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운영되려면 2060년엔 월급의 29.3%를 내야?
어느 나라, 어느 국민이나 다 그러하다. 미래가 걱정이면서도 막상 노후 준비를 못한다. 가난하고 당장 먹고 사는 게 급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부자 나라의 중산층 국민들도 노후 준비를 잘 못한다. 왜 그럴까? 먼저 우리 인간들은 근시안적 경향이 있다. 현재의 문제와 소비를 더 중요시한다. 그리고 이성적이지도 못하다. 금연해야지 하고서도 금연을 못하고, 다이어트 해야지 하고 작심삼일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매우 합리적이고 실천력이 대단한 사람도 장수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90살까지 살 줄 알고, 은퇴 후 매월 216만 원씩 쓸 요량으로 30년 치를 모아 놓았다고 하자. 대단한 일이나, 90살이 돼서도 사망하지 않는다면 어찌 될까? 그 이후의 삶은 축복이 아니라 고통이다. 그렇다면 과연 내가 몇 살까지 살 것으로 예상하고 돈을 모아두어야 할까? 95세? 만약 95세가 되도 건강하다면? 그래서 모든 선진국들이 우리의 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금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싫든 좋든 보험료를 내게 해서 강제저축을 시킨다. 그리고 국가는 단명한 사람이 남긴 연금자산을 가져다가 장수하는 사람에게 죽을 때까지 연금을 준다. 이렇게 해야 장수의 위험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9년에 정부는 국민연금 보험료로 47.8조 원을 거두었다. 같은 해 국방예산이 총 50조 원이었다. 엄청난 돈을 강제저축 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막대한 돈을 거두어들이지만, 이것으로 월 300만 원을 버는 평균 소득자가 40년을 월급의 9%인 27만 원씩 꼬박꼬박 보험료로 내더라도(27만 원의 반은 고용주가 내준다)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은 120만 원에 불과하다. 위에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월 216만 원은 있어야 노후를 잘 보낼 수 있을 거라고 했다는데, 턱없이 부족하다. 이마저도 내는 보험료에 비하면 많이 받는 거다. 민간의 어떤 개인연금도 이렇게 후한 연금을 주지 못한다. 노인 인구도 늘고 또 후하게 주다 보니 국민연기금이 2058년에 고갈되고, 2060년에는 월급의 29.3%를 내야 국민연금이 운영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급여를 올려달라고 할 수도 없다. <복지의 원리: 대한민국 복지를 한눈에 꿰뚫는 10가지 이야기> 5장 (양재진, 지음, 한겨레출판)국민연금으로 부족한 노후소득, 퇴직연금으로 보완하자
이럴 때 퇴직연금이 노후소득원으로 역할을 해주면 어떨까? (이하 논의는 <복지의 원리: 대한민국 복지를 한눈에 꿰뚫는 10가지 이야기> 6장 참조.) 1년 이상 재직한 모든 근로자는 법적으로 퇴직금을 보장받는다. 노사합의에 따라서는 퇴직금 대신에 퇴직연금을 받을 수도 있다. 퇴직연금에 가입되면, 고용주가 근로자 월급의 8.33%씩 퇴직연금회사에 보험료를 납부해준다. 이 돈이 2019년 한 해만 해도 34.1조 원이다. 국민연금의 2019년 보험료 지불액 47.8조 원의 71.3%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다. 그런데 이 퇴직연금이 말만 연금이지 연금으로서 역할을 못하고 있다. 97.9%가 매달 받는 연금이 아니고 마치 퇴직금처럼 일시금으로 받아간다(2019년 계좌 기준). 회사 옮길 때마다 받아 쓰고, 중간정산해서 쓰고, 또 목돈으로 받아 대출 갚고 자식들 결혼시키고 장사 밑천으로도 쓰기 때문이다. 다들 이유 있는 지출이지만, 미래보다는 현재의 소비를 중시하는 근시안적인 행태다. 국민연금처럼 국가가 나서서, 국민연금만으로는 부족한 노후소득을 퇴직연금으로 보완하게 하는 게 필요하다. 2005년에 퇴직금을 퇴직연금으로 전환하고자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을 제정한 노무현 정부의 입법 취지가 그러하다. 사실 퇴직연금이 도입되기 전인 김영삼 정부 때는 퇴직금을 국민연금에 흡수하려 했었다. 1993년 당시 정부는 3%이던 국민연금 보험료를 6%로 인상하면서 사용자가 2%, 근로자가 2%를 내고, 나머지 2%는 고용주가 부담해야 하는 퇴직금(8.33%)에서 2%를 떼다가 국민연금에 집어넣었다. 향후 9%로 인상하게 되면 3%, 3%, 3%씩 나누게 법제화했다. 이 방식을 유지했다면, 퇴직금은 서서히 사라지지만 국민연금 보험료는 12%, 15%, 18% 등으로 단계적으로 인상되어 유럽 복지국가 수준의 안정적인 공적연금을 갖출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1999년 김대중 정부에서 퇴직금의 국민연금 전환이 중지되었다. 퇴직금은 사회보험과 무관한 후불임금으로 근로자가 퇴직 때 받아야 할 몫이라는 노동계의 주장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에 보험료율을 9%로 인상하면서 종전과 같이 노사가 반반씩 부담하는 것으로 회귀했다. 퇴직금 부담을 그대로 다시 안게 된 사용자는 이후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서구 복지국가에서는 볼 수 없는 퇴직금 부담을 법적으로 강제당하면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라는 대로 다 낼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재정안정화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보험료 인상 대신 급여를 깎는 것이었다. 소득대체율은 60%에서 40%로 낮춰지고, 국민연금의 보험료는 22년간 9%로 동결되어 있다. 퇴직금을 사회보험인 국민연금으로 흡수하지 못할 바에는, 민간에서라도 연금화하자는 게 퇴직연금제도 도입의 취지다. 아직 기대한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개별 기업과 개인의 선택에 맡겨 둘 경우, 퇴직금의 연금화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퇴직연금의 수익률이 낮은 진짜 이유
따라서 2014년부터 정부는 퇴직연금의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퇴직금의 퇴직연금 전환도 의무화하고, 일시금이 아닌 연금으로 받는 것도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필자는 퇴직연금 의무화를 반긴다. 그런데 민간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보고 있자면 씁쓸하다. 국민연금이 연평균 5.18%의 수익률을 기록할 때(2012~16년, 5편 평균),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1.76%(5년 평균)와 2.81%(10년 평균)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대부분의 가입자들이 원리금 보장형을 선택하기에 수익률이 높을 수가 없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실적배당형조차도 수익률이 2.15%(5년 평균)와 3.54%(10년 평균)에 불과하다. 연금이 복리효과를 보는 최소 30년짜리 장기상품인 것을 감안하면, 국민연금과 1%~2%p의 연단위 수익률 차이만으로도 나중에 연금자산은 수십%의 차이를 낳게 된다. ‘퇴직연금에 넣을 보험료를 국민연금에 넣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게다가 퇴직연금의 수수료율도 국민연금에 비해 매우 높다. 2018년 퇴직연금의 수수료율(총비용부담율)은 평균 0.45% 수준이다. 수익이 나던 말던, 그 크기가 크던 작던 각각의 퇴직연금자산에서 매년 0.45%씩 수수료를 꼬박꼬박 떼어 간다. 그런데 필자의 계산에 의하면, 국민연금의 2018년 총비용부담율은 0.1%가 안 된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2019년 737.7조 원의 국민연금기금을 국민연금공단이 관리·운용하는 데 비해, 221.2조 원에 달하는 퇴직연금 기금은 40여 개에 달하는 퇴직연금 사업자가 쪼개서 관리하고 있다. 행정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또 민간 사업자인 만큼 되도록 이윤을 많이 내서 금융업계의 높은 임금도 지급해야 하고, 주주들에게 배당도 해야 한다. 구조적으로 국민연금에 비해 수수료가 높을 수밖에 없다. 0.5%도 안 되는 수수료가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이 또한 장기상품의 복리효과를 감안하면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국민연금공단이 메기 역할을 하게 하자
정부가 퇴직연금을 의무화해서 더 많은 돈이 민간 퇴직연금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게 만들면,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수익률이 형편없어도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더 큰 돈을 벌게 된다. 퇴직연금 사업자들도 돈을 벌고, 가입자들의 연금자산도 잘 불어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연기금 운용과 관리에 우수한 성과를 보이는 국민연금공단을 퇴직연금 사업자로 퇴직연금 시장에 참여시키면 어떨까? 현재 근로복지공단이 퇴직연금 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나, 30인 이하 영세 사업장만 가입대상이다. 민간퇴직연금 사업자들이 기피하는, 한마디로 돈이 안 되는 사업장을 공공기관이 떠맡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 말고, 국민연금공단이 민간퇴직연금 시장에 제한 없이 진출하면, 소위 '메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개별 기업의 노사가 합의해서 수수료도 적고 수익률도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칭 '국민퇴직연금'에 가입하게 되면, 민간퇴직 연금사업자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수수료는 최대한 낮추고, 수익률은 제고하기 위해 최고의 에이스를 자산운용에 투입할 것이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퇴직연금 사업자는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고, 시장에 살아남은 민간퇴직연금 사업자는 국민퇴직연금공단 못지 않은, 혹은 더 뛰어난 성과를 보여줄 것이다. 시장에서 누가 이기든, 승자는 퇴직연금에 가입한 일반 국민들이 된다. 퇴직연금을 의무화한다고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증세도 필요 없다. 국채를 발행할 필요도 없다. 고용주는 법에 따라 어차피 퇴직금으로 한꺼번에 나갈 비용을 퇴직연금 보험료로 그때그때 분납하는 것일 뿐이다. 은퇴 근로자는 국민연금 외에 안정적인 노후소득을 하나 더 갖게 된다. 많은 국민들이 전보다 안정적인 노후소득원을 갖게 되면, 국가는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저소득 노인들에게 기초연금 등을 통해 집중적인 보호를 제공할 수 있는 여력을 갖게 된다. 2019년 한해만도 34.1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퇴직연금보험료가 연금 역할도 못하면서 사라져 가고 있다. 이를 연금화하면, 국민의 후생이 증가한다. 여기에 국민연금공단이 메기 역할을 하게 하면, 그 후생은 더더욱 커질 것이다. 그동안 간과하고 미뤄둔 길, 이제는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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