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군대에 가면 성평등이 실현되는가, 남성과 동등한 시민이 되는가라는 설왕설래는 서구 연구자들 사이에 오래된 논쟁이다. 징병제는 전통적인 젠더 질서를 바탕으로 기획된 제도이므로 여성에게 금지이자 제한이었다. 그 조건에서 여성이 군대에 가는 일은 도전이자 모험이고, 성별분업에 균열을 내는 일이었다. 집 밖으로 나와 군사활동을 통해 국가안보에 참여하는, 국민이 되는 길로 기대되었다. 군에 참여하는 일은 남성들과 똑같이 국방을 수행하는 것이므로 동등한 국민의 자격을 갖는 조건으로 주장됐다. 바로 이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주장과 맞닿는 성평등론자들의 신념이다. 그들은 여성들이 공적 영역으로 진출하면 성불평등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라고 믿었다. 군사 활동에 여성들이 참여하면 힘을 갖고 인정을 받으리라 판단했다. 그래서 마치 공적 영역(군대)을 해방의 공간인양 만들었다. 하지만 여기엔 딜레마가 있었다. 남성과 동일한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여성들에게 남성과의 몸의 차이는 한계로 남겨졌다. 몸의 차이는 생물학의 영역으로 여겨졌기에 변화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성은 온전한 군인으로 상정되지 못했다. 근력이 부족하고 성적으로 취약하다고 여겨진 여성들은 전투 분야에 부적합하고 남성군인들에게 부담을 주는 존재로 평가됐다. 이에 대해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섹슈얼리티나 근력 등의 사안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극복 가능하다고 본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여군들은 '여성'과 '군인'의 어긋남에서 고군분투하는 조건에 놓였다. 초남성 공간에서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젠더규범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여성적인 것'은 여성 고유의 능력으로 여겨져 여군의 인력을 활용하는 준거가 됐다. 게다가 최근 공군과 해군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은 여군들이 '어항 속의 금붕어'같은 신세임을 다시금 보여주었다.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카일라 윌리엄스가 <Love my rifle more than you> 라는 책에서 "캠프 밖의 적만이 아니라 캠프 안의 적들도 두려웠다"고 기술할 만큼, 여군들은 보이지 않는 또다른 전쟁을 치룬다. 이러한 상황들을 군대 내 여군들의 개인 행위성으로 제한하지 않고 글로벌한 전쟁체제에서 보려 했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군 참여가 반드시 성평등으로 가는 길은 아니라고 내다봤다. 성차별은 전쟁체제와 깊이 연관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군대가 이성애 규범을 바탕으로 한 남성성의 원리로 운영된다고 비판한다. 이 원리는 군대만이 아니라 사회질서의 근간이 된다.인종주의와 식민주의와 결합하여 어떻게 또다른 불평등을 낳는가도 그들은 짚는다. 그래서 성평등이란 남성과 여성 사이의 평등이 아니라 글로벌한 사회구조의 불평등을 해결해야 하는 것임을 드러낸다. 최근 군사안보 영역에 여성들이 진출하면서 성평등의 수사는 군사적 개입을 보이지 않게 했다. 이십 년 전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몰아내고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했을 때 군사적 개입은 여성해방의 순간으로 위장됐다. 이라크 전쟁에 참여한 미군 여군들은 성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상징하면서, 여군의 이미지는 미국 국가의 정체성을 재현했다. 시민들을 잘 돌보는 여군의 여성적 돌봄 이미지는 군의 형상으로 전치되면서 군사적 개입과 확장에 관한 질문을 잊게 만든 것이다. 한국사회는 여성도 군대 보내자는 아우성이 한창이다. 여성징병제를 실행하라는 목소리에는 분노와 억울함, 보복심, 역차별이라는 인식이 혼재한다. 그 감정과 견해는 서로 다른 맥락에서 만들어졌고 성질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감정과 이야기들이 묘하게 하나의 회로를 만든다. 여성도 군대 가라는 말은 '젠더갈등'으로 번역되고 그 해결 방법으로 여성징병제가 제시된다. 그리고 성평등을 성취하는 길로 향한다. 박용진 국회의원도 '남녀평등복무제'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여성징병을 성평등의 성취로 자명하게 만들었다.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논의해야 할 당연한 의제로 격상시킨 것이다. 여성의 군 참여를 성평등의 상징으로 만든 것은 국방부의 홍보 덕도 크다. 초남성 공간에 여성이 진입하는 것은 곧 남녀평등을 성취하는 것으로 선전했다. 그리고 군대를 성평등의 공간으로 일찍이 홍보했다. 하지만 여성의 군 참여는 여러 결의 다른 의미들을 지닌다. 그만큼 성차별한 사회에서 여성이 군에 온전히 참여하는 일은 복잡다단하다. 단순히 성평등의 언설만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여성도 군대 가라는 말은 남성과 여성의 대결이 일으킨 소요가 아니라 젠더 지형이 변화하면서 불거져나온 파열음이다. 그러니 여성징병제를 시행한다고 말끔히 정돈되진 않는다. 징병제와 모병제 사이 그 어디쯤에 여성징병제를 놓고 간을 보는 일이 혹평을 받는 이유다. 여성도 군대 가라는 말에 경청한다면 경제사회 정책으로 풀면 된다. 여성징병제는 안보와 군사전략, 병역제도에 관한 논의를 통해 더 입체적이고 다각적으로 접근할 일이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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