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메이킹, 김종인의 신화
지난해 12월 22일 윤석열 후보의 아내 김건희에 대한 논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조수진 의원이 다투면서, 이준석이 선대위직을 그만두겠다고 하고서 또다시 갈등이 시작되었다. 예전 같으면 상관없다고 무시할 윤석열이 부리나케 김종인 위원장을 찾아갔다. 김종인이 '좀 더 강한 그립'을 잡기로 결정했다. 지난 선대위 구성과 관련하여 윤석열이 김종인-이준석 그룹과 갈등을 겪을 당시에, 김종인을 향해 '그 냥반'이라고 폄하했던 때를 생각하면 상전벽해다. 그러다가 2022년 1월 3일에 김종인이 윤석열과 상의도 하지 않고 선대위의 6개 본부를 해체하고 선대위 지도부를 총괄 사퇴시킨 다음, 자신을 중심으로 한 총괄본부 체제로 단일화시켰다. 그러면서 윤석열에게 '연기만 잘하면 당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틀을 고심한 윤석열은 김종인을 배제한 선대위 해산을 통보했다. 1월 5일 김종인은 '뜻이 안 맞으면 헤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윤석열과의 결별을 공식화했다. 지금까지 박근혜와 문재인이라는 '두 명의 왕'을 만들어낸 김종인의 신화는 이제, '김종인을 잡지 못해서 윤석열이 왕이 되지 못했다'는 방식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대통령 선거의 법칙
말 실수, 본인이나 가족의 스캔들 등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미시적인 요인들이 있다. 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관찰되는 통계적 규칙이 있는데, 김종인이 두 명의 왕을 만들어낸 것은 사실 기막힌 우연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더구나 윤석열은 이러한 통계적 패턴에 비출 때 당선되기 어려운 후보였는데, 김종인이 절묘하게 윤석열 선대위를 나오는 바람에 김종인의 신화는 역전된 방식으로 유지되게 되었다. 한국 대선의 통계적 패턴을 파악하려면, 우선 미국 대통령 선거의 역사를 살피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1945년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해리 투르먼(민주당) 이래로 근 80년에 이르는 동안 민주당과 공화당이 번갈아서 정확히 두 번씩(4년+4년) 집권해 왔다. 그 사이에 민주당의 지미 카터,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도널드 트럼프만이 재임에 실패하면서, 딱 세 번의 예외가 있었다. 우리가 최근에 경험했듯이 도널드 트럼프처럼 심각한 정책실패가 있지 않는 한, 미국 유권자들은 한 정당에 대해 두 번의 기회를 부여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각 주의 선거결과 통계를 살피면, 민주당을 전통적으로 지지하는 블루 스테이트, 공화당을 지지하는 레드 스테이트 외에 8년을 주기로 그 지지결과를 바꾸는 스윙 스테이트가 있다. 그리고 언제나 스윙 스테이트가 선거결과를 결정해 왔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수립 이후에 대한민국의 체제도 미국화 현상을 걷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30여 년 넘게 보수당과 민주당이 두 번씩(5년+5년) 집권하면서 번갈아 지배권을 교차하였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2기 집권 공식'은 미국의 그것과는 차이를 보였는데, 그 하나는 각 집권 기수별로 득표율이 다르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2기 집권 경향성이 미국보다 더 강하다는 점이다. 민주당과 보수당에 대한 적극 지지층이 전체 유권자 중에서 대략 30% 정도를 각각 차지하는데, 이들 적극 지지층의 비율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어떤 실패를 했었더라도 반드시 투표하는 유권자들의 비율이다. 17대 대선에서의 정동영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 및 19대 대선에서의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득표율로 추정될 수 있다. 결국 그 외에 나머지 유권자 중에 투표에 참여하는 10~15%의 스윙 보터가 최종적인 결과를 결정해 왔다고 보아야 한다. 집권당을 바라보는 스윙 보터의 투표 기준이 '정치적 피로감'이라면, 야당에 대한 기준은 '과거 정부의 정책실패에 대한 기억의 소멸'이다. 이 두 개 지표가 보합과 상충을 이루면서 스윙 보터의 득표율을 구성한다. 집권당 1기 정부까지는 야당이 집권했던 이전 정부의 잘못이 아직 잊히지 않은 데 반하여, 2기 정부 후반이 되면 이전 야당 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억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 우리의 정권교체가 10년(=5년+5년)을 주기로 하는 탓에, 끝자리가 2년으로 끝나는 선거(2년 선거)와 끝자리가 7년으로 끝나는 선거(7년 선거)로 그 특징이 나뉘게 되었다. '1기 집권 후 교체기' 즉, '2년 선거'에서는 현재의 집권당에 대한 피로감이 아직 약하고 과거 정부에 대한 기억이 잔존하여 2~3%의 근소한 차이로 기존 집권당이 재집권을 하였고, '2기 집권 후 교체기' 즉, '7년 선거'에서는 집권당에 대한 피로감이 극에 달하고 과거 10년 전 야당 정부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소멸하여 압도적인 표 차이로 야당이 집권을 하였다. 미국과 또 다른 차이는 단임제라는 체제적 특징으로부터 기인한다. 현 집권당이 새로운 후보를 내세움으로써 야당의 정권교체론을 무력화시킨다는 점이다. 18대 대선에서 이명박 정부의 엄청난 정책 실패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라는 새로운 인물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것이 그 증거이다. 당시 민주당은 정권심판론이라는 전략 아래에 '이명박근혜'라는 슬로건으로 이명박과 박근혜가 동질적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스윙 보터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당이 아니라 '개별 인격이 정치화되는' 군주제적 특성이 대통령제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차별적 인식은 '문재인 대통령-이재명 후보'에게도 적용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말기에도, 박근혜 말기에도 어김없이 정권교체론이 화두였는데, 매번 김종인이 잡은 말이 왕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정권교체론이 대세임은 물론이다. 하지만 당을 번갈아 가며 승리한 김종인의 결과는 그가 우연히 위와 같은 통계적 패턴 위에 올라탔던 것일 뿐, 결코 그가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김종인이 패턴에 어긋나는 말에 올라탔다가, 절묘하게 다시 내린 것이다.대통령제를 혁파해야 한다
'누가 왕이 될 것인가?'라는 예언을 하려는 게 아니다. 필자는 점술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가 말하려는 것은 이러한 '2기 집권의 패턴' 아래에서 양당의 지배권이 과두적으로 독점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제3당 혹은 제4당의 지지자들은 단순다수투표제 아래에서 자신의 투표가 사표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당선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제1당 또는 제2당의 후보에게 투표를 한다. 이른바 '전략적 투표행동'이다. 비례대표제를 확대하여 다당 체제를 만든다고 해도 대통령제가 폐지되지 않는 한, 이러한 전략적 투표경향은 필연적으로 의회를 양당체제에 수렴시킨다. 결국 대통령을 잉태할 수 없는 제3당과 제4당은 불임정당이 되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며, 결국 축출되어야 할 무능하고 부패한 양당의 엘리트들은 계속 살아남게 된다. 대통령제를 폐지하지 않는 한 50년이 지나도 정의당은 대통령을 당선시키지 못하며, 안철수도 김동연도 양당의 후보가 되지 못하는 한 결코 대통령이 될 수 없다. 단적으로 미국 대통령제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케네디(민주당)와 닉슨(공화당)이 대결했던 1960년 미국 대선에 후보를 출마시켰던 사회노동당, 주권당, 입헌당은 미국 정치사에 사라진 지 오래다. 10년을 주기로 상대당의 실패로 집권하는 이러한 양당체제 아래에서 양당의 정책실패는 결코 수정되지 않으며, 이로 인하여 새로운 대통령의 그늘 뒤에서 부패하고 무능한 엘리트들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쉽게 말해서 국정농단을 자행했던 박근혜 정부의 새누리당은 박근혜에 대한 탄핵과 함께 사라졌어야 함에도, 버젓이 이름을 바꾸어 국민의힘이라는 대안세력으로 다시 등장하여 윤석열의 바지를 잡고 정권교체를 운운하고 있다. 지금의 민주당-보수당 양당체제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참여를 봉쇄하고 적대적으로 공생하면서, 10년을 주기로 지배권을 교차하는 시스템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상대방을 비난하고 공격하지만, 실제로는 적대적으로 공존하면서 권력을 과점하고 있다. 그들은 굳이 대단한 노력을 하지 않고서도 상대당이 실패하면 10년을 주기로 자연스럽게 집권하게 된다. 양당의 정책 실패는 오로지 시민들이 감수해야 할 몫이 되었다. 예를 들어 주택 문제를 살펴보자. 2021년 11월 10일 SH 신임 사장 김헌동이 강남아파트를 3억 원에 지을 수 있다고 장담했다. 김헌동의 말대로 아파트를 3억 원에 분양했다고 치자. 그 다음에 그것이 얼마에 거래될까? 로또를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언제까지 주택 문제를 '운(運)의 문제'로 전락시킬 것인가? 지금의 주택 정책의 실패는 공화당-민정당-민자당-한나라당-자유한국당-새누리당 계보의 보수당으로부터 출발한 것으로, 주택의 수급을 시장의 논리에 맡기고 정부는 단지 공급을 늘리는 것만으로 해결하려는 보수적 관료들의 설계로부터 비롯되었다. 심지어 보수정당은 경기가 침체되었을 때에 대출을 완화하여 주택구매를 독려하고, 이로써 주택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경기를 부양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여기에 민주당의 어설픈 규제정책이 기름을 부었다. 대출을 규제할 경우에 결국 현금 유동성이 풍부한 부자들만이 집을 살 수밖에 없어, 계속 올라가는 집값에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지게 되었다. 결국 그로 인한 위기의식이 '영끌'을 불러일으켰고, 패닉-바잉은 집값을 더 폭등시켰다. 집값을 잡기 이전에 집을 소유하게 하는 것이 더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임대가 아니라 소유하게 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임대주택'이라는 발상 자체가 서민들을 소외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재명과 윤석열의 주택 정책은 여전히 공급확대에 핵심을 두고 있다. 하지만 '법인의 주택소유'를 금지하고 '3주택 소유'를 금지하지 않는 한, 주택의 추가 공급은 투기 대상을 더 늘리는 것이 될 뿐이다.민주주의에 좀 더 부합하는 통치구조는 무엇일까?
혹자는 프랑스식 결선투표제를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최악의 선택이다. 결선투표제는 전략적 투표경향을 더 강화시키고, 유권자의 의사를 더욱 왜곡시켜 실제의 대표성보다 과대대표 되는 모순을 피할 수 없다. 유권자들의 정치적 지지를 가장 비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스템은 의원내각제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 명의 인간에게 모든 권력을 부여하는 대통령제의 단점을 치유할 수 있다. 대통령제는 단지 임기가 있을 뿐, 그 권력의 핵심구조는 '군주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손학규 전 대표가 얼마 전 대선에 나서겠다며, 대통령제의 대안으로 '총리 민주주의'를 제시하였다. 의원내각제를 지칭하는 것인데, '총리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의원내각제에 대한 인식을 왜곡시킬 여지가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원내각제의 총리 또는 수상을 대통령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의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수상을 뽑는 것보다는 내 손으로 대통령을 직접 뽑는 것이 훨씬 더 민주적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착각과 무지가 있다. 첫째 대통령과 수상은 그 권한에서 결코 동질적이지 않다. 대통령이 행정권 전부를 한 손에 쥐고 있는 것과 달리 의원내각제의 수상은 각료와 권한을 분점한다. 이로 인해 의원내각제에서는 연립정부가 가능하다. 제3당이 제2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그 과정에서 시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게 되면 제2당 혹은 제1당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새로운 정치세력이 집권정당이 될 수 있다는 의미는 종전의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세력을 축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이 양당체제로 독과점된 대통령제와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의원내각제의 특징이다. 다만 이것은 서유럽의 다당체제-의원내각제이며, 영국과 일본의 내각제는 대통령제와 마찬가지의 양당체제이다. 같은 의원내각제이면서도 구별되는 근원은 비례대표제인가 단순다수대표제인가라는 선거제도에 달려 있다. 둘째 내 손으로 뽑는 것이 훨씬 더 민주적이라는 생각은 심각한 착각이다. 국민들로부터의 위임이 직접적일수록 수권자의 권력은 더 커지고, 더 큰 권력은 부패와 전횡을 유발한다. 의원내각제에서 수상을 국민투표로 뽑았던 입법례가 있었는데, 의회의 다수파와 불일치한 수상이 뽑히게 되는 경우에는 여소야대 대통령과 같은 양상이 생겼고, 의회의 다수파와 일치하는 경우에는 지나치게 강한 권력을 행사하여, 사실상 대통령제의 제왕적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대표를 뽑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공화주의이다. 대의제는 결국 소수의 통치이므로 결코 민주주의일 수 없으며, 간접민주주의란 단어는 허구적 개념이다. 즉 시민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 직접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민주주의이다. 의회에서 의결된 법안에 대해 반대할 수 있는 국민투표권, 그리고 의회에서 입법되지 않는 사안에 대해 시민이 발의할 수 있는 국민발안권이 민주주의의 내용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대한민국헌법에는 공화주의체제만 존재할 뿐, 민주주의적 제도는 없다.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그로부터 파생된 적대적 양당체제를 깨트려야 한다. 실패한 정치세력을 축출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이 대체될 수 있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한 사람이 전권을 행사하고 그에 기생하는 자들, 이른바 '핵심관계자들'이 부패한 권력을 휘두르는 '왕의 정치'는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치 않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