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력발전소에 일하는 노동자가 기후위기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반면 노동자에게 앞으로 일어날 변화에 대해서 정부나 회사가 교육하거나, 일자리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적은 여태 없었다. 노동자는 일종의 들러리로 치부되어 정부에서 내보내는 메시지를 뉴스로만 소비하는 하나의 객체일 뿐이었다. 그러나 소위 선진국들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노동자와 지속적인 대화 속에 미래를 위한 산업의 재편과 노동자의 일자리에 대하여 논의를 했다. 독일 루르(Ruhr) 지방은 1960년대 석탄산업의 메카였다. 당시부터 대두되는 환경문제로 인하여 독일 지방정부는 어떻게 산업을 재편할 것인가를 시민사회단체와 노조 등과 논의했고 산업의 변화로 인해 줄어드는 일자리를 단계적 교체와 전환으로 최근까지 60년에 걸쳐 탈석탄을 이룬 변화된 도시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1997년 12월 교토의정서가 체결되고 2005년 뒤늦게 발효된 시기부터 세계 대다수 정부가 탄소배출에 대한 환경 규제를 시작하면서 산업의 전환을 준비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자본은 환경과 노동자를 염두에조차 두지 않음으로 이러한 준비를 소홀히 했다. '녹색성장'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는 2010년 5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민자석탄발전소 4기(2000MW)를 허가해 석탄화력발전소의 증설 및 민영화를 추진했다. 2013년 2월에 확정된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민자석탄발전소 8기(8000MW)를 추가로 확정하고 공을 박근혜 정부로 넘겼다. 박근혜 정부도 기후위기나 정의로운 전환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 없었고, 환경과 노동자는 상생의 대상이 아닌 방해물로 치부해 왔다. 촛불개혁 정부를 자임한 현 정부는 집권 직후 미세먼지와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탈석탄·탈원전을 선언하고 '10기의 노후 석탄발전소 조기 폐쇄'를 발표했다. 당시 정부와 에너지 업계에 종사하는 노동자 간의 대화는 물론 언질조차 없었지만, 발전노조는 석탄발전소에 종사하는 당사자로 기후위기 시대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대의에 동참하고자 이를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는 전력산업 구조 개편에 관한 법률에 따라 발전 6사로 분사한 이후 멈춰버린 전력산업의 방향에 대해서는 아무런 방향 제시도 없었다. '탈석탄, 탈원전 선언'에서 노동자와 '에너지 공공성'에 대한 정책적 방향도 찾을 수 없이 그대로 둔 채, 오로지 탈석탄만 천명함으로써 현재 논란에 대한 불씨를 남겨두었다. '10기의 노후 석탄발전소 조기 폐쇄' 이후 정부는 탈석탄 및 탄소중립을 위해 2034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28기를 폐쇄한다는 계획을 연이어 발표했다. 28기의 석탄발전소를 폐쇄하는 대신 LNG 대체발전소를 건설한다고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 대기업을 통한 천연가스의 직수입은 20% 이상으로 급증하였다. 천연가스 발전의 비중을 늘리면서 동시에 민영화를 더욱 확대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발표는 항상 노동자와 어떤 논의나 대화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된다는 것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2021년 현재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고 있는 약 2만 5천 명의 노동자에게 에너지 전환은 커다란 위협일 수밖에 없다. 그중 정규직은 1만 3천 명이며, 비정규직 노동자(청소·경비·시설 자회사, 경상정비, 연료·환경설비 운전 등) 규모는 1만 2천 명으로 집계된다. 탈석탄이라는 대의에 찬성한다 할지라도 무방비 상태로 일터를 잃고 거리로 내쫓기는 신세가 되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노동자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이므로, 당사자가 배제된 채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탄소중립 정책에는 모든 것을 걸고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이루기 위해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 큰 틀에서는 시민의 에너지 기본권이라는 공공성을 유지하고, 해당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상생의 방향을 찾으며 조율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그린뉴딜정책', '2050 탄소중립 선언', '탄소중립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나 전문가 그룹을 구성함에 있어 늘 노동자는 배제하고 있다. 더 나아가 위원회나 전문가 그룹에 기업의 이윤과 자본을 더욱 중시하는 연구원과 기업가들을 참여시킴으로써 탄소중립이 자칫 자본의 이윤추구에 대한 방향성을 찾는 것 아니냐라는 의구심을 키웠다. 탄소중립위원회 윤순진 위원장은 현재 건설되고 있는 6기의 석탄발전소는 민간 기업의 사업이기 때문에 중단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이 노동자에게는 문을 걸어잠근 반면, 대기업과 같은 기존의 기득권을 보장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노동자 고용 문제에 대한 정부 대책을 보면 노동자는 그저 탄소중립이란 정부의 목표 달성을 치장하기 위한 장식품에 가까울 뿐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위한 동반자로 여기지 않음이 명백하다. 1. 재직자 장기유급휴가 지원(사용자 인건비 지원) 2. 훈련비 면제 및 직업훈련기관 훈련단가 상향 지원(훈련기관 사용자 지원) 3. 재취업 준비를 위한 근로시간 단축 인건비 지원(사용자 인건비 지원) 4. 재취업을 위한 전직 훈련 지원 및 고용촉진장려금 지원(재취업교육자 채용 사용자 지원) 5. 중장년 기술창업센터 설치 확대를 통한 창업지원(기술창업센터 설치 지원) 등 정부 정책은 고용 대책이라고 하면서 사용자를 위한 지원들로 가득하고, 노동자를 위한 실효성 있는 내용은 없다. 오로지 자본과 시장의 논리만 있을 뿐, 일하는 노동자의 고용유지나 고용 승계 등 고용보장을 위한 방안은 찾아보기 힘들다. 과연 이러한 상태에서 직접 관련 당사자인 노동자와 지역 시민들을 설득하고 탄소중립이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정부가 달성하고자 하는 탄소중립의 핵심은 적절한 시기, 가능하면 빠른 시기에 에너지 전환을 이루는 것이라면 자칫 낭떠러지로 몰릴 수 있는 노동자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느릴 것 같지만 실상 가장 빠르고 현명한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는 IMF와, 쌍용차 사태 등에서 기업을 살리기 위한 막대한 세금의 투입은 수없이 봐 왔지만,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고 쫓겨난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사례만을 봤을 뿐이다.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 과정에서 현재처럼 노동자와 시민이 방치된다면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이런 비극을 막아야 한다. 노동자가 없는 세상에서 에너지의 정의로운 전환이 가능하겠는가? <탄중위해체공대위 연속 기고>
1. 우리는 왜 '탄소중립위 해체'를 외치는가?
2. 이제는 '탄소중립'을 넘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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