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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세력은 아직도 '박근혜의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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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세력은 아직도 '박근혜의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창비 주간 논평] '문재인=박근혜 평행이론'이라는 서사
큰 흥행은 못 했지만 2010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 <평행이론>은 그 제목만큼은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이 영화에는 과거의 살인 사건이 같은 방식으로 반복된다. 영어 제목도 다른 시공간의 사람이 같은 운명을 반복한다는 뜻의 'parallel life'인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영어 제목이 바로 'Parallel Lives'이다. 이 단어는 학술적 가설로나 대중문화 속에서 많이 등장한 '평행우주(parallel universe)'와도 유사한데, 이는 이 세계의 내가 선택 가능한 조건들이 똑같이 주어진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의미다. 엄밀히 따지자면 두 단어 모두 '평행'이라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렇듯 어떤 상황이 반복된다는 발상은 우리 생각 속에 꽤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이러한 환상이 보수세력의 정치적 상상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운명을 반복하고 있다는, 혹은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서사에 의존한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현실정치 세계에서는 늘 표면적으로 유사한 문제들이 거듭 출현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유사성이 사이비인지, 본질적 유사성인지에 있다. 보수언론이나 야당의 비판은 사이비적 유사성을 본질적 유사성으로 간주해 이루어지곤 한다. 그 본격적인 출발점은 '조국 사태'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보수세력의 언술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중요한 계기였던 '정유라 사건'과 '조국 사태'를 동일시하려는 욕망이 강하게 표출되었다. 물론 조국 서울대 교수와 관련한 여러 일 중에는 비판을 받을 만한 사안도 있고, 이에 대한 법적 판결도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문제가 된 대부분의 사안은 조국 교수가 가진 '권력'과의 관계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그마저도 실제 사안에 비해 과도한 수준의 검찰 수사가 논란을 일으킨 면도 있다. 명백하게 권력의 비호 하에 진행된 정유라 사건은 물론이고, 더 중요하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근본적인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최근 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이 북한 영해에서 피살된 일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매우 불행한 사건이고 앞으로 더 따져야 할 사실 관계도 많이 남아 있다. 그런데 보수세력이 이번 일을 대통령의 책임으로 만들기 위해 '세월호 사건'의 트라우마를 끌어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배가 침몰하는 영상을 온 국민이 애타는 심정으로 바라봐야 했던 오전부터 오후까지 부재했던 대통령과, 북한 영해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에 대한 대응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특히 북한군이 어업지도원을 발견하고 총격하기까지의 상황을 마치 정부가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음을 전제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더 적절하지 않다. 이번 일은 한국 정부가 개입하기 어려운 과정으로 진행되었고 대통령이 개입하기란 더 어려웠다. 여론이 여기까지 치달은 데에는 국방부 발표도 한몫했다. 시간이 지난 뒤에는 국방부도 이 사건에 대한 정부의 판단이 여러 첩보를 종합해 내려진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초기 발표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고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로 하여금 개입 가능한 일을 방관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비판받을 사안이 있다는 점에서 같더라도 문제의 성격과 그에 따른 책임의 정도는 매우 다르다. 그럼에도 표면적 유사성을 근거로 두 개의 다른 문제를 마치 같은 문제처럼 주장하고 현 정부의 미래를 박근혜 정부의 운명과 겹쳐 보이게 만들려는 시도는 수구적 세력에 일시적 카타르시스는 줄 수 있어도 자신의 정치적 상상력 부재를 드러낼 뿐이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영화 속에서의 '평행이론'도 진짜 사건을 과거의 사건을 이용해 은폐하려는 목적이었으며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이러한 헛된 시도가 반복되는 원인은 박근혜 시대의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구적 관성이 작동하기 때문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촛불혁명이 초래한 변화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다는 데 있다. 최근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은 촛불혁명을 거치며 고양된 시민의식에 기초한 것이다. 과거에는 큰 문제로 간주되지 않았거나 문제로 등장하지 않았을 사안들도 이제 따가운 비판을 받고는 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비판이 우리 사회를 과거로 돌리려는 시도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보수 언론과 정당이 이러한 지적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 정치와 언론의 지형 역시 많이 바뀌겠지만 그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앞으로 이런 행태가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더 중요한 문제는 촛불혁명을 이어가고자 하는 일들이 이러한 사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있다. 보수 정당과 언론의 행태에 대한 즉자적 반응, 특히 상황에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며 모든 비판을 수구적이고 보수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무조건 거부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태도가 촛불혁명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해야 한다. 단기적인 정치적 이익을 좇느라 같이 낡아져서는 미래가 없다. 촛불혁명은 우리의 집단지성이 현재보다 더 훌륭하게 발휘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퇴행적 비판에 위축되거나 물러설 필요는 없지만, 촛불혁명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는 면에 대한 비판에는 스스로의 문제점과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이를 발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소통해야 한다. 이런 자세와 용기를 보여줄 때 코로나바이러스 방역, 세계적인 경기쇠퇴 속에서 상대적인 측면에서의 우월한 경제지표, 한반도 평화의 유지 등과 같은 성과도 더 적극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고 촛불혁명을 계승하는 작업도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이것이 같이 낡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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