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여권의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야권의 대표적인 '경제통'인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 간 소셜미디어 상에서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발단은 이 지사가 지난 4월 25일 그의 페이스북에 '형벌의 실질적 공정성을 위한 재산비례벌금제'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다. 이 지사는 "현행법상 세금과 연금, 보험 등은 재산과 소득 수준에 따라 다르게 내고 있지만 벌금형은 총액벌금제를 채택하고 있다"며 "같은 죄를 지어도 부자는 부담이 크지 않아 형벌의 효과가 떨어지고 빈자에게는 더 가혹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불합리한 제도를 고치기 위해서 핀란드나 독일에서 시행하는 '재산비례벌금제'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윤 의원은 '형편에 따라 벌금액을 조정하자는 이재명 지사, 왜 거짓을 섞는지 의문'이라는 제하의 글을 적어 이 지사를 비판했다. 윤 의원은 "만약 재산을 기준으로 벌금액을 정한다면, 집 한 채 달랑 갖고 있고 소득이 없는 은퇴 고령자가 벌금을 내기 위해 집을 팔아야 할 수도 있으니 안 될 말"이라며, 이 지사의 주장과 달리 핀란드는 '재산비례벌금제'가 아닌 '소득비례벌금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두 사람 사이에 거친 공방이 오가긴 했지만, 재산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소득별 차등 부과를 할 것인지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가난한 서민의 편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현행 벌금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사실 이 사회에서 빈부 간 격차를 반영해서 제도개선이 이루어졌으면 하고 기대되는 사안은 비단 벌금형에 그치지 않는다. 영국에는 '카운슬 텍스(council tax)'라는 세금이 있는데, 이는 우리의 주민세와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우리나라에서 개인에 대한 주민세는 1만 원 이하에서 조례로 정한 세율로 부과하기에 부담이 되지 않지만, 영국의 주민세는 말이 주민세지 부과되는 금액이 만만치 않고, 지방정부의 주된 소득원이라고 볼 수 있어 매우 중요한 세금이다. 그런데 영국 카운슬 텍스의 부과 기준이 바로 주택의 가치다. 주택을 영국 감정원에서 평가한 후 A등급부터 H등급으로 나누어 비싼 주택에 거주하면 많은 금액의 주민세를 내야하고, 그렇지 않은 서민 주택에 살면 미미한 금액의 주민세가 부과된다. 즉, 고가의 집에서 상대적으로 편안한 삶을 누리는 부자들은 세금을 더 냄으로써 가난한 사람들과 다 함께 잘 사는 사회를 가꿔야 한다는 생각을 그들은 갖고 있다. 한편 고가 주택에 거주하는 부자들이 내는 돈은 가난한 사람들의 의료비, 쓰레기 수거비, 도서관 무료 이용비, 대중교통 보조금 등으로 소요되며, 주민세 부담이 다소 크다고 한들, 설마 은퇴 고령자가 주민세 때문에 집까지 팔아야 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윤 의원이 우려하는 상황까지는 빚어지지 않을 듯하다. 이와 유사한 개선이 필요한 분야가 공과금이다. 각종 공과금(전기세, 수도세 등)의 부과도 부의 기준에 따라 부과되는 게 바람직하다. 가령, 부자 동네에 거주하는 부유한 사람들은 같은 양의 전기를 사용해도 더 비싼 전기료가 부과되고, 상대적으로 가난한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은 동일한 사용량에도 불구하고 값싼 전기료가 청구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부자들 집에 가면 '빵빵하게 틀어 놓은' 에어컨 덕분에 여름이 덥다고 한들 두렵지 않다. 그러나 쪽방촌의 사정은 다르다. 에어컨도 없을뿐더러,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땀띠가 여기저기 난 아이를 부여 안고 연신 부채질을 하며 선풍기도 틀지 못하는 엄마들도 있을 것이다.(<아름다운 대한민국의 건설>(박병일 지음, 서울경제경영 펴냄) 인용) 지난 4월 28일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1조8000억 달러(한화 약 2005조 원) 규모의 지출 계획인 '미국 가족계획'을 공개하고, '부자 증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사회가 부자들을 적대시하고, 호시탐탐 그들의 호주머니를 털 궁리만 하는 건 옳지 않다. 하지만 전통적인 선진국이자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두 국가가 가려고 하는 길, 즉 고통받는 서민들에게 넓고 깊은 지원을 행하고자 애쓰고, 불황과 불평등을 극복하는 데 온 국민이 함께 노력하며, 어떻게 하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함께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는 그 길이 정답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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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대 경영학과에서 국제경영을 가르치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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