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연패 끊은 국민의힘, 오세훈의 '승리 기여도'는?
언론지상에서 '미니 대선'으로 불린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거둔 승리는 의미가 적지 않다. 2016년 총선 이후 전국 단위 선거에서 이어온 4연패의 사슬을 끊은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다. 123대 122로 분패한 2016년 총선은 논외로 하더라도, 탄핵 사태 이후 치러진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은 현 야당의 압도적 패배였다. 그런 점에서 이번 보선 승리는 승승장구하던 여권의 기세를 꺾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승리 요인을 분석해 보면, 국민의힘이 자력으로 얻어낸 승리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서울시장 선거는 더욱 그렇다. 선거 캠페인의 3요소라는 인물·구도·이슈 가운데 '인물'이 승패에 미친 영향은 과거 어느 선거보다 미미했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오세훈 당선자의 승리 가능성은 본선 경쟁자였던 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물론 같은 진영의 안철수·나경원 전 의원보다도 낮았다. 지난 2월 초에 실시됐던 YTN·TBS-리얼미터 조사에서 '오세훈 대 박영선' 가상대결 결과는 박영선 40.6% 대 오세훈 29.7%. 10.9%포인트차 열세였다. 같은 조사에서 '나경원 대 박영선'은 34.0% 대 39.7%로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내 열세였고, '언철수 대 박영선'은 오히려 안철수 46.6%, 박영선 37.7%로 우세였다. 2월 22일 발표된 머니투데이-PNR 조사에서도 박영선 대 오세훈 가상대결 결과는 박영선 41.5%, 오세훈 31.6%였다. 박영선 대 안철수는 39.9% 대 41.9%, 박영선 대 나경원은 42.9% 대 38.0%였던 것과 대조된다. 그랬던 오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를 앞서기 시작한 시점은 3월 들어서였다. 오 후보가 국민의힘 후보로 선출된 것은 3월 4일이다. 그 직후 시행된 중앙일보-입소스 조사(1004명) 양자 가상대결에서 오 후보는 45.3%를 얻어 박 후보(41.6%)에 비로소 박빙 우세를 보였다. 즉 2월 말까지는 박영선 후보에게 오차범위 밖 열세였는데, 3월 초 조사부터 우세로 전환된 것이다. 당내 경선에서 거둔 오 후보의 예상 밖 승리가 역전의 발판으로 지목되지만, 외부 환경의 더 큰 요인이 작용했다. 3월 2일부터 이른바 'LH 사태'가 시작된 것이다. 공공기관인 LH 직원들이 신도시 개발 정보를 입수해 투기를 저질렀다는 정황 자체만으로 여당의 악재가 분명하지만,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직전까지 LH 사장이었다는 사정, 나아가 급격한 부동산 가격 상승 현상에 대한 정부 책임론까지 소환되면서 LH 사태는 사실상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변수가 됐다. 민주당 측이 내내 부각시킨 오 후보의 '내곡동 땅 의혹'은 판세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진보층이 경악했던 대목은 TV토론에서 나왔던 오 후보의 용산참사 관련 발언이었으나, 민주당은 여전히 '생태탕'에만 집중했을 뿐 이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7일 오전 YTN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저희 노력보다 민주당의 불공정과 내로남불에 분노한 20대·중도(유권자)가 엄청나게 많은 것 같다"고 한 말은 국민의힘의 이번 승리가 '반사 이익'에 상당 부분 기반했음을 자인한 발언이다. 오신환 전 의원도 문화방송(MBC) 라디오에 출연해 "단순한 어부지리"는 아니라면서도 "지금 국민의힘이 너무 잘해서 우리한테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을 계기로 철저히 변화하고 혁신하면서 국민들께 다시 한 번 다가가야 한다"고 했다.김종인 퇴장, 국민의힘에 남긴 위기·기회 요인
이번 보궐선거에서 오 후보보다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 인사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이었다. 50년 정치 경력의 노정객은 특유의 통찰을 곳곳에서 발휘했다. LH 사태가 터지기 훨씬 전부터 야당 선거는 본질이 '반사 이익'임을 설파한 대목도 그 중 하나다. 지난해 총선 때부터 김 위원장은 늘 "야당은 정부여당의 실수를 먹고 사는 것"이라는 말을 반복해 왔다. 다만 여당이 아무리 '실수'를 해도, 야당이 그 과실을 누릴 최소한의 자격이 있는지를 유권자 대중은 날카롭게 걸러낸다는 것 역시 김 위원장의 지론이었다. 지난해 4월 총선 대패는 야당이 그만한 기본 자격도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비대위원장 취임 직후 "나는 야당의 병을 치유하러 온 사람", "체질 개선" 등의 표현을 한 것은 국민의힘에 축적된 해묵은 병폐를 가리킨다. 결국 김 위원장이 비대위원장 취임 이후 주력해온 "수권정당 만들기" 작업이란, 여당이 실수를 했을 때 유권자들이 여당을 심판하기 위한 도구로, 현 집권세력의 대체제가 될 수 있는 수준으로 당시의 '미래통합당'을 빚어내는 조형 작업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위에 대한 대국민사과,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묘역에서의 '무릎 사과', 경제민주화·기본소득·성평등을 강조한 새 정강정책 마련 등 이른바 '김종인 플랜'으로 불린 중도화 전략은 모두 그 일환이었다. 결국 '김종인 플랜'은 이번 보궐선거의 승리로 그 가치를 입증해 냈다. 중장기 처방인 '야당 체질 개선' 못지않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거취에 관심이 집중되면 '윤 전 총장은 정부·여당 인사'라고 김을 빼거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야권 시장후보 중 지지율 수위로 나올 때는 '무관심 전술'로 호흡을 조절하는 등 노련한 상황 대처도 빛을 발했다.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자마자 당 내에 "언행에 굉장한 조심"을 당부하고, 논란성 발언은 후보 본인에게 나온 것이라도 "흥분해서 과격한 발언을 했다고 들었는데 이제는 그런 일 없을 것"이라고 바로 선을 긋는 위기관리 능력도 돋보였다. 작년 총선 당시 차명진·김대호 후보의 막말 논란에도 단호한 대응을 주도한 사람도 당시 당 대표였던 황교안 대표가 아니라 김 위원장(당시 총괄선대위원장)이었다. 문제는 보궐선거 승리 이후, 김 위원장 없는 국민의힘이 이번 승리를 '정권교체 교두보'로 활용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우선 김 위원장 본인은 선거 후 물러날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전날 취재진과 만난 그는 "약속을 지키고 갈 것"이라고 했고, 앞서서도 "선거가 끝나면 나는 사라질 것", "뒤도 안 돌아보고 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대선 과정에서의 역할론에 대해서도 "밖에서 구경하는 게 재미있을 것"이라고 짐짓 손사래를 치고 있다. 김 위원장이 떠난 후 그가 억눌러 왔던 당내 보수파의 반동, 안정적 관리능력 부재 등의 도전 요인이 부각될 경우 국민의힘은 보궐선거 '승리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 실제로 김 위원장 재임 중에도 공정경제 3법 입법 과정,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일정 등을 놓고 당내 보수파의 반발이 일었으며, 보수진영 차기 당권·대권주자로 꼽히는 인물들의 위기관리 능력은 검증된 바 없고 오히려 스스로 돌출 언행으로 위기를 자초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때문에 당내 일각에서 김 위원장 재추대론이 나오기도 하지만, 본인이 고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김 위원장 1인에만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 또한 수권을 노리는 정당으로서는 면이 안 서는 노릇이라는 비판도 예상된다.윤석열·안철수 등장…국민의힘 앞날은?
이처럼 △보수파의 반동 △위기·상황 관리 능력 등의 도전을 받는 국민의힘이 야권 재편의 방향을 제대로 추스를 수 있느냐는 의심도 산다. 우선, 조만간 안철수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당과의 합당 문제를 맞게 될 전망이다. 선거 기간에는 안 대표와 김 위원장 간의 악연이 거친 감정싸움으로까지 이어졌었으나, 이번 선거가 끝나면 김 위원장은 당에서 "사라질" 것이고 안 대표는 국민의힘과 한 배를 타게 된다. 안 대표는 보궐선거 야권 단일후보 경선 과정 중이던 지난달 16일 "국민의힘과 합당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어 선거 이틀 전인 이달 5일에는 "야권이 실제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서울시장 보선에서는 이기고 대선에서는 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혁신적 대통합과 정권교체"를 주장했다. 안 대표는 보궐선거 과정에서 단일화 결과 승복으로 국민의힘 내부에 전보다 우호적 평가를 끌어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과거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번 선거 과정에서는 굉장히 깨끗하게 승복했고 단일후보 당선을 위해서 굉장히 애를 많이 써서 국민들 시각이 달라졌을 것"(4.7. 권성동 의원)이라는 미묘한 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안 대표에 우호적인 이들과 적대적인 이들이 당 안에 병존하는 상태에서 진행될 야권 통합 논의가 유권자들에게 자칫 '보궐선거 승리 지분 나누기' 싸움으로 비치면 간신히 살아난 야권의 기세가 꺾일 수도 있다. 안 대표 본인이 5일 회견에서 시사했듯, 야권 재편은 본질적으로 차기 대선 경쟁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선이 끝나면 본격화할 윤석열 전 총장의 움직임도 변수다. 윤 전 총장은 정치적 오해를 살 우려 때문에 재보선 내내 정중동 행보를 보였다. 윤 전 총장이 독자 노선을 걸을 것인지, 국민의힘 등 기존 정당에 힘을 실을 것인지도 미정이다. 단, 국민의힘의 입장에서 보면, 현재 지지율 1위 주자인 그를 당 밖에 그대로 두고는 대선을 준비할 수가 없다. 지난 2월 중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 1위일 때의 상황과 같은 것이다. 결국 윤 전 총장을 당으로 끌어들이든지, 아니면 최소한 단일화라도 성사시키는 과제가 국민의힘에 남는다. 지난 2월 김종인 위원장이 안 대표를 상대로 했던 것처럼, 때로는 뚝심으로 버티고 때로는 공개 설전도 마다하지 않으며 윤 전 총장 측과 '밀고 당기기' 게임을 벌여야 한다. 차기 국민의힘 당권·대권을 누가 쥐게 되든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의 정책 방향이 자칫 '도로 새누리당'으로 회귀하거나, 탄핵 불복 세력이 당에 복귀해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최순실 특검' 수사팀장이었던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행(行)을 택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보궐선거를 승리하고 나면 국민의힘이 중심이 되는 정계 개편을 할 수 있어야 되는데,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계 개편을 하는 데 방해가 되는 인간들이 또 들어와서 혼란을 겪으면 안 된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의 합류 가능성에 대해서는 "국민의힘이 그런(긍정적) 모습을 보이면 그 사람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선을 앞두고 윤 전 총장 문제를 마주해야 할 국민의힘이 주의해야 할 점을 미리 압축적으로 제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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