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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은 봄처럼 저절로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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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은 봄처럼 저절로 오지 않는다 [인권의 바람]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일구는 정치

넘쳐나는 말과 사건 속에서 인권의 가치를 벼리기 위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들의 고민을 <프레시안>에 연재합니다. 우리의 말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여는 싹이 되고, 인권 감수성을 돋우는 생각의 밭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영상의 온도를 유지하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더니 눈발까지 흩날린다. 봄인가 싶었던 사람들은 모두 두꺼운 겨울 잠바를 다시 꺼내 들며, 꽃샘추위냐는 말도 하고 그까짓 추위 한 달 후면 봄이 될 테니 덤빌 테면 덤벼봐라 되뇌기도 한다. 사실 견디기 힘들 것 같던 겨울도 끝이 오고 봄으로 가기 마련인 것이 계절이고 자연사다. 그러나 인간사는 계절과 다르다. 사람이 노력하지 않으면 저절로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 차별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때로는 속수무책 차별을 당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이하 차별금지법)이 논의된 지 15년이 됐고 유엔인권이사회나 유엔사회권위원회 등 국제인권기구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14차례나 권고했지만, 아직 국회는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작년 10만 명의 국민동의 입법청원으로 발의된 차별금지법 외에도 국회에 4개의 법안이 있지만, 심사조차 하지 않아 사람들이 도보행진과 국회 앞 농성을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 약칭 차만세 활동을 하면 서울 시내 곳곳을 돌고 있다. 평등은 봄처럼 저절로 오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고군분투 거리를 누비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차만세) ⓒ명숙

대선보다 더 정치다운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대선보다 먼저 차별금지법'이라는 기치를 걸고 차만세 유세 활동을 펴고 있다. 선거유세차량 같은 차를 타고 다니며 차별금지법의 취지와 국회 상황에 대해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사람 차별하지 말자는 법 이제는 제정해야 하지 않습니까. 차별금지법 제정에 힘 모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국회에 의원 발의법안만 4개인데 국회는 아직 심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차별로 인해 피해를 보지 않는 기득권 집단의 눈치만 보는 국회를 꾸짖어주십시오." "여성이라고, 장애인이라고, 비정규직이라고, 성소수자라고 차별받아 서러운 적 많으셨죠?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지긋지긋한 차별로부터 한발 벗어나 봅시다!"
이런 짧은 구호를 차량에서 외치기도 하고, 시장에서 주민들을 만나 얘기를 건네기도 한다. 때로는 시민들이 차별금지법이 뭐냐고 묻기도 하고, 응원 차 음료를 건네는 시민들도 있다. SNS를 보고 피켓을 들려고 찾아오는 낯선 시민들도 있고, 자기가 사는 동네에 와주어 너무 기쁘다고 말하고 가는 시민들도 있다. 길게 발언할 수 있는 장소에서는 잠시 정차해 지역 주민이나 지역 단체 활동가들이 발언한다. 성차별이나 장애인차별, 이주민으로서 겪는 차별, 비정규직이라서 겪는 차별, 청소년이 겪는 차별, 성폭력과 성소수자 혐오 등 다양한 차별의 사연들이 발언자의 몸을 거쳐 나오면, 시민들이 멈춰 서서 듣는다.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과정에서 우리는 '차별과 평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차별을 용인하는 법 제도가 문제라는 걸 어렴풋하게 떠올린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정치가 아닐까.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차만세) ⓒ명숙
어쩌면 대선에서 차별금지법을 주요 민생법안으로 다루라는 요구만을 정치로 볼 수는 없다. 정치를 그전 투표나 국회의원들의 법안 심의로 가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지역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활동이 '정치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철학자 랑시에르의 말대로, 사회 구성원들의 몫과 정체성을 위계적으로 나누는 치안은 사람들의 감각조차 분할시키기에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치안이다.  한국의 기존 정당이 해온 정치는 치안과 다르지 않았다. 비정규직의 몫, 여성의 몫, 장애인의 몫을 분할하고 그 선을 넘지 말라며 경계를 세워왔다. 차만세 유세단이 서울지역 곳곳을 누비며 다양한 시민들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각자 분할됐던 위치와 감각이 동료시민으로서 '차별과 평등'의 주제에서 만나는 것이, 그렇게 장소를 변화시키는 것이 정치의 실마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노인, 여성 등 차별받는 사회적 소수자들이 목소리(발언)로서 모습을 드러내며 서로 만나고 평등의 몫을 요구할 때 정치는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것은 아주 미약하다. 그러나 우리가 '운동으로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이유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바로 차별이 사라지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의 운동은 사회구성원의 평등 감각과 역량을 키울 것이다. 그 힘을 바탕으로 차별금지법 제정 후 더 활발하게 펼쳐질 평등을 향한 목소리들과 다양한 삶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차별금지법 제정은 평등의 감각을 싹 틔우기 좋다는 것을 운동 과정에서 확인하는 나날이다.

우리는 과거와 다르다

아직 우리의 운동이 국회에 어떤 압박을 줬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는 이제 과거와 다르다는 사실이다. 차별금지법의 존재를 알게 된 시민들과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하면서 동료 시민을 만났던 우리의 경험은 우리를 새로운 정치의 주체로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차별과 혐오가 줄 두려움에 떨기보다 차별이라고 손을 들 힘을 쌓고 있다. 제정 운동 과정에서 차별과 혐오에 맞서 함께 손을 잡아줄 동료를 만났기에 가능한 일이며, 우리는 더 전진하며 싸울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끝이 아니라 평등으로 가는 출발선이다. 그동안 차마 말하거나 드러내지 못했던 차별의 맥락을 드러내고 용기 내어 말할 수 있는 푹신한 매트 같은 것이다. 차별금지법을 기반으로, 우리 사회 평등의 지평을 더 넓힐 제도적 방안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는 2월 26일 서울이 아니라 차만세 유세 활동에 함께 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함께 국회 앞으로 모인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전국 집중 행동'에서 다시 한번 평등의 정치를 꽃 피우는데 함께 하자. 그렇게 당신들의 정치와 우리의 정치가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며 크게 웃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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