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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준석은 '여성할당제 폐지' 주장까지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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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어쩌다 이준석은 '여성할당제 폐지' 주장까지 갔을까?

"'할당제'는 누적된 차별구조를 시정하기 위한 것"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에 나선 이준석 전 최고위원의 '여성할당제 폐지' 공약을 두고 당내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경선 후보 김은혜 의원은 최근 연일 '여성할당제 역차별론'을 주장하는 이 전 최고위원을 향해 "할당제를 시행해 본 적도 없는데 폐지론 자체가 말이 안 된다"라고 정면 비판했다.

성차별과 젠더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군대-군가산점-여성할당제'로 소환되는 '남성 역차별론'이 맞선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름만 있는 '여성할당제'가 최근 다시 공격의 대상이 된 이유도 마찬가지다. 과거 역차별론이 '일부 남성집단의 여론'에 그쳤다면 최근에는 정치 의제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남성 역차별론'을 의제로 가져간 건 단연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다. 이 전 최고위원은 지난달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를 두고 "민주당이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해 참패했다"는 분석을 내놓으며 이같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급기야 여성들의 안전에 대한 우려를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이라고 폄훼하고, 성차별은 "소설과 영화 등을 통해 가진 근거 없는 피해의식", 여성혐오 범죄는 "개별 범죄를 확대 해석한다"는 취지로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당권 경쟁을 앞두고 안티페미니즘(反여성주의)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실재하는 사회 문제를 외면하고 분노를 자극한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이 전 최고위원의 '여성할당제 폐지' 주장에 여성계는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여성 할당'이 사실상 권고로만 있을 뿐 구체적인 '제도'는 없을뿐더러, 차별구조 극복과 사회 통합을 위해 소수자 우대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공감대와도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 전 최고위원을 향해 "사회적으로 구조화한 차별에 대한 인식이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진 전 교수의 말대로 "민간이건 공공이건 공식적으로 여성을 차별하는 제도는 찾기 힘들다." 선거제도를 예로 들면 '후보는 남성이어야 한다', '여성을 뽑지 말자'는 규정은 없다. 선거에 나갈 수 있는 피선거권 규정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의 경우 '25세 이상의 국민'이면서 선거사범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자 등 법률에 의해 피선거권 정지되거나 상실되지 않은 경우면 된다.

그런데 여야를 막론하고 매 총선 후보는 남성 일색이다. 지난 총선에서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나 제1야당인 당시 미래통합당 모두 여성 후보 비율이 10% 선에 그쳤다. 21대 국회에서 여성은 총 300명 중 57명, 19%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여성 의원 비율이 2017년 기준 평균 28.8%였다는 점에 비춰볼 때 한참 낮은 수치다.

시민이 선출하는 국회의원직조차 특정 성별, 나아가 특정 연령, 특정 지역, 특정 학교 혹은 직업군에 쏠려있다면 공정해 보이는 규칙이 실제로 공정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이를 '간접차별'로 설명한다. 중립적 기준을 적용한 것처럼 보이나 실질적으로 특정 집단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간접차별이라고 한다. 미류 활동가는 "역사적으로 누적된 차별의 구조를 드러내는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의 저서 <선량한 차별주의자>에는 차별구조가 만든 현상의 예시로 '임금'을 제시한다. 똑같은 일을 하고 같은 성과를 내는 두 사람을, 단지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임금을 다르게 지급하는 건 부당한 차별이라는 걸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좀 더 복잡하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저임금,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비율이 높다. 또 여학생들은 높은 임금 주는 대기업보다 임금이 낮은 공무원 시험에 몰린다.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차별이 없는 상태에서도 그런 선택을 할지" 고민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OECD 국가들은 성별 할당제를 시행한다. 유럽연합(EU)은 '특정 분야의 성비가 2/3를 넘지 않게 한다'는 규정을 두고 남성이든 여성이든 최소 30% 비율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성별뿐 아니라 인종, 신념, 출신 국가 등 역사적으로 차별받아온 집단의 구성원을 우대하는 정책은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의 일환으로 필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사회에는 어떤 차별구조가 있고, 특정 집단에게 다른 기준이 적용되거나 기회가 차등적으로 주어진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미류 활동가는 "할당제가 마치 인원을 배정해서 특혜를 주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데 실제로 할당제는 적극적 차별시정조치라는 맥락에서 과거부터 구조화되고 역사화된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로서 도입됐다"면서 "할당제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현재의 차별에도 눈감자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더 중요한 건 할당제가 한국사회의 어떤 차별구조를 지목하고 직시하게 하는지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할당제는 궁극적 조치가 아니라 구조적 차별의 맥락 속에서 이해되고 얼마든지 수정되거나 변경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할당제를 둘러싼 사회적 토론은 할당제 자체가 공정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할당제가 목표로 한 성차별이 얼마나 시정됐느냐에 맞춰져야 한다"며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고위직으로 갈수록 여성이 없다. 이런 곳에서 할당제의 필요성이 드러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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