조치)가 적용되는데 이 데이터는 EEOC처럼 차별 가능성이 높은 사업장을 탐지하고 조사하는 자료로는 활용되지 않는다. 박 연구위원은 "향후 위원회나 고용노동부, 또는 노동위의 차별시정전문위가 기업별 임금 및 고용현황 데이터를 이런 방식으로 활용하도록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고용 성차별 관련 교육, 홍보 자료에 지속해서 누적된 성별 격차가 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근로감독 행정 관련 내부 지침에도 이러한 유형의 차별에 대해 조사하고 판단하는 기준 등의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면서 "고용 성차별 사례인 농협중앙회 부부 사원 우선 해고 사건, 한국전기공사협회 정년차별, 효성 임금 차별, KEC 등 관련 사례가 시사하는 점을 정리해 간접적·구조적 차별의 판단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 연구위원은 "성차별 사건은 EEOC와 같은 전문성이 축적된 기구에서 조사,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은 20여 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다"며 "고용 성차별 사건을 노동위원회 차별시정전문위원회가 판단하든 차별금지법을 바탕으로 국가인권위가 구속력 있는 성차별 사건 결정을 내리든, 전문성 있는 인력을 적정한 규모로 운영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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