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뉴딜은 녹색으로 포장한 친기업 성장정책
IPCC가 예측한 기한은 이제 10년 밖에 남지 않았다. 유럽의 대다수 국가가 이에 호응하여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 45% 감축, 2050년 순 영점 도달을 목표로 산업을 개편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기온 증가율은 세계 평균보다 1.9∼2.6배 높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그린뉴딜을 보면,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녹색성장과 박근혜 정권의 창조 경제 때 각 부서별로 제시했던 정책을 그대로 옮겨오고 짜깁기를 한 후에 명칭을 그린뉴딜로 바꾸고 그럴싸하게 그린의 목표로 포장하였을 뿐이다. 내용을 보면, 전반적으로 선언적이다.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한다고 언급했지만, 가장 중요한, 언제까지라는 기한이 빠졌으며, 어떻게, 어떤 방법과 과정을 통해 이를 달성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기술도 없다. 그나마 IPCC가 제안한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과 순 영점 도달의 목표에 맞춰진 것은 모두가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다. 점증하는 환경위기와 기후위기에 대한 국민의 공포와 우려를 감안하여 ‘그린’으로 포장만 했을 뿐, 실은 환경과 디지털 관련 기업에 퍼주기를 하자는 것이다. 최근에 그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지난 10월 4일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실이 환경부에서 받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계획(NDC) 갱신안 주요 내용’ 자료를 보면, 정부가 올해 말 유엔에 제출하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기존 목표인 5억 3,600만t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IPCC가 제안한 45% 감축량의 18.5%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10년 동안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것을 감안하면, 2009년에 이명박 정권이 제시한 2020년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 5억 4,300만t보다도 훨씬 더 후퇴한 것이다. 민주당의 이소영, 양이원영 의원이 지난 10월 5일 국회에서 “한전의 베트남의 붕앙2 석탄발전 사업 투자는 환경적으로 나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어리석은 결정”이라며 즉각 철회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하였다. “베트남 붕앙2 발전소에서는 30년 동안 온실가스 2억 톤 이상을 배출하게 되는데, 이는 우리 정부가 그린뉴딜 추진으로 2025년까지 감축하겠다고 발표한 1천 229만 톤의 16배가 넘는다.”고 한다.팬데믹 이후의 국가와 개인의 나아갈 길
이제 우리는 종말 가까이에 왔다. IPCC가 결론을 내린 대로, 이제 10년 안에 지구 기온이 0.5℃ 더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온실가스를 감축하지 않으면 그 종말은 현실이 될 것이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탐욕과 자본주의 체제가 우리를 이 지경에 놓이게 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국가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자본과 유착관계를 계속 유지하여 인류멸망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이를 끊고 도덕적 선의 가장 강한 구현체, 자연과 생명, 국민의 안전을 수호하는 지킴이로 거듭나서 지속가능한 발전과 글로벌 뉴딜로 방향전환을 할 것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국가는 코로나 사태를 기점으로 자유롭고 정의로운 생태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촛불정권이라면, 훗날 이명박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과 다른 것이 전혀 없었다는 평가를 받지 않으려면, 당장 기후악당에서 벗어나는 정책부터 시행하여야 한다. “해마다 대략 1500억 달러를 10년 동안 투자한다면, 지구상의 모든 가난한 이들이 기초적인 교육과 의료와 위생 시스템을 보장받고 적절한 영양, 식수, 여성의 경우 적절한 산부인과 치료를 받을 수 있다.”(Annual Report 2006-Global Partnership for Development) 넉넉잡고 2천억 달러면 10억 명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굶어 죽지 않게 함은 물론 그들에게 기초적인 의료와 교육을 실시하는 체제를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해마다 기아에 허덕이는 8억 5백만여 명이 먹고도 남는 양, 4천억 달러(약 439조 원)어치의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다.(//www.wrap.org.uk/) 미국 한 나라에서만 너무 먹어서 비만 관련 의료비로만 매년 1,470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www.cdc.gov/) 지구의 한쪽에서는 어린이들이 못 먹어서 죽어 가는데, 다른 쪽에서는 아이가 너무 먹어서 어릴 때부터 성인병을 앓고 있다는 현실은 이 지구촌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모순적인지 잘 보여주는 실례이다. 굶주리는 상황에서도 까치밥을 남기고 과일을 딴 민족이 이 야만의 대열에 낀다는 것은 너무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제 우리 개인도 변해야 한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고 또 죽어가고 있다. 당신에게 타인의 고통은 ‘하룻밤의 진부한 유흥거리’였는가, 거기에 있지 않다는 ‘안도감’이었는가, 그 고통의 원인에 연루되지 않았다는 ‘무고함’을 증명하는 것이었는가. 아니면 자신이나 자식이 아픈 것만큼 고통스러워하며, 아픈 곳을 우선하는 것이 정의라며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는가. 이제 욕망을 확대하는 것을 행복으로 착각하는 삶에서 타자를 고려하여 자발적으로 욕망을 절제하는 데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 결혼기념일이라고 샹들리에가 번쩍이는 호텔에서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음미하며 행복해하는 것보다 김밥을 싸서 뒷산에 올라 단풍이 물드는 산을 보며 약수터에 온 사람들과 나누면서 더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제 죽어가는 사람과 생명의 고통을 내 병처럼 아파하는 공감을 바탕으로 욕망을 자발적으로 절제하고 다른 사람과 생명을 섬기며 자비를 베푸는 삶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우리 자식에게 22세기는 없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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