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생 입학을 위해 여학생 성적을 하향 조작하는 이 불가능한 일을 하나고등학교는 손쉽게 해냈다. 하나고는 2011년부터 2013학년도까지 신입생 입학 당시 남녀 학생의 비율을 맞추기 위해 합격선에 미치지 못한 일부 남학생들에게 ‘보정 점수’를 부여하는 등의 방식으로 등수를 상향 조작했다. 이렇게 부당한 혜택을 받고 하나고를 최종합격한 지원자는 3년간 총 90명. 이중 남학생의 숫자는 총 78명으로 부정하게 합격한 지원자의 약 80%를 차지한다. 어쩌면, 하나고의 이런 남녀차별 입시비리는 '하나패밀리'에 뿌리를 둔 일인지 모른다. 하나고를 설립한 하나금융그룹의 계열사인 하나은행도 남녀를 노골적으로 차별해서 채용하다가 결국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나은행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신입직원 공채에서 여성 지원자의 합격 비율을 불리하게 정해놓는 방식으로 불공정한 채용을 진행했다. 또 다른 계열사인 하나카드의 장경훈 대표이사는 카드상품을 여성에게 빗대며 여성을 성상품화한 발언을 했다가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룸살롱에 갈 때 목표는 예쁜 여자인데 예쁜 여자는 단가가 있다. (중략) 아무리 예쁜 여자여도 하루 오늘 즐겁게 놀진 모르겠지만 평생 그런 여자랑 살겠나. 카드를 고르는 일이라는 것은 애인이 아니라 와이프를 고르는 일이다."
하나은행의 남녀차별 채용비리부터 하나카드 대표이사의 여성 비하 발언까지. 마치 쌍둥이처럼 이들을 꼭 닮은 듯한 하나고의 남녀차별 입시비리는 어떻게 수면 위로 올라온 걸까. 서울특별시의회가 2015년 8월 26일 실시한 ‘하나고등학교 특혜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행정사무조사’에서 하나고등학교 공익제보 교사는 이런 취지의 증언을 했다.
"'남녀 성비를 맞추기 위해 하나고 신입학 지원자 중 남학생의 성적을 상향 조정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하나고 책임자들은 해당 의혹에 대해 “기숙사 수용 성비를 맞추기 위해 지원자들의 점수를 임의로 조정했다”고 해명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김승유 당시 학교법인 하나학원 이사장은 내부 폭로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학사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학교에 맡기고 있기 때문에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만, 저는 충분히 (학교의 입장이) 이해가 됩니다. 양심의 가책을 저는 느끼지 않습니다."
김승유는 2008년 11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하나고 이사장을 지낸 인물이다.
남녀 성비를 맞추기 위해 지원자 중 남학생의 성적을 상향 조정했다는 내부 폭로가 나왔지만, 학교 총 책임자인 이사장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고 답한 상황.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은 성별을 이유로 입시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과연 하나고는 신입생 입시 관련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일”을 한 게 맞을까? 2015년 서울시교육청의 특별 감사를 통해 드러난 하나고 남녀차별 입시비리 사건의 실체는 이렇다. 하나고는 2011년∼2013학년도 신입생 입학전형 당시 1차 서류전형과 2차 면접 전형이 끝난 후 평가위원들끼리 ‘전형소위원회’를 열고 지원자들의 합격여부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입학홍보부장은 회의에서 결정된 합격자들에게 사후적으로 '전형소위원회의' 평가 점수를 부여해 통과자를 결정했다. 즉, 서류전형 합격자 또는 최종합격자가 평가로 결정되었어도, '전형소위원회'의 평가 점수에 따라 최종 합격여부가 달라질 수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고는 2011학년도에는 지원자 28명에게 0.1점~1.7점을, 2012학년도에는 지원자 25명에게 0.1점~4.93점을, 2013학년도에는 지원자 21명에게 0.14점~12.20점을 구체적인 기준도 없이 ‘보정점수’로 부여해 1단계 서류전형을 합격시켰다. 2011학년도와 2012학년도 2단계 심층면접에선, 합격생들에게만 5점을 주고 다른 학생들에게는 0점을 주는 방법으로 학생들의 등수를 인위적으로 조정했다. 2013학년도에선 일부러 감점을 주고 불합격시킨 사례도 있다. 하나고는 2단계 심층면접에서 지원자 13명에게 -4.25점~-0.02점의 감점을 줘 불합격시키고, 지원자 16명에게는 합격 커트라인에 맞춰 0.05점~ 2.45점의 가산점을 부여해 합격자를 선정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11학년도 28명(남자 25명), 2012학년도 33명(남자 29명), 2013학년도 29명(남자 24명) 등 3년간 총 90명이 하나고를 부당하게 최종합격했다. 이중 남학생의 숫자는 총 78명으로 부정 최종합격한 지원자의 약 80%를 차지한다. 당시 하나고의 신입생 입학정원은 매년 200명가량이었다.
결론적으로, 하나고는 남녀 학생의 비율을 맞추기 위해 합격선에 미치지 못한 남학생들에게 ‘보정점수’를 따로 주는 방식으로 지원자들의 등수를 조작했다. 최종합격자도 조작된 등수에 맞춰 선발됐다. 여기서 더 큰 문제가 있다. 합격선에 미치지 못한 남학생 중에서도 일부만 보정점수를 받는 혜택을 누렸다는 점. "기숙사 수용 성비를 맞추려했다"는 하나고 해명대로 라면, 남학생들을 차점자 순으로 그대로 올려 합격시키는 게 논리적으로 맞다. 하지만 하나고는 등수와 상관없이 남학생 중 일부에게 보정점수를 부여했다. 실제로 애초에 190위권에 있던 남학생이 점수 재조정을 통해 일반전형 모집 정원인 120등 안으로 진입해 합격한 사례도 있었다. 즉, 남학생 중에서도 특정 배경의 인물을 밀어주기 위해 점수를 조정했을 사례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더불어 하나고 측의 주장과 달리, 남학생 외에 일부 여학생들도 점수 조작을 통해 최종합격생에 포함되기도 했다. 하나고는 2014년 8월 편입학 전형에서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 딸의 면접점수를 상향 조정하는 등 성적 관리를 부당하게 처리한 바 있다. <동아> 사장 딸의 하나고 부정 편입학 의혹은 2021년 5월 현재 검찰에서 재수사 중이다. 하나고 입시비리 의혹에 대한 특별감사를 맡은 서울시교육청은 "입학전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훼손하는 성적조작 정황을 확인했다"는 감사 결과를 2015년 11월 발표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감사 내용을 근거로 김승유 하나고 이사장, 이태준 교장, 정철화 교감 등을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은 점수 상향조정의 혜택을 받은 일부 남학생들의 배경은 밝히지 않은 채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2016년 11월 30일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의 논리는 이렇다.
"서류전형시 ‘전형소위원회’ 평가 점수를 부여함에 있어 사전 공지된 전형계획을 위반한 것이 특정지원자를 부정 합격시키기 위한 걸로 보기 어렵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울고등검찰청에 항고했지만, 고검은 2017년 4월 12일 항고를 기각했다. 사실 '하나 패밀리'의 남녀차별 행태는 유서 깊다. 하나학원의 설립자인 하나금융그룹의 계열사인 하나은행도 신입사원 공채에서 수년간 남녀를 차별해 채용해왔다. 하나고 남녀차별 입시의 총 책임자로 꼽히는 김승유 이사장도 1997년부터 2005년까지 하나은행 은행장을, 2005년부터 2012년까지는 하나금융그룹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하나은행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신입직원 공채에서 여성 지원자의 합격 비율을 불리하게 정해놓는 방식으로 불공정한 채용을 진행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업주는 노동자를 모집할 때 성별을 두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 당시 하나은행 공채 응시 성비는 남성과 여성이 약 1대1 비율이었으나, 최종 합격자 성비는 최대 9대1까지 벌어졌다. 이 때문에 하나은행 여자 지원자들은 남자 지원자보다 훨씬 높은 합격 커트라인을 넘어야 했다. 남자 지원자에 비해 점수가 좋은데도 탈락하는 여자 지원자들이 속출했다. 특히, 2015년~2016년 공채에서 남녀를 차별해 뽑도록 지시한 사람은 함영주 전 하나은행장. 함 전 은행장은 현재 하나학원 이사이기도 하다. 그는 2015년, 2016년 하반기 신입직원 공개채용 당시 인사부장에게 특별 지시를 했다.
"하나은행 전체 직원 중 남자 직원이 부족하니 남자 직원을 많이 뽑아."
2015년 공채 당시 인사부장 송○○는 그해 채용에서 남성과 여성의 합격자 비율을 4:1로 맞췄다. 2015년 공채 최종합격자는 남자 375명, 여자 75명으로 여성 합격자 비율은 약 16.7%에 그쳤다. 2016년 하반기 공채도 비슷하다. 당시 인사부장 강○○은 공채 절차에서 남성과 여성의 합격자 비율을 4:1로 딱 맞췄다. 2016년 하반기 신입직원 최종합격자는 남성 120명, 여성 30명으로 여성 합격자 비율은 약 20% 밖에 안 된다. 1심 판결을 담당한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9단독(법관 박수현)은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강OO 전 인사부장과 송OO 전 인사부장에게 각각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과 벌금 100만 원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벌금 200만원을 2020년 12월 9일 선고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를 받는 주식회사 하나은행에게는 벌금 700만 원을 내렸다. 아래는 판결문의 한 대목이다.
"여성 지원자의 합격 비율을 사전에 정해둠으로써 합리적인 이유 없이 이들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채용절차를 진행했다. 피고인들의 행위는 투명하고 공정한 평가를 대하고 채용절차에 임한 일반 지원자들의 신뢰를 저버리고 사회 전반의 신뢰를 훼손하여 죄책을 가볍게 평가할 수 없다."
당시 하나은행장을 역임했던 함영주 현 하나금융 부회장은 2015년~2016년 신입사원 공채에서 사외이사 또는 계열사 사장과 관련된 지원자들을 부정 채용한 혐의로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채용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는 함 부회장은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는 채용비리 혐의로 한창 1심 재판을 받던 2019년 1월경, 하나학원 이사로 취임했다. 그의 임기는 2023년 1월경으로 앞으로 약 2년이 남았다. 함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하나고 입시비리의 총 책임자인 김승유 전 이사장도 무탈히 지낸다.
서울시교육청은 2015년 감사 당시 부적절합 학사행정 개입 문제 등으로 고발 결과에 따라 김 전 이사장에게 '임원취임 승인취소'를 예고했지만, 검찰의 불기소 결정으로 결국 이를 이행하지 못했다. 김승유 당시 이사장은 4년 임기 만료에 따라 하나학원 이사장직을 2016년 10월 31일 자진해서 내려놓았다. 그의 후임으로 검찰총장 출신 인사가 그 자리를 채웠다. 현 하나학원 이사장 김각영은 제32대 검찰총장을 지낸 인물이다. 김 전 이사장이 임원직을 자진해서 사퇴한 데 따라, 그가 다시 하나학원 이사로 돌아올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하나학원 정관 제20조(임원선임의 제한)는 "관할청으로부터 ‘임원취임 승인’이 취소된 날로부터 5년이 경과한 사람은 재적 이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고 명시해 두었다. 자진해서 물러난 김 전 이사장은 이 조항에 해당되지 않는다. 실제 이태준 전 교장의 경우 2016년 10월 임기 만료에 따라 하나학원 이사직을 내려놓았다가, 2017년 7월 다시 이사로 복귀했다. 이 전 교장은 2021년 5월 현재도 하나학원 이사다. 기자는 반론을 듣고자 김승유 당시 하나고 이사장의 자택을 지난 3월 24일 찾아갔지만, 그를 만날 수 없었다. 김 전 이사장에게 "남녀차별 입시비리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의사가 있는지", "이태준 전 교장처럼 하나학원 이사로 다시 돌아올 계획이 있는지"를 6일 문자로 물었다. 그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하나금융그룹에도 "함영주 부회장은 채용비리 재판 1심에서 유죄가 나올 경우 하나고 이사직을 내려놓을 의사가 있는지" 질의했지만,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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