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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스템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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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우리는 시스템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가? [초록發光] 기후위기의 정치체제를 논하자
2020년 한국의 기후정치는 큰 진전이 있었다. 예기치 않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지 않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런 감소가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구조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한국에서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은 공식 정치의 언어 속에 확실히 자리 잡았다. 국회는 반대표 하나 없이 기후위기 비상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와 언급을 통해 2050년 탄소중립도 발표되었다. 내년부터는 온실가스 감축과 적응의 구체적인 방법을 두고 정치권과 언론 지면에서 제안과 논박과 실천의 경합이 벌어질 수 있겠다는 전망이 가능하다. 마침 미국에서 민주당 바이든 정부가 탄생하면서 파리협정과 국제적 기후 체제의 작동도 상당히 동력을 얻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후위기를 조금이라도 깊게 들여다보는 이들이라면 이런 표피적 선언과 실제 대응의 격차가 여전히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탄소중립을 표방했지만 그것을 실현할 큰 수단은 제시되지 않았고, 2030년의 중간목표 상향도 유보되었다. 그린뉴딜은 녹색 산업 지원책이 나열되었을 뿐, 온실가스를 줄이는 지렛대는 보이지 않는다. 에너지원과 설비 구성의 변화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의 징검다리를 놓아야 할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지난 28일 확정되었지만 석탄화력발전은 줄지 않으며, 뉴스를 장식하는 것은 기후위기가 아니라 전기요금 인상 시비다. 이런 정부의 언행을 두고 부정직하다며 분개하고 비판할 수 있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기후위기 대응 간판을 내세우고 자랑하면서 중요한 판단은 차기 정부로 미루는 태도를 비난하는 것은 올바르고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는 정부가 어떻게 행동하기를 바라고 있을까? 어떤 정부가 어떻게 하면 기후위기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대통령이 굳은 의지를 가지고 온실가스 감축을 외치고 공무원들을 다그치면 될까? 여당과 제1야당이 변심 또는 회개하여 당장의 정치적 이익을 넘어서는 긴 시야를 가지고 장기적 기후 비상사태에 전념을 다해 입법과 예산 편성에 나서면 될까? 우리는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는가? 청와대와 몸집 큰 정당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충분히 따져보고 있는가? 원론적으로 말해서, 온실가스 감축과 적응은 수십 년의 시간을 두고 국가 전체의 자원 투입과 배분의 방향을 바꿈으로써 가능하다. 즉 기존의 관성을 뒤엎는 엄청난 변화를 의미하며, 주요 산업과 국토 이용, 삶의 방식까지 변화를 요구한다. 나오미 클라인이 기후변화 대응을 두고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라고 얘기한 이유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제대로 가늠하기는커녕, 충분히 상상해보지도 않은 것 같다. 이번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을 두고 오고 간 쟁점들을 살펴보자. 핵발전, 특히 신울진 3, 4호기 재개 문제를 두고 탈핵과 찬핵의 입장이 대립했다. 여러 논리가 나올 수 있지만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발전원도 축소하면서 전력수요 증가도 소화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15년여 뒤 전력 공급의 안정성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보장하면서 2030년에 요구되는, 즉 지금의 절반으로 떨어진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대하기란 난망한 게 당연하다. 경제 정책과 산업 정책의 커다란 패러다임 전환 문제에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초안을 기초한 연구자는 건설 중인 석탄화력발전소의 중단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적법한 절차로 인허가 되어 추진 중인 사업을 사업자의 자발적 의사 없이 중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역시 지금의 법령 하에서는 당연한 답변이다. 그것을 뒤엎으려면 규제와 보상을 명시하는 법이 제정되고 지역을 설득하는 과감한 작업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런 일에 나서려는 정치인은 중앙에든 지역에든 없다. 전기요금은 어떠한가? 재생에너지를 확충하는 데 드는 비용이 불확실하여 인상 폭도 확실히 얘기하기는 어렵다. 사용후핵연료 처분이나 폐로 비용도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다. 기후위기 격화로 발생할 비용은 얼마가 될지 추산조차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번 임기 중에 그리고 다음 선거 전에 요금 인상이 있느냐 없느냐에 불과하다. 사실 기후위기를 다루는 데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최악의 제도다. 보수적인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의 시간표를 따르더라도, 기후 재난을 피하려면 2030년을 거쳐 2050년까지 일관되게, 그리고 더욱 강화된 목표와 수단을 통해 온실가스를 감축해가야 한다. 그 전에 지구온난화의 티핑포인트를 넘어서더라도 기후를 어떻게든 안정화하고 사람과 생물들의 살림살이를 챙기는 데에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 즉 정부의 시그널이 장기적으로 분명하게 유지되고 정책의 이행과 결과가 세밀하게 관리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다른 많은 정책들이 그렇듯, 기후변화 정책은 5년을 주기로 ‘리부팅’ 된다. 전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 무엇이었는지는 잊히고, 서류들은 캐비닛으로 들어가고, 담당 공무원들은 교체된다. 4년마다 바뀌는 국회도 마찬가지다. 주기적인 레임덕과 선거 준비시기를 빼면 결국 청와대는 3년 반, 국회는 3년씩만 일한다. 30년 뒤는커녕, 5년 뒤도 내다볼 틈이 없고, 다음 선거에서 이기는 데에 도움이 되는 인기 있는 정책과 예산이 앞선을 채우는 게 당연하다. 이 한계는 기후과학자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서 극복될 수 있는 게 아니다. 4년 중임제라면 더 나을까? 8년 임기를 상정한다면 연속성과 책임성 측면에서 조금은 나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개인의 의중에 모든 것이 맡겨진다는 점, 전문성과 민주성을 담보할 수 없는 선출되지 않은 청와대 인사들이 실제 정책을 좌우한다는 점, 집권당이 장관의 정책과 실행에 실제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 내각제라면 더 나을까? 분명히 나은 점들이 있다. 온실가스 감축을 주요하게 관리해야 할 산업부와 환경부 장관을 배출하는 집권당은 그 결과에 함께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 야당과 기후위기 대응의 방법론을 두고 구체적으로 논박을 주고받을 것이다. 또한 그 정당이 권력을 잃는다 하더라도 섀도 캐비닛의 산업부와 환경부 장관이 지속적으로 정부의 기후 정책을 감시하고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백보를 양보해도, 기후위기 때문에 못 살겠다고 욕을 먹어도 정당이 먹고 정당이 내세운 총리가 대표로 먹을 것이다. 어떠한 정치체제든 장단점이 있다. 핵심은 지금과 같이 주기적으로 리부팅되고 정작 중요한 의제와 쟁점들은 구조적으로 배제되는 정치체제로는 기후위기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체제에 비해 이윤 동기를 엔진으로 하고 화석과 핵에너지를 자원으로 하여 365일 돌아가는 경제체제가 일상적 상태(business as usual)가 되어 사회를 좌지우지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기후변화 대신 시스템 변화(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는 기후정의 운동에서 간판과도 같은 구호다. 기후변화가 모든 존재에게 너무도 구체적으로, 그리고 절실하게 다가오고 있듯,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체제의 변화도 매우 구체적으로, 그리고 절실하게 제기되고 실현되어야 한다. 유럽의 멸종저항 조직들의 제안처럼 '기후 시민의회'를 조직할 수도 있고, 기후위기 개헌운동을 통해 5년 단임제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그나마 장기 기후위기에 맞서나갈 정치 제도를 만들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청와대와 제도권 정당을 원망하고 비난하거나 국민청원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온실가스 감축의 경로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정치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기후위기 시대의 정치체제를 본격적으로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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