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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사면은 무엇을 부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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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사면은 무엇을 부정하는가? [기고] 역사 부정할 뿐 아니라 명분과 실리 모두 잃는 행위
지난 12월 24일에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을 단행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 조치는 촛불항쟁만이 아니라 이 나라의 사법 정의, 민주주의, 국민합의, 더 나아가 역사를 부정한다. 박근혜의 사면은 촛불에 대한 전면 부정이다. 촛불시민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중대범죄에 맞서서 그 추운 겨울에 거리에 나가 촛불을 들어 마침내 퇴진시켰으며, 사법부는 대한민국의 법에 따라 공정하게 판결하여 구속시켰다. 문재인은 촛불의 토대 위에서 촛불시민의 강력한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촛불 시민은 박근혜를 심판하고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개혁을 하라는 임무를 문재인 정권에 부여했다. 그럼에도 이 정권이 적폐청산과 사회개혁을 유보한 데 이어서 촛불 시민의 동의 없이 박근혜 사면을 단행한 것은 촛불에 대한 전면 부정이다. 필자가 몇 년 전부터 기자회견 현장이나 토론회, 칼럼을 통하여 문재인 정권을 ‘촛불배반정권’으로 규정했는데 이제 ‘촛불부정정권’으로 한 단계 상승시켜도 될 듯하다. 이 사면은 사법정의를 부정한다. 박근혜는 국정농단, 뇌물 수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새누리당 공천 개입 등의 무수한 범죄혐의가 인정되어 법에 따라 징역 22년형, 벌금 180억 원, 추징금 35억 원 형에 처해진 중대 부패 범죄 사범이다. 그의 구속 때 대다수의 국민들이 결국 정의 앞에 강력한 불의가 무릎을 꿇는 장면에 감동하고 환호했다. 대통령의 사면권 자체가 삼권분립을 위협하고 대통령에게 과다한 권력을 부여한다. 그럼에도 이를 헌법으로 보장한 것은 사법부가 권력이나 자본에 기울어 하시라도 억울한 죄인을 만들 경우 이를 해결하는 초법적 권한이 필요하다고 국민들이 동의하였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도 이를 인식하고 뇌물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에 대해서는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런데 2017년 3월 31일에 구속되어 형기의 절반은커녕 그 1/4인 5년 6개월도 채우지 못한 중대범죄자에게 국민의 동의나 민주적 절차 없이 대통령이 독단적인 권한을 행사한다는 것은 사법정의와 삼권분립체계를 부정하는 반법치적 정치행위다. 박근혜의 사면은 민주주의를 부정한다. 주권자로 인식한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권력의 정점에 있던 이를 끌어내리고 구속시킨 것은 시민의 승리이며 한국 민주주의의 중대한 진전이다. 세계가 놀랐고 산업화에 성공하여 경제는 발전했지만 권위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던 독재 국가에서 산업화와 민주주의를 모두 이룩한 나라로 인식을 전환하였다. 국민들 또한 이를 계기로 자부심을 갖는 한편 대의민주제의 한계에 대해 성찰하면서 숙의민주제와 직접민주제로 더욱 발전하자는 담론을 시대정신으로 요청하였다. 이 상황에서 이번 사면은 이를 다시 물거품으로 만든다. 이번 사면은 국민의 합의를 부정하고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는 반국민적 조처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의 사면 사유로 국민대화합을 내세웠는데 태극기부대를 비롯한 수구·보수세력을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이 분노하거나 반대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이란 수구·보수세력만을 말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박근혜는 세월호를 비롯하여 자신이 범한 무수하고 중대한 범죄에 대해 진실을 규명한 적도 반성과 사죄를 한 적도 없다. 우리는 지난 정권이 진실규명과 사죄와 반성이 없이 전두환·노태우를 정치적으로 사면하는 바람에 두 사람의 생존 내내 국민이 갈등하고 분열한 것을 충분히 경험하였다. 이로 인하여 국민들은 사죄와 반성 없는 권력자 사면을 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을 굳게 형성하였고, 문대통령도 이를 인식하고 수차례 이를 약속하는 발언을 하였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국민과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진상규명과 반성과 사죄가 없는 사면을 되풀이하여 박근혜가 세상을 뜰 때까지 국민들이 갈등하고 분열될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사면 사유로 국민대화합을 거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박근혜 사면은 역사 또한 부정한다. 역사는 우여곡절을 겪고 가끔 퇴행하기는 하지만, 긴 시간 단위에서 보면, 인간 집단의 전체 자유가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보해왔다. 한국의 현대사 또한 학생과 시민들의 피 흘리는 투쟁을 통하여 군사독재에서 민주화로 이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과 구속은 이런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의 구속은 한 개인에 대한 단죄가 아니라 주권자로 인식한 시민들이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도 범죄를 범하고 국민의 뜻을 거스르면 탄핵할 수 있다는 시민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역사적 이정표였다. 나빠진 건강을 이유로 드는데, 국제사회가 왜 고령의 나치전범을 끝까지 추적하여 구속시키는가.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한다. 인권을 유린한 과거의 반인권적 범죄에 대하여 현재에 단죄를 하여 사법적 정의를 구현하고 권력이 시민의 인권을 유린하지 않는 미래를 펼치기 위함이다. 박근혜의 사면은 시민 민주주의와 보편적 인권과 권력의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행사를 향하여 도도하게 흐르던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는 반역사적 조치다. 마오쩌둥의 말처럼 권력이 총구에서 나오는가? 설혹 총으로 권력을 잡더라도 권력의 수명을 결정하는 것은 헤게모니(hegemony)다. 미국 대학생의 베트남전 반전 시위가 격화하자 1967년 10월 21일 주 방위군이 출동하여 시위대에 총구를 겨누었다.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에 한 청년이 군인들 앞으로 걸어 나와 총구에 분홍빛 카네이션을 꽂았다. 버니 보스턴(Bernie Boston)은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이로부터 파생된 <꽃의 권력(flower-power)>은 68혁명의 구호와 지향점이 되었다. 결국 무기에서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인 베트남이 미국을 이겼고, 68혁명은 총과 칼의 힘에 기반을 둔 미국의 정치에 평화와 아름다움과 정의, 인류애를 지향하는 또 다른 힘을 굳건하게 심었다. 설득과 자발적 동의에 의해 형성되는 헤게모니의 핵심은 정당성(legitimacy)이다. 공자와 맹자가 정치에서 가장 우선해야 할 것으로 내세운 정명(正名)도 현대 정치에서는 이를 뜻한다. 정당성이 없는 정권은 급격히 헤게모니를 상실한다. 문 대통령이 대선용으로 감행한 것이라면 더욱 실책이다. 비호감 대선 분위기에서도 정권교체의 프레임이 더 작동하는 상황에서 보수 세력을 분열시켜서 얻는 표보다는 정당성의 상실로 잃는 표가 더 많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은 착각하는 것이 있다. 저번 총선의 압승에도 ‘기울어진 운동장’은 변함이 없다. 필자가 <프레시안>에 기고한 2020년 4월 23일자, "21대 총선: 이면의 분석과 과제-사전투표자, 50대, 18세가 선거판을 뒤바꿨다" 기사에서 분석한 대로, 국회의 2/3 가까이 점유할 정도로 압도적 승리를 한 21대 총선에서조차 사전투표자를 제외하면 결과는 정반대였다. “지역구의 경우 민주당은 774만여 표로 통합당의 782만여 표에 7만여 표나 밀렸다. 사전투표에서 248만여 표를 더 얻은 덕분이다. 비례득표율을 보면 더불어 시민당과 열린민주당의 합계 지지율은 38.77%이고, 미래한국당과 국민의 당을 합치면 40.63%다.”코로나에 대해 두려움이 큰 이들이 사람이 적은 시간을 이용해 사전투표를 했고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 대응에 성공하였다고 판단하였기에 정권심판론보다 정권지원론을 더 선택하였다. 확실한 보수 지지층이 진보보다, 경상도 인구가 호남인구보다, 젊은 층보다 노년층이 더 많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구조 속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이기는 길은 젊은 층과 40대와 50대, 호남인들의 압도적 지지, 정책을 통한 중도의 확장, 경상도에서의 선방이라는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이번 사면은 진보와 호남인들, 젊은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탈하게 만들 것이다.

이렇듯 박근혜의 사면은 촛불항쟁, 사법 정의, 민주주의, 국민의 합의, 역사를 모두 부정할 뿐만 아니라 대선도 내주며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도 이롭지도 못한, 반역사적이고 반민주적인 정치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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