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의 기후와 환경 정책은 선언적이고 이중적이다
문재인 정권의 기후와 환경정책은 다분히 선언적이고 이중적이다. 주지하듯, 2016년에 영국의 기후변화 NGO <기후행동추적(Climate Action Tracker)>은 ‘세계 4대 기후 악당 국가’로 한국을 지목하였다. 1인당 탄소 배출량의 증가 속도, 석탄화력발전소 수출에 대한 재정 지원, 당시 박근혜 정권의 202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폐기 등의 사유로 100점 만점에 28.5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문재인 정권이 ‘제3차 녹색성장 5개년(2019∼2023년)’ 계획을 확정하고 그린 뉴딜을 추진하며 탈원전과 재생에너지체제로 정책방향을 잡은 것은 잘한 것이다. 하지만, 추상적인 목표는 있는데 구체적인 실천은 별로 진행되지 않고 있으며 말과 실천이 엇나가고 있다. 목표에 맞추어 패러다임과 시스템의 전환, 제도 개선, 정책의 실시, 재정 투여 등이 따르지 않고 있다.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체제를 말하면서 원전과 석탄화력 발전소를 수출하고,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공약을 번복하고 건설을 재개했다. 에너지 전환을 표방했지만 전기 요금은 인상하지 않았다. 가덕도 신공항 등 소위 ‘문재인 판 4대강 사업’ 등 대형개발사업도 여전하다. 4대강 보를 단계적으로 철거하고 강을 복원해야 하는데 몇몇 보의 수문 개방으로 그치고 있다. 에너지 가격, 세제개편, 탄소세 등 제도적 개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린뉴딜이라면서 석탄발전, 내연기관차량 생산과 같은 회색산업 축소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미세먼지 관리 종합대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체감 성과는 미미하다. 무엇보다 성장 위주의 개발 경제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탄소 중립사회 지향’, ‘저탄소 경제’를 표방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까지 어느 수준으로 탄소배출이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목표가 없다. 기후위기가 심각함을 고려하여 세계 주요국이 미국 52%, EU 55%, 중국 65%, 영국 78%로 탄소배출 감축목표를 상향했는데, P4G 의장국인 우린 아직 24.4% 감축에 머물고 있다.기후위기의 양상과 영향: 2050년까지 탄소배출 0에 도달해야 파국을 면한다
기후위기는 임계점을 넘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지구촌은 매년 360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고 이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Hannah Ritchie and Max Roser, 2020) 이로 인하여 1만 년 동안 4도 가량 오른 지구의 평균기온이 최근 1백년 만에 1도가 상승하였다.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로 대형 산불, 역대 급의 홍수, 폭설, 가뭄, 폭염, 한파, 태풍, 빙하의 소멸, 미세먼지 등 기후위기가 점점 고조되고 있다. 호주 산불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재작년과 작년 사이에 장장 6개월 동안 서울시 면적의 307배나 되는 광대한 지역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1,860만 헥타르가 불타고 34명과 10억 마리의 동물이 죽었으며 몇몇 종은 멸종위기에 처했다.”(Wikipedia) “직접 원인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엘니뇨 현상, 이의 연장인 (인도양 양쪽의 온도 격차가 심해져 동아프리카에서는 홍수가 나고 호주는 더욱 건조해진) ‘인도양 쌍극자(Indian Ocean Dipole)’ 현상 때문이다.”(Frank Gaglioti, 2020)브라질에서는 광산과 목장, 농장 개발을 위한 인위적 발화도 합쳐져 “2019년에만 8만 9,178건의 산불이 발생하였으며, 2020년 7월 한 달 동안에만 6,091건의 산불이 발생하였다.”(<문화일보>, 2020. 8. 2.) “(2020년) 1월부터 7월까지 발생한 러시아 지역 산불 … 면적은 한국 전체 면적의 두 배 가까이 되는 1900만ha에 이른다. … 영구동토층의 균열이 지속되면 내부에 매장돼 있던 메탄과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방출된다. 안에 갇혀 있는 탄소량은 학자에 따라 수천 억t에서 최대 1조 6,000억t으로 추정된다.”(<동아사이언스>, 2020. 8. 21.) 만약 현재의 상황이 더 악화하여 임계연쇄반응(criticality chain reaction)이 일어난다면, 지구촌은 회복이 불가능한 파국을 맞을 수 있다. 기후위기와 환경파괴로 인하여 “지금 1초 동안 0.6헥타르의 열대우림이 파괴되고 하루에만 100여 종의 생물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앨 고어, 1994) “국제자연보존연맹(The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은 전 세계 과학자 1,700명이 참가하여 조사한 44,838종의 대상 동식물 가운데 38%인 16,928종이 멸종위기에 놓였다고 발표하였다.”(Jean-Christophe Vié, 2008) “지금 상태에서 획기적인 전환이 없을 경우 … 2080년까지 18억 명이 물 부족으로 고통을 당하고, 해수면 상승 등으로 3억 3천만 명이 홍수를 피해 이주해야 하고, 2억 2천만 명에서 4억 명이 말라리아에 걸릴 것이다.”(UNDP, 2006)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2,000년 수준에서 밀 생산량은 50퍼센트, 쌀 생산량은 17퍼센트, 옥수수 생산량은 6퍼센트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제러미 리프킨, 2014) 기후위기의 경제적 영향도 지대하다. “1980년부터 2020년까지 극한 날씨의 비용은 1조 8,750억 달러에 이른다.”(//www.ncdc.noaa.gov/) “2015년 스탠퍼드대의 한 연구는 기후 변화가 GDP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려고 시도했고, 그들은 기후 변화가 세계의 GDP를 20% 이상 감소시킬 가능성이 51%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는 GDP가 -26.7%로 떨어졌던 대공황과 견줄 만한 수치다. 유일한 차이점은 기후변화 영향의 경우 GDP 감소는 영구적이라는 것이다.”(Kimberly Amadeo, 2021) 기후위기는 환경을 파괴하고 생명들을 멸종으로 이끌고 인간의 건강에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면서 노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축구대회의 건설공사 현장에서 10년 동안 남아시아 이주노동자 6,500여 명이 사망했다.”(<The Guardian>, 2021.2.22.) 이들 중 69%가 자연사로 분류되었는데 대다수 노동자가 폭염 속 노동으로 인한 열 스트레스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후위기는 화석연료 관련 산업의 일자리 감소와 재생에너지 일자리 창출, 노동자 · 농민의 노동조건 악화와 산업재해 증대 등의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위기의 원인: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다
이렇게 여러 위기에 놓인 원인은 여러 가지다. 핵심이자 근본 원인은 자본주의 체제다. 문제는 생산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있다. 예로 들자면, 세계 식량 생산은 78억 명이 먹고도 남을 정도로 생산되는데, 8억여 명이 기아에 허덕인다. 더 야만적인 것은 이들 8억 명이 충분히 먹고도 남는 양, 4,000억 달러(약 439조 원)어치의 음식물 쓰레기를 매년 버린다는 점이다.(//www.wrap.org.uk/)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102.3%인데 자가 주택비율은 56.8%에 지나지 않는다.(//www.index.go.kr/) 자연 자체는 물질대사를 하며 순환하는 생태계(eco-system)인데, 이 순환이 파괴되어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까닭은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가 이 순환을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확대재생산의 원리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이기에 자본의 탐욕은 끝없이 증식되기 마련인데, 자본이 증식되면 될수록 자연은 착취당한다. 자본주의는 선과 악, 이타와 이기의 혼합체인 인간이 후자에 더욱 기울어지도록 유혹하고, 개인이 신과 인간보다 돈을 더 섬기면서 서로 경쟁하고 욕망을 증식하며 더 많은 소비를 하도록 조장한다. 이 체제는 탐욕과 이기심, 경쟁심을 견제해야 할 이성마저 도구화하면서 모든 시스템과 과학기술을 계산이 가능한 목적에 종속시킨다. 자본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살인, 쿠데타, 인간과 생명의 대량학살, 전쟁도 불사하며 이를 수행하기 위하여 국가와 동맹을 맺는다. 자본은 물질계에 이어서 정신과 무의식의 영역까지 시장으로 전환하고, 사물·자연·인간의 가치를 배제하면서 이를 교환가치로 대체하여 물화(物理)와 소외를 심화하고 공동체를 파괴한다. 모든 생산수단은 물론 인류와 생명의 공동자산인 땅, 숲, 바다마저 사유화하며 자연을 마구 개발하고 착취하여 불임의 체계로 전락시켰다. 둘째, 산업화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와 결합한 산업화를 단행하면서 인간 사회는 화석연료를 에너지로 삼으면서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방출하였으며, 수많은 상품을 생산하며 중금속과 독성물질, 플라스틱을 대기와 땅, 강과 호수, 바다로 배출하였다. 자본주의적 산업화는 도시화를 촉진하고 인구를 증가시켰다. 셋째, 근대 국가의 실패 때문이다. 근대 국가는 시민사회와 자본 사이의 균형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적 통제 또한 상실하였다. 후기 자본주의 체제에 와서 자본주의 체제가 점점 고도화하면서 정치와 경제의 영역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이 토대를 바탕으로 자본은 국가의 정책과 재정이 자본에게 유리하게 결정되도록 정치를 작동시키기를 원하고, 국가는 경제 발전과 개발을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자본의 참여를 필요로 하였다. 이로 인하여 정치를 매개로 한 국가와 자본의 동맹은 점점 공고해지고 국가는 정당성의 위기에 직면하였다. 넷째, 제국주의와 제국 중심이 주변부를 착취하는 세계체계(world system) 때문이다. 제3세계의 저발전(under-development)의 근본원인은 세계체제이고, 제3세계 노동자 민중의 빈곤은 제국과 제3세계 지배층의 동맹이 과도하게 착취하면서 폭력에 의해서 지배를 유지한 때문이다. 이는 환경문제에도 유사하게 작동하고 있다. 유럽 문명이 들어오기 전까지 아프리카와 남미의 사회는 자연과 공존하며 살았다. 그들이 만들고 먹고 사용한 것들은 화살촉에서 대변과 풀과 진흙과 돌과 나무로 이루어진 집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러던 그들이 환경 위기를 겪게 된 것은 서구식 개발과 제국의 착취 때문이다. 서양 사회는 이 공존과 상생을 추구하는 ‘야생의 사고’를 ‘미개와 야만’으로 규정했으며, 문명의 이름으로 서구화와 산업화, 자연의 정복과 개발을 단행했다. 서양의 백인들은 삼림을 파괴하고 대형 농장을 짓고 자원을 수탈하고 노동을 착취하였다. 이로 제3세계의 자연이 파괴되고 공동체가 해체되고 그중 여러 나라가 가난과 내전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 사회는 “서구적 산업모델 및 서구식 근대화와 농법, 대형농장체제의 수용 → 생산 및 인구의 증가 → 산림의 개발과 비료와 농약의 과다 사용 → 산림 파괴, 토양의 사막화 → 강수량 저하와 지하수 및 하천수 감소, 토양오염, 지하수 오염 → 가뭄과 식수 고갈 → 농촌공동체 파괴와 흉년, 기근, 혹은 내전과 전염병 → 독재 및 서양의 종속 심화”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다섯째, 도시화 때문이다. 지구촌은 2008년을 기점으로 도시 인구가 절반을 넘어섰다. 이는 절반 이상이 순환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감을 의미한다. 여섯째, 인구의 급증 때문이다. 2021년 5월 28일 현재 세계 인구는 78억 7천 5백 만 명에 달한다.(//populationmatters.org) 78억 명의 인구가 매일 호흡하고 먹고 사용하면서 수많은 오염물질을 배출하고 있다. 일곱째, 국가와 자본의 동맹이 만든 사생아 가운데 하나인 토건카르텔 때문이다. 후기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순이 결합된 토대 위에서 토건 카르텔이 더욱 강화하였다. 국가는 장기침체의 국면에서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로 국토개발을 선호한다. 자본과 기득권 동맹에게 토건사업은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큰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방편이다. 정치인-관료-토건기업을 중심으로 한 자본-토호 세력으로 이루어진 토건카르텔은 홍수 예방, 수자원과 에너지 확보, 농지 및 공업용지 조성, 고용 창출 등 국가발전이나 국민적 필요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비용 대비 효과를 산출하면 대규모 토목사업은 마이너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토건카르텔은 효과를 부풀리며 주민과 시민단체, 환경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를 강행한다. 대규모 개발사업들은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고 무수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던 원주민이나 마을 공동체를 파괴한다. 이 사업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지지만 그 열매는 토건카르텔이 따먹으며, 이로 야기되는 기후변동, 홍수와 가뭄, 바이러스의 전파 등은 지역주민과 국민이 감당해야 한다. 이의 대표적 사례는 브라질 아마존 유역의 밸로몬테 댐, 일본의 얀바 댐, 한국의 새만금 방조제, 4대강 보 등 수십조 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토목사업이나 핵발전소의 냉각탑이다. 여덟째, 근대의 패러다임, 특히 기계론적 세계관과 인간중심주의 때문이다. 뉴턴의 기계론적 물질관과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心身二元論)은 세계를 이분법으로 나누고 분석적, 환원주의적으로 바라보면서 자연에 대한 착취와 개발을 당연시하였다. 기계론적 물질관은 자연을 그저 기계처럼 작동시키고 고장 나면 폐기하는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이 전 지구의 중심에 서서 자연을 착취하고 개발하며 다른 생명을 마음대로 지배하고 학살하는 것을 문명이나 근대화로 정당화하였다.대안: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 0에 도달해야 파국을 피한다
“IPCC의 보고서는 우리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지 않으려면 금세기 말까지 지구 온난화를 1.5℃로 제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을 2030년까지 약 45%를 감축하고 2050년에는 순 영점에 도달해야 함을 의미한다. IPCC는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시급하고 전례 없는 사회 경제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Climate Action Summit, 2019) 이미 1℃가 올랐으니 0.5℃만 더 오르면 지구촌 사회는 파국을 맞는다. 0.5℃를 얕잡아 보면 안 된다. 어린아이의 몸이 1-2℃ 오른 것을 몇 분 안에 끌어내리지 않으면 장기나 뇌손상을 당하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상황을 보면 암울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나서서 2차 세계대전 때 과학기술, 예산, 정책, 국민을 전쟁 승리에 맞추어 총동원한 것처럼 불평등과 기후위기 극복에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면 아직 길은 있다. 비용이 들겠지만, 그것은 그만큼 일자리를 창출한다.”(조너선 닐, 2011) 국가가 정의로운 생태복지국가를 지향하며 진정 실천이 따르는 그린뉴딜정책으로 전환한다면 길은 있다. 국가는 양적 발전보다 삶의 질, GDP보다 국민의 행복지수, 경쟁보다 협력, 개발과 성장보다 공존과 균형을 더 중시하는 정책으로 대전환할 필요가 있다. 2030년까지 석탄 화력 발전소 폐쇄와 전기자동차 1,000만 대 대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40%로 확대 등을 통하여 이산화탄소 배출량 45% 감축으로 목표를 확실시 규정한다. 녹색경제로 혁신하고, 탄소세와 생태세 등의 제도 개혁을 단행하며, 매년 GDP의 3% 녹색투자를 하며, 토지를 공유부(common wealth)로 확정한다. 우리에게 시간이 많다면 태양광, 해조류 비닐, 플라스틱을 먹는 미생물의 대량생산, 생태건축 등의 기술로 극복하거나 개량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 예를 들어, 미국의 푸드 스타트업 ‘키버디(Kiverdi)’가 ‘산화수소체(hydrogenotrophs)’라는 미생물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품질 좋은 단백질을 생산하였는데(Forbes, 2020), 앞으로 식감을 향상시켜 이로 고기를 완전히 대체한다면, 육지의 1/3을 차지하는 목장을 다시 숲으로 되돌리고 10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의 곡물을 절약하고 전체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18%나 줄일 수 있다.(FAO, 2006) 하지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10년 남짓이다. 이제 자본주의를 넘어 대안의 사회를 상상하고 실천하자. 기후위기와 환경과 생명의 위기의 근본원인은 모두 자본주의 체제이기에 다른 대안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30년을 통해서 보았듯이, 탄소세 등 모든 대안이나 혁신적이고 참신한 개혁책조차 자본주의는 결국 이윤과 탐욕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우리에게 시간만 많다면 우주 공간에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여 마이크로웨이브로 전송하는 것처럼 생태적 기술로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현재의 조건에서 10년 안에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한 채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는 임계점을 이미 넘어섰다. 세계 또한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대안의 사회를 지향하면서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이번 코라나 바이러스19 사태 때 지금처럼 세계가 각자도생을 하지 않고 연대했다면 팬데믹은 오지 않았거나 왔더라도 서너 달 안에 종식시켰을 것이다. 한국처럼 국토가 좁고 인구가 밀집한 나라에서 숲을 파괴하고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는 것은 ‘카드돌려막기’와 유사하다. 고비, 사하라 사막 등에 부자나라들이 기금을 내어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고 기존의 송전시설과 초연결사회를 결합하여 대륙별로 공급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마을에서 시작하여 지역, 국가, 대륙,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지속이 가능하고 순환이 가능한, 무위(無爲)의 자연(大自然)을 구성하는 ‘빈틈[虛]’을 조사하여 이를 총량제 차원에서 관리하고 복원하는 정책을 단계적으로 취하되 10년을 목표로 수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마을에서 시냇물이 흐르며 자연정화하며 물을 늘 맑게 유지할 수 있는 양이 10톤인데 11톤의 오염물질이 버려지고, 마을의 사람들과 가축, 공장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이 5톤인데 마을의 숲과 냇물의 미생물이 흡수하는 이산화탄소 양이 4톤이라면, 목장과 공장에 정화시설을 설치하여 오염물질을 정화하여 10톤 이하로 낮추고, 마을 공장에 이산화탄소 포집시설을 설치하고 숲이 흡수하는 이산화탄소 양이 5톤을 넘어설 때까지 조림을 하는 것이다. 이후에는 마을에서 가축의 수를 늘리고 공장을 증설하더라도 총량제의 차원에서 ‘빈틈’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 이하에서만 허용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지역, 국가, 대륙, 전 세계로 확대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주민의 참여와 이해와 설득, 동의를 받아야 한다. 개인도 변해야 한다. 우리 모두 ‘툰베리’가 될 수 없다면, 최소한 적게 소비하면서도 행복을 느끼는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으로 전환하자. “햄버거 하나 먹을 때마다 숲 1.8평, 물 2,500ℓ, 곡물 1.8㎏가 사라지고, 총 57g의 메탄가스와 3㎏의 온실가스가 발생한다.”(Real Foods, 2018) 우리는 지구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 미래로부터 빌린 것이다. 이제 죽어가는 사람과 생명의 고통을 내 병처럼 아파하는 공감을 바탕으로 타인과 생명, 지구와 거기에 깃들여 38억 년 동안 살아온 생명과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을 자발적으로 절제하고 다른 사람과 생명을 섬기며 자비를 베푸는 삶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우리 자식에게 22세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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