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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집권해도 후폭풍, 칼날 위에 선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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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집권해도 후폭풍, 칼날 위에 선 민주주의

[최창렬 칼럼] 5년 후에도 똑같은 대선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대선이 불과 3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진영대결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제 대선 후를 상상해봐야 한다. 현재의 추세로 볼 때 이재명 후보나 윤석열 후보 중 한 명이 당선될 확률이 높다. 어떤 경우를 상정하더라도 정국은 임기 시작부터 냉각될 공산이 크다. 

야당이 집권하면 국회는 여소야대의 상황을 맞게 된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여소야대 정국은 익숙한 구도이지만 분점정부라는 단어가 말해주듯이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력을 나눠서 행사하는 경우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았다. 그렇지만 행정권력과 입법권력, 지방권력을 어느 한 정당이 독점하는 것 역시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용이하게 할 위험성을 내장하고 있다.

역대 어느 선거보다 네거티브 공방이 치열하고 정당 간 적대의 정도가 극심한 이번 선거의 후폭풍은 상상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다. 정권재창출과 정권심판론 중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도 선거 이후에도 여야의 극한 대결이 연장된다면 정치는 존재할 이유조차 없다. 비록 대선이 한 달 정도 밖에 남지 않았지만 정치제도화와 개혁 이슈가 대선 담론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 86세대 용퇴론과 동일 지역구 4선 이상 금지 등의 정치관련 이슈를 대선의제로 꺼내들었지만 이슈의 파괴력은 전무하고 오히려 진정성조차 의심받는 이벤트로 표를 얻으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윤미향, 이상직, 박덕흠 의원 등에 대한 윤리위 제명 의지를 천명했지만 진작 이뤄졌어야 할 사안을 무슨 생색내듯이 발표한 태도도 그렇고 실천이 될 지도 불투명하기에 전혀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것이다.

선거에서 대결과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권력을 두고 다투는 데에 네거티브 역시 마냥 적대시할 것도 아니다. 의혹 검증과 네거티브의 경계가 모호한 본질적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문제는 권력의 정점을 차지한 세력이 야당과 권력을 분점할 수 없거나 권력을 분할해도 제한적이고 형식적으로 그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데에 있다. 정당구조가 다당제의 외관을 가지고 있지만 적대적 양당 구조 하에서 타협과 절충이 의회의 중심문화로 자리잡을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권력구조 개편 자체가 시민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대선 후보들이 매크로한 방향 설정과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향에 대한 의제를 쟁점화하기보다 지역 맞춤형 공약과 세대와 지역별로 모순되는 사안들을 열거하듯이 발표하고 있다. 이들에게 한 국가의 통치를 맡을 정치인으로서의 정치철학과 리더십을 발견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통치체제이다. 시민이 직접 통치하는 것이 아니고 통치를 담당할 대표를 뽑는 통치의 유형이다. 따라서 통치자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인 대표와 원리와 책임성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제는 의회가 중심이 되는 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이 시민에 대해 책임지는 데에 취약성을 드러낸다. 미국의 대통령제는 강력한 의회와 철저히 독립적인 사법부의 존재가 대통령제의 많은 문제점을 보완하고 견제와 균형이라는 기본 원리에 충실하다. 그러한 미국의 민주주의도 대통령제가 갖는 승자독식의 한계 때문에 점점 오염되고 있다. 하물며 한국은 말할 것도 없다.

국민들의 대통령제에 대한 막연한 선호와 무능했던 장면 정부의 내각제에 대한 부정적 경험 때문에 내각제에 대한 선호가 낮은 편이다. 내각제 논의 자체가 금기시되어 있는 것처럼 인식될 정도다. 더구나 이번 대선에서는 권력구조 논의 자체가 이슈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의회가 중심이 되지 못하고 여당이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을 하는 구조가 혁파되지 않으면 5년 후 대선도 20대 대선과 판박이가 될 것이다. 명실상부한 다당제의 대표 체계가 확립되고 연립정부적 성격을 지닌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면 한국 권력의 운용 방식은 변할 수 없으며 한국 민주주의는 항상 위기의 칼날에 서게 될 것이다.

정치공학적 공동정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군소후보들이 양대 후보의 틈새에서 총리 등의 관직 등을 매개로 일신의 영달을 꾀하는 것은 연립정부와는 거리가 멀다. 진정한 연대를 기본으로 하는 연합정치는 지금의 권력투쟁 방식에서는 불가능하다.

고소영, 성시경, 캠코더 인사는 이번 대선 후에는 사라질 수 있을까. 대답은 부정적이다. 이러한 코드 인사의 수혜자가 되려고 수많은 정치권과 주변 인사들이 선거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정치와 역사에 대한 혜안과 통찰이 없는 후보들의 경쟁으로 점철되는 이러한 대선을 언제까지 봐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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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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