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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 '백신 국가주의'를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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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팬데믹 시대, '백신 국가주의'를 비판한다 [코로나와 글로벌 헬스 와치] 끝나지 않는 코로나19, 모두를 위한 보건의료기술 배분 플랫폼 구축에 관하여

"나와 내 가족들은 언제 백신을 접종하게 될까?"
"정부가 확보했다고 하는 백신 물량은 충분할까?"

국내 코로나19 백신 공급이 임박해지며 각종 매체가 앞다투어 다루고 있는 주제다. 지난 8일 정부의 '코로나19 예방접종 대응추진단' 출범을 필두로 지자체 수준의 추진단 구성에 관한 경쟁적 홍보도 눈에 띈다.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코로나19 백신 각각의 특성과 개발 상황, 국내 물량 확보로만 여론이 가득 찼었는데, 그나마 올해 들어 백신 분배 논의가 '더 빨리, 더 많이' 일변도에서 조금 더 나아간 점은 환영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백신 배분 논의에서 코로나19의 진정한 종식을 위한 백신의 지구적 배분 정의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완전히 물리치는 유일한 방법은 '모두가 안전해지는 것'이다. 이는 곧 국내에 도입될 백신 접종의 우선순위를 잘 정하는 데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의 중저소득 국가에 백신이 공평하게 분배되도록 해야 함을 뜻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는 시장의 원리가 핵심인 자본주의 하에서 전 세계적 감염병을 퇴치하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코로나19 백신을 공평하게 배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 COVID-19 Vaccine Global Access Facility)가 걸어온 발자취를 되돌아봄으로써 '모두를 위한 백신 배분'을 모두와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코백스의 원리와 운영 구조

코백스 퍼실리티를 직역하면 '코로나19 백신 지구적 공급 체계'이지만, 그다지 직관적으로 와 닿지 않고, 그 운영의 복잡함 또한 한눈에 이해하기 쉬운 것은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 백신 개발과 선구매가 본격화되며 정부 발표와 언론매체에 등장하였지만, 아직까지 코백스 퍼실리티를 백신 제조 회사들 중 하나로 인식하거나 한국이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백신을 공급받는 것을 개발도상국으로 지위가 격하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1) 코백스 퍼실리티는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백신면역연합(Global Alliance for Vaccines and Immunisation, 이하 Gavi), 그리고 전염병대비혁신연합(Coalition for Epidemic Preparedness Innovations, 이하 CEPI)이 주축이 되어 2020년 6월 11일 공식 출범한, 쉽게 설명하자면 코로나19 백신을 공동으로 구매하고 공동으로 공급하자는 취지의 대규모 '공구' 프로젝트이다.
▲ 그림 1. 코백스를 이끌어가는 세 기관. 출처: Gavi 홈페이지에서 갈무리.2)
코백스 퍼실리티는 고소득 국가나 강대국에게만 백신이 편중되는 상황을 최소화하고 지구촌이 공평하게 백신을 배분받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백신이 지구적 공공재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코백스 퍼실리티의 참여국은 고소득·중상위소득 국가로 구성된 자부담 국가와, 중하위·저소득 국가로 구성된 수혜 국가, 두 그룹으로 나뉜다. 자부담 국가는 지불한 비용에 비례하여 전체 인구의 10~50% 분량의 백신을 받게 되고,(단, 모든 자부담국가가 20% 분량을 받기 전에는 어떤 자부담 국가도 20% 이상을 받을 수 없음)3) 수혜 국가는 백신 비용을 원조받는 대신 최우선 인구를 중심으로 한 접종 분량을 지급받는다. 코백스 퍼실리티의 목표는 모든 수혜 국가에 20% 분량을 배분하는 것이지만, 달성 여부는 모금액 규모에 달려있다.4) 2021년 1월 22일 현재 미국, 러시아 등 일부 예외적 국가를 제외하고 전 세계 대부분 국가들(190개 국)이 코백스 퍼실리티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까지 코백스 퍼실리티는 아스트라제네카, 인도혈청연구소(수혜 국가용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대 백신과 노바백스 백신을 위탁생산), 화이자/바이오앤텍과 구매계약을 체결하였으며, 존슨앤존슨, 사노피/GSK와도 계약을 앞두고 있다(각각 양해각서와 의향서 서명 완료). 이 중 아스트라제네카/옥스포드대 백신 1억 5000만 도스(7500만 명 분)는 각각 아스트라제네카(5000만 도스, 2500만 명 분)와 인도혈청연구소(1억 도스, 5000만 명 분)를 통한 올 1분기 내 공급이 확정됐다5) 많은 사람들이 잘 알다시피 한국도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전체 인구의 20% 분량인 1000만 명 분의 백신을 공급받을 예정이다.

코백스 퍼실리티를 둘러싼 서로 다른 이해관계들

그러나 코백스 퍼실리티의 노력이 순조롭게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황은 그 반대로, 현재 코백스 퍼실리티는 고소득국과 저소득국 양쪽 모두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액수로 백신 개발을 진행하고 있거나 돕고 있는 부유한 국가들로부터는 외면을 받고 있고, 공정한 의약품 접근권을 추구하는 활동가들로부터는 허수아비 프로젝트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가장 주된 이유는 코백스 퍼실리티가 강제성을 담보하는 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지난해 코백스 퍼실리티가 시작할 때부터 코로나19 유행이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지금까지도 이 플랫폼에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이고 전 세계의 공조가 절실한 시기인 5월 29일 미국은 WHO를 탈퇴하기까지 하였다.6) 중국은 2020년 5월 제73차 세계보건총회에서 자국의 백신을 '글로벌 공공재'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뒤 코백스 퍼실리티 가입에 대해 줄곧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다 자국 백신이 상용화되기 시작한 직후인 10월 9일이 되어서야 코백스 퍼실리티에 가입하는 바람에, 그 의도에 대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코백스 퍼실리티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공평한 백신 분배에 직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영국과 한국 등 코백스 퍼실리티에 계약금을 선(先)지불한 많은 고소득 국가들은 한쪽으로는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한 백신 공동 구입을 추진하면서도 다른 한쪽으로는 코백스의 취지와 반대되는 개별 기업과의 구매 계약을 했다. 결과적으로 코백스 퍼실리티는 여러 백신 공급원 중 하나로 전락했다. 부유한 국가들이 자국의 백신 확보를 위해 개별 계약을 체결하면 할수록 코백스 퍼실리티는 코로나19 백신의 물량과 가격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므로, 코백스 퍼실리티 참여 국가들이 개별 구매 계약을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백신의 공평한 접근 보장을 저해하거나 더디게 만든다. 또한, 코백스 퍼실리티의 일부 원칙은 그 기준의 모호함으로 인해 효율성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코백스 퍼실리티가 목표로 삼은 '2021년 연말까지 20억 도스' 또한 현재로서는 2021년 이후의, 즉 20억 도스 이후의 백신 분배 계획이 공개되지 않았다. 개별 국가 입장에서는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인구 20% 분량의 백신을 제공받았다 하더라도, 자국 내 집단면역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60%의 인구가 백신을 맞아야 하므로 남은 40%에게 백신 접종을 위해서라도 개별 구매 계약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의 코백스 퍼실리티 플랫폼은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땜빵'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마지막으로, 백신 배분에 전 세계 시민사회단체들의 참여를 보장하겠다는 코백스 퍼실리티의 약속 또한 투명성이 결여된 지금과 같은 의사소통 하에서는 공수표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코백스 퍼실리티는 여러 개의 시민사회단체를 선정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창구를 열어두고 있지만, 시민사회단체는 백신 제조사들과의 구체적인 계약 조건이나 가격 책정, 투자 내용 등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서 참여 권한이 없다.

팬데믹 시대가 시사하는 코백스 퍼실리티의 의미

코백스 퍼실리티는 백신 국가주의에 대항하고자 만들어진 플랫폼이다. 하지만 테워드로스 WHO 사무총장이 여러 차례 시인하였듯이, 현재와 같은 한계점을 지닌 이상 코백스 체제는 백신 국가주의를 저지할 수 없다. 설사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해도 이 플랫폼을 공정한 분배를 위한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 생산·공급량 부족과 독점가격 문제가 먼저 해결되기 전에는 코로나19 백신의 공정한 분배를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코백스 퍼실리티의 역할을 넘어 제약사들이 행사하려는 지적재산권의 유예, 연구 결과의 공유와 기술 이전 등 지금보다 더욱 근본적인 해결책들이 필요한데, 이러한 문제들을 위해 코백스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코로나19 기술 접근 풀(COVID-19 Technology Access Pool, 이하 C-TAP)과 같은 플랫폼도 참여율이 저조해 현재로서는 유명무실한 상황이다.7) 코백스 퍼실리티의 난항(難航)은 전 세계의 보건을 관장하는 기구로서 WHO가 직면한 근본적 도전들을 드러낸다. 자발성에 의존하는 구조적 한계, 미국 등 일부 잘사는 회원국들의 일방적인 권한 행사, WHO에 후원하는 기업을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들에게 권한을 주는 다중이해관계자주의(multistakeholderism) 등, 비단 WHO뿐만 아니라 국제연합(UN) 산하의 모든 다자간기구에서 점증하는 문제점들이 이번 코백스 퍼실리티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 그림 2. 인구 100명당 투여되는 코로나19 백신 물량(2021년 1월 21일 현재). 출처: Our World in Data.8)
코백스 퍼실리티와 백신 국가주의의 경험은 각국 수장들뿐만 아니라 하루하루 고군분투하고 있는 시민들에게도 큰 숙제를 남기고 있다. 1월 18일 테워드로스 WHO 사무총장은 지금 세계가 코로나19 백신 유통에 있어 심각한 도덕적 실패에 직면해 있으며, 이 실패의 결과는 빈곤국 국민들의 생명을 더욱 무참히 앗아갈 뿐만 아니라 각국의 경제적 타격을 무기한으로 연장할 것임을 경고하였다. 백신 물량을 확보한 국가와 확보하지 못한 국가로 확연히 양분된 그림 2의 세계 지도를 보면,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의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자국과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사고방식으로는 지금과 같은 백신 사재기와 가격 상승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고, 결국 이러한 접근법은 무역과 교류의 활성화를 더디게 함으로써 코로나19 종식을 저해할 것이다. 코로나19 백신의 공정한 지구적 배분은 '못 사는' 나라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의제가 아니다. 어떠한 방식으로 백신 배분을 정의하고 실행하는지는 우리 모두가 이끌어 가야 할 문제이다. 돈이 없어 백신을 구매하지 못하거나 접종을 받지 못하는 약자를 등지는 것을 합리화하는 이 배분 논리는 한국적 상황에 부합하게 변형되어 어느새 우리 삶 깊숙한 곳을 겨눌 것이다. * 참고문헌 1) '코백스 퍼실리티' 안에는 공동 구매와는 별개의 경로인 '코백스 선구매공약'(COVAX Advance Market Commitment, 이하 코백스 AMC)이 있다. 코백스 AMC는 고소득 국가 등의 원조기금으로 중하위·저소득 국가를 지원한다.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각국이 확보할 수 있는 백신의 양은 그 국가들이 코백스 AMC에 얼마의 기여를 했는지와는 별도의 사항이다. 2) 3) 4) 5) 6) 2021년 1월 20일 새로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행정 명령을 통해 WHO 탈퇴 절차 중단을 지시했다. 7) C-TAP은 코로나19 보건의료기술의 지적재산, 지식과 정보의 공동관리를 위한 지구적 플랫폼으로, 제약사나 연구기관의 연구 개발과 임상시험 결과물 공개를 요청한다. 백신의 연구와 개발 단계에서부터 개입하여 제약사들의 독점권 행사를 막고자 하는 C-TAP은 전 세계적 감염병 하에서도 이윤 추구를 최우선으로 두는 자본주의 체제 하의 제약산업에 대한 통제를 의미하며, 단순히 공동 투자와 공동 구매를 통해 배분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코백스 퍼실리티보다 더욱 근본적인 변혁을 추구한다. 8)

*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대유행을 맞아 많은 언론이 해외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백신을 얼마나 확보했는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국가별 '순위표'로 이어집니다. 반면 코로나19 이면에 있는 각국의 역사와 제도적 맥락, 유행 대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경제·사회적 역동을 짚는 보도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코로나와 글로벌 헬스 와치'를 통해 격주 수요일, 각국이 처한 건강보장의 위기와 그에 대응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모두의 건강 보장(Health for All)'을 위한 대안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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