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은 기후위기의 최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작년 8월 말경 2학기 개학을 앞두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해 닥친 코로나 펜데믹 여파로 1학기 학교급식이 전면 중단 또는 축소되면서 학교급식에 계약재배로 친환경농산물을 공급하던 친환경농가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부의 대체 판촉지원사업, 각 지자체의 친환경꾸러미 사업 등 피해를 줄이기 위한 각종 조치와 노력이 있었으나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도였지 피해는 갈수록 누적되어 갔다. 그나마 학교급식 중단으로 생긴 불용예산으로 진행한 학교가정꾸러미 사업으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1학기처럼 전면 중단은 아니지만 2학기에도 학교급식이 상당부분 축소 운영되는 상황에서 친환경농가의 피해가 계속 누적될 것이 불을 보듯 명확했다. 지역에 전화를 돌렸다. 2학기에도 피해가 생길 게 뻔한데 상황이 어떤지 물었다. 대답은 뜻밖이었다. 학교급식 축소 때문에 피해볼 게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학교급식 축소 이전에 유례없는 긴장마로 벌써 농사가 다 망해서 나오는 농산물이 없어 공급할 것도 없으니 학교급식 축소 문제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10월 들어서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각 지역별로 친환경쌀 수확량과 수매 현황을 파악하는데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 곡소리가 들렸다. "우리 지역은 생산량이 30% 줄었어요. 우리 면은 생산량이 작년에 비해 절반밖에 안 돼요. 망했어요..." 코로나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 입국이 안 돼서 인건비는 50% 이상이 올랐지, 긴장마로 농사는 망했지, 전국의 모든 농촌지역이 망연자실한 상황이었다. 날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농업의 특성상 농민들은 기후위기로 인한 재앙에 최대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농업이 배제된 그린뉴딜
작년 7월 14일 정부는 그린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우리는 그린뉴딜 종합계획이 당면하고 있고 예고되어 있는 위기에 국가적인 대응계획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린뉴딜 종합계획은 디지털뉴딜, 그린뉴딜, 안정망 강화 등에 2025년까지 총사업비 160조 원을 투입해 일자리 190만개를 창출한다는 게 주요 골자였다. 그러나 그린뉴딜의 핵심인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그저 '탈탄소 사회 지향'이라는 지극히 추상적인 정치적 수사만 담겨있을 뿐이었다. 목표와 방향을 잃은 '그린뉴딜'은 이명박 정부 당시의 '녹색성장'과 같이 언제든 '회색뉴딜'로 퇴색할 것은 뻔한 일이었다. 특히 그 당시 고통을 받고 있던 농업분야에 관한 내용은 더 참담했다. 농업 분야로 그나마 제출되었던 것은 스마트 물류체계 구축, 태양광 확대, 그리고 도서·벽지 등 농어촌 마을(1200개)에 초고속인터넷망을 구축한다는 것뿐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코로나로 인한 봉쇄와 공포감으로 식량위기에 대한 대비가 전세계적으로 강조되던 시점에 그 어디에도 식량주권의 문제, 탈탄소 사회를 위한 환경친화적인 농업전환, 먹거리 선순환체계에 대한 방향제시 등은 일절 언급이 없었다. 심지어 정부 부처 합동으로 종합계획을 수립했다고 하는 내용에 '농림축산식품부'는 그 어떤 분야에도 참여부처로 기재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즉 그린뉴딜 종합계획은 농업‧먹거리 분야를 소홀히 한 게 아니라 아예 배제한 계획이었다.탄소중립시나리오에는 탄소중립이 없다?
이러한 정부의 기조는 올해 8월 5일 대통령직속 탄소중립위원회가 발표한 2050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5월 29일 출범한 탄중위는 출범한지 두 달여 만에 일사천리로 시나리오 초안을 발표했다. 발표된 초안은 세 가지 안을 제시했는데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1안은 2050년 온실가수 순배출량 2억5400만 톤, 2안은 2050년 온실가스 순배출량 1억8700만 톤, 3안은 2050년 온실가스 순배출량 0으로 2050년에 탄소중립을 할 수 없는 2가지 안을, 비록 초안이라고는 하지만 탄소중립 시나리오안에 포함시켜 발표한 것이다. 3안도 순배출량을 0로 하겠다고는 되어 있지만 그마저도 기업과 자본에 대한 책임과 감축의무는 명시하지 않았다. 탄중위는 분과위와 전문위를 구성하여 짧은 기간 압축적이고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시나리오를 마련했다고는 하나,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졸속 대책이라는 비판과 함께 기후위기라는 생존적 과제를 단지 또하나의 이윤창출의 기회로 보는 자본의 시각을 노골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 결과 9월 2일 46개의 시민사회단체, 환경단체는 '탄소중립위원회 해체와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출범하고 시민사회 위원들의 자진 사퇴와 탄중위 해체를 촉구했으며 9월 30일 탄중위에 참여하고 있던 종교위원 전원이 사퇴하는 사태를 야기했다.농업은 구색맞추기 용도인가
특히 농축수산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온실가스 배출량 중 농업의 비중은 2018년 기준 3.4% 수준으로 미미하기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특별한 대책을 수립할 분야가 아니라는 인식이 기본에 깔려있다. 정부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에서 제시한 기준을 바탕으로 농업 생산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측정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생산에 투입되는 수입 원료 및 자재에서 발생된 온실가스와 소비, 유통, 폐기까지의 전 과정에 대한 배출치를 측정하고, 이를 감축하려는 과감하고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세계자원연구소(WRI)에 의하면 2016년 기준으로 농업부문이 온실가스 배출량중 18.4%~ 20.1%까지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하였으며,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농축산물 수입에 따른 탄소 배출과 수송, 소비, 폐기까지 포함하면 최대 37%까지 차지하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이렇다 보니 탄소중립에 있어서 유럽, 미국, 일본등 타 선진국들은 농식품 분야를 온실가스 감축의 핵심과제로 설정하여 각종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경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계획 중 핵심과제로 팜투포크(Farm to Fork)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농업먹거리 분야에서 ① 2030년까지 화학농약 50%, 비료 20%, 축산과 양식부문에서 항생제 50% 감축, ② 2030년까지 유기농업 비율을 유럽 전체 농지의 25%까지 확대, ③ 식품영양 증진, 음식물쓰레기 감축, ④ EU 농업예산의 40%를 기후위기 관련 영역에 사용, ⑤ 직불제에 기후 및 환경친환경적인 농업 실천 연계 등을 제시하며, 종합적으로 '자연을 우리 삶 속으로 되돌리자'는 슬로건 하에 생물종다양성 회복전략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기후위기의 근본원인이 생태계의 파괴에 있다는 인식과 이의 극복을 위해 환경친화적인 농업 전환이 중요하다는 인식과 철학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시나리오의 농축수산 분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5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2억4700만 톤 대비 31.2~37.7% 감축하는 것으로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감축수단으로 농기계 연료를 전력화·수소화하고, 고효율 에너지 설비 보급, 바이오메스 에너지화를 추진하며, 화학비료 저감과 친환경농법 시행 등 영농법 개선, 가축분뇨 자원순환 확대 및 저탄소 가축관리시스템 구축, 식단변화, 대체 가공식품 이용 확대 등 식생활 개선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에 필요한 정책으로 정밀농업 등 저탄소 농축수산 기술개발 및 보급, 투자를 확대하고, 농수산식품 수요·공급 체계 전반의 저탄소화를 추진하며, 식량안보 강화 및 농어업분야 기후적응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책은 농축수산 분야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3.4%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인식하에, 기존의 생산주의 농정을 과감히 환경친화적인 농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인식과 관점을 찾아볼 수 없는, 그저 기술적인 몇가지 조치들을 나열한 구색 맞추기에 불과한 대책 없는 대책일 뿐이다.토양은 중요한 온실가스 흡수원
왜 농업과 먹거리, 토양의 문제가 탄소중립에 있어서 중요한지, 왜 환경친화적인 농업 전환이 중요한지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에서 2019년 발표한 '기후변화와 토지에 관한 특별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 특별보고서는 '전 세계 농업과 먹거리시스템은 기후변화를 역전시킬 열쇠를 지고 있다. 땅은 생물다양성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계와 복지의 근간으로 인간이 지표면의 70% 이상에 집적적인 영향을 주고 받고 있으며 토양의 탄소저장량은 대기의 2~3배로 가장 효과적인 기후변화 완화 수단'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시나리오는 온실가스 흡수원으로서 산림 관리 강화만을 제시하고 있지, 온실가스 흡수원으로서 토양의 중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분야에서 온실가스를 아무리 줄여도 제로로 만들지는 못한다. '+'가 있으면 '0'을 만들기 위해서 '–'가 있어야 한다. 이는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배우는 산수의 영역이다. 2050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산업분야에서 줄이고 줄여도 나올 수 밖에 없는 온실가스를 흡수할 수 있는 대책이 필수적이며 온실가스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산림생태계, 해양생태계, 그리고 토양생태계를 건강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건강한 토양은 대기 중의 탄소 등 온실가스를 흡수한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 회의에서 프랑스는 매년 0.4%씩 토양의 탄소저장능력을 향상시키는 국제운동을 제안하기도 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탄소세 수입 중 100억 원 이상을 건강한 토양프로그램을 실천하는 농민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토양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환경친화적인 농업 전환에 대한 비젼과 대책이 전무한 시나리오에 대하여 우리는 엉터리 진단으로 인한 대책 없는 대책이라고 비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환경친화적인 농업전환의 주체인 농민, 기후위기 해결의 주체인 농민
탄소중립을 위한 대책에는 반드시 환경친화적인 농업 전환에 더해 식량주권 문제가 반영되어야 한다. 시나리오에는 농어업 생산성 향상, 기후변화에 따른 농어업 기술지원체계 강화 등을 통해 식량안보를 강화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온실가스 최대 주범인 수입농산물에 대한 대책 없이는 식량주권과 탄소배출 저감은 요원한 문제라 할 수 있다. 국내 주요 농산물의 자급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대책과 수입 사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축산 문제, 무분별하게 훼손되고 있는 농지에 대한 보전 대책은 탄소중립을 위한 필수적인 과제여야 한다. 그리고 기후위기 극복의 주체로서 농민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 환경친화적인 농업 전환에 있어서 전환의 주체는 농민일 수밖에 없다. 기술을 통해 기후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기술만능주의는 결국 기업과 자본을 위한 것이지 농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기후위기의 최대 피해자이자 해결자인 농민이 전환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대책을 수립해야 하며 환경친화적인 농업 전환과 토양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농민의 역할에 대한 정당한 사회적 보상체계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지금도 기후위기의 시계는 째깍째깍 계속 흘러가고 있다. 기만과 허구로 가득 찬 시나리오는 정부와 탄중위가 스스로 즉각 폐기해야 한다. <탄중위해체공대위 연속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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