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내 가족들은 언제 백신을 접종하게 될까?"
"정부가 확보했다고 하는 백신 물량은 충분할까?"
코백스의 원리와 운영 구조
코백스 퍼실리티를 직역하면 '코로나19 백신 지구적 공급 체계'이지만, 그다지 직관적으로 와 닿지 않고, 그 운영의 복잡함 또한 한눈에 이해하기 쉬운 것은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 백신 개발과 선구매가 본격화되며 정부 발표와 언론매체에 등장하였지만, 아직까지 코백스 퍼실리티를 백신 제조 회사들 중 하나로 인식하거나 한국이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백신을 공급받는 것을 개발도상국으로 지위가 격하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1) 코백스 퍼실리티는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백신면역연합(Global Alliance for Vaccines and Immunisation, 이하 Gavi), 그리고 전염병대비혁신연합(Coalition for Epidemic Preparedness Innovations, 이하 CEPI)이 주축이 되어 2020년 6월 11일 공식 출범한, 쉽게 설명하자면 코로나19 백신을 공동으로 구매하고 공동으로 공급하자는 취지의 대규모 '공구' 프로젝트이다.코백스 퍼실리티를 둘러싼 서로 다른 이해관계들
그러나 코백스 퍼실리티의 노력이 순조롭게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황은 그 반대로, 현재 코백스 퍼실리티는 고소득국과 저소득국 양쪽 모두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액수로 백신 개발을 진행하고 있거나 돕고 있는 부유한 국가들로부터는 외면을 받고 있고, 공정한 의약품 접근권을 추구하는 활동가들로부터는 허수아비 프로젝트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가장 주된 이유는 코백스 퍼실리티가 강제성을 담보하는 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지난해 코백스 퍼실리티가 시작할 때부터 코로나19 유행이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지금까지도 이 플랫폼에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이고 전 세계의 공조가 절실한 시기인 5월 29일 미국은 WHO를 탈퇴하기까지 하였다.6) 중국은 2020년 5월 제73차 세계보건총회에서 자국의 백신을 '글로벌 공공재'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뒤 코백스 퍼실리티 가입에 대해 줄곧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다 자국 백신이 상용화되기 시작한 직후인 10월 9일이 되어서야 코백스 퍼실리티에 가입하는 바람에, 그 의도에 대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코백스 퍼실리티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공평한 백신 분배에 직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영국과 한국 등 코백스 퍼실리티에 계약금을 선(先)지불한 많은 고소득 국가들은 한쪽으로는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한 백신 공동 구입을 추진하면서도 다른 한쪽으로는 코백스의 취지와 반대되는 개별 기업과의 구매 계약을 했다. 결과적으로 코백스 퍼실리티는 여러 백신 공급원 중 하나로 전락했다. 부유한 국가들이 자국의 백신 확보를 위해 개별 계약을 체결하면 할수록 코백스 퍼실리티는 코로나19 백신의 물량과 가격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므로, 코백스 퍼실리티 참여 국가들이 개별 구매 계약을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백신의 공평한 접근 보장을 저해하거나 더디게 만든다. 또한, 코백스 퍼실리티의 일부 원칙은 그 기준의 모호함으로 인해 효율성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코백스 퍼실리티가 목표로 삼은 '2021년 연말까지 20억 도스' 또한 현재로서는 2021년 이후의, 즉 20억 도스 이후의 백신 분배 계획이 공개되지 않았다. 개별 국가 입장에서는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인구 20% 분량의 백신을 제공받았다 하더라도, 자국 내 집단면역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60%의 인구가 백신을 맞아야 하므로 남은 40%에게 백신 접종을 위해서라도 개별 구매 계약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의 코백스 퍼실리티 플랫폼은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땜빵'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마지막으로, 백신 배분에 전 세계 시민사회단체들의 참여를 보장하겠다는 코백스 퍼실리티의 약속 또한 투명성이 결여된 지금과 같은 의사소통 하에서는 공수표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코백스 퍼실리티는 여러 개의 시민사회단체를 선정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창구를 열어두고 있지만, 시민사회단체는 백신 제조사들과의 구체적인 계약 조건이나 가격 책정, 투자 내용 등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서 참여 권한이 없다.팬데믹 시대가 시사하는 코백스 퍼실리티의 의미
코백스 퍼실리티는 백신 국가주의에 대항하고자 만들어진 플랫폼이다. 하지만 테워드로스 WHO 사무총장이 여러 차례 시인하였듯이, 현재와 같은 한계점을 지닌 이상 코백스 체제는 백신 국가주의를 저지할 수 없다. 설사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해도 이 플랫폼을 공정한 분배를 위한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 생산·공급량 부족과 독점가격 문제가 먼저 해결되기 전에는 코로나19 백신의 공정한 분배를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코백스 퍼실리티의 역할을 넘어 제약사들이 행사하려는 지적재산권의 유예, 연구 결과의 공유와 기술 이전 등 지금보다 더욱 근본적인 해결책들이 필요한데, 이러한 문제들을 위해 코백스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코로나19 기술 접근 풀(COVID-19 Technology Access Pool, 이하 C-TAP)과 같은 플랫폼도 참여율이 저조해 현재로서는 유명무실한 상황이다.7) 코백스 퍼실리티의 난항(難航)은 전 세계의 보건을 관장하는 기구로서 WHO가 직면한 근본적 도전들을 드러낸다. 자발성에 의존하는 구조적 한계, 미국 등 일부 잘사는 회원국들의 일방적인 권한 행사, WHO에 후원하는 기업을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들에게 권한을 주는 다중이해관계자주의(multistakeholderism) 등, 비단 WHO뿐만 아니라 국제연합(UN) 산하의 모든 다자간기구에서 점증하는 문제점들이 이번 코백스 퍼실리티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대유행을 맞아 많은 언론이 해외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백신을 얼마나 확보했는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국가별 '순위표'로 이어집니다. 반면 코로나19 이면에 있는 각국의 역사와 제도적 맥락, 유행 대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경제·사회적 역동을 짚는 보도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코로나와 글로벌 헬스 와치'를 통해 격주 수요일, 각국이 처한 건강보장의 위기와 그에 대응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모두의 건강 보장(Health for All)'을 위한 대안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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