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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투성이 '민주당 버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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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부실투성이 '민주당 버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보며 [기자의 눈] 민주당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50인 미만 사업장에 4년 적용 유예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민주당 노동존중실천추진단(실천단)'이 지난 11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중대재해는 보통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 3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한 재해를 뜻한다. 실천단은 법안에 이 법의 적용을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4년 유예하겠다고 발표했다. 규모 기준 가장 많은 산재가 일어나는 사업장을 콕 집어 4년간 법 적용을 유예하겠다고 한 것이다. 50인 미만 사업장, 즉 영세한 사업장에서 안전의무 및 보건조치 의무 이행을 위한 제도 마련을 위한 시간으로 4년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이러한 4년 유예를 두고 여러 비판이 제기된다. 실제로 법의 현장 적용을 위해서는 일괄적인 4년 유예가 아닌, 점차적인 처벌 강화로 유도하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괄적으로 법을 유예할 경우, 현장에서는 이 법을 현장에 적용할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또한, 한 번 유예된 법은 또다시 유예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노동 현장에서는 매우 좋지 않은 신호를 보내는 셈이다. 보통 다른 노동조건도 더 열악하기 마련인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목숨이 걸린 문제에서도 또 손해를 본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법 적용 4년 유예하겠다는 민주당

민주당 법안대로 4년을 유예할 경우, 즉 50인 이하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얼마나 다치고, 심지어 죽고 있는걸까. 고용노동부가 지난 5월 발표한 2019년 산업재해 통계를 살펴보자. 지난 한 해 동안 '사고 사망자' 855명 중 359명(42%)이 5~49인 사업장에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301명(35.2%)이 일하다 사망했다. '사고 사망자' 10명 중 8명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다 죽은 셈이다. '질병 사망자'도 마찬가지다. 질병 사망자 1165명 중 392명(33.6%)이 5~49인 사업장에서 일하다 병에 걸려 죽었다. 그 다음은 5인 미만 사업장 193명(16.6%)이다. 질병 사망자 10명 중 5명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마찬가지로 일하다 병에 걸려 사망했다. 사망이 아닌 산재 비율도 마찬가지다. 사업장 규모로 볼 때 가장 많은 산재 재해자가 발생하는 곳은 5~49인 사업장이다. 사고 재해자 9만 4047명 중 4만 3720명(46.5%)이 5~49인 사업장에서 사고로 다쳤다. 그 다음은 5인 미만 사업장 3만 1871명(33.9%)이다. 사고 재해자 10명 중 8명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다친 셈이다. 산재 질병도 마찬가지다. 질병 재해자 1만 5195명 중 5436명(35.8%)이 5~49인 사업장에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2651명(53.2%)이 일하다 질병에 걸렸다. 질병 재해자 10명 중 5명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병에 걸린 셈이다.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전체 산재 사망의 61.6%와 전체 산재 재해의 76.6%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난다.
▲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발의 및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5000명의 죽음을 외면하는 법안

이 수치를 앞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유예되는 4년에 적용해보자. 고용노동부 2019년 통계를 바탕으로 4년간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산재로 사망할 노동자의 수를 계산하면 4980명이다. 같은 통계를 바탕으로 4년간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산재로 다치거나 병에 걸릴 노동자의 수를 계산하면 33만 4712명이다. 이렇게 보면, 실천단의 법안은 5000여 명의 죽음과 35만여 명의 부상 및 질병을 외면하는 법안이 된다. 물론, 이 법안이 빠르게 적용된다고 해서 노동 현장이 일시에 바뀌고, 그에 따라 사망, 사고자 비율이 현격히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4년간의 유예로 노동 현장에서 안전조치는 더디게 변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에 따라 더 많은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물론, 이번 법안에 유의미한 부분도 있다. '처벌 하한'과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이 대표적이다.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사망사고를 일으킨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2년 이상 혹은 5억 원 이상의 벌금에 처하기로 했다.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소홀히 하도록 지시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처벌 하한은 징역 5년이다. 중대재해를 야기한 법인 혹은 기관에 손해액의 5배 이상에 해당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리기로 하기도 했다. 지난 6월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처벌 하한은 △ 안전보건 조치 의무 위반해 사망사고를 일으킨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3년 이상 징역 혹은 5000만 원 이상 벌금 △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소홀히 하도록 지시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5년 이상 징역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액은 손해액의 3배 이상 10배 이하로 책정되어 있다. 법안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처벌 하한 정도나 징벌적 손해배상액은 논의할 수 있는 문제다. 물론 이 법안이 제정될지는 알 수 없다. 민주당 차원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향한 의지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천단의 법안은 아직 당론이 아닌 일부 의원의 법안이다.지난 9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정의당이 '중대재해 방지 간담회'를 열기 전까지 언론에는 민주당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아닌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쪽으로 중지를 모으고 있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실천단의 법안 발의도 김 위원장과 정의당이 간담회를 연 직후다. 실천단이 법안을 발의한 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당론 채택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긴 했지만 민주당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진정성 있게 다룬다기보다는 떠밀려간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민주당 결단에 달렸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은 174석을 가진 거대 여당이다. 21대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될지, 통과된다면 어떤 내용일지는 더불어민주당의 결단에 달렸다. 사실 지난 7월 24명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름을 올린 생명안전포럼이 출범하고, 출범식에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김훈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를 부를 때만 해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될 수도 있다는 일말의 기대를 가졌다. 이후 민주당의 행보는 실망스럽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당론 채택은 21대 국회가 개원하고 6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뜻있는 의원들이 발의했다는 법안은 5000여 명의 산재사망과 35만여 명의 산재 부상을 외면하고 있다. 지난 일은 지난 일이다. 어차피 불 붙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서 민주당이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바란다. 50년 전 전태일의 시대와 지금의 시대를 비춰봤을 때,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게 보여야 하지 않을까. 그 길의 앞자리에 민주당이 서 있기를 바랄 뿐이다.
▲지난 7월 1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생명안전포럼' 창립식에 앞서 참사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추모 묵념을 올리고 있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훈 생명안전시민넷 대표,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 ⓒ프레시안(최용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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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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