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청산의 결과물, 윤석열
촛불 정신의 실현을 기치로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은 정권 시작과 더불어 적폐 청산 작업에 착수했다.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1번으로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을 제시했다. 목적은 "권력의 사유화와 부정부패 등 한국 사회에 만연한 모순과 부조리를 타파해 달라는 촛불혁명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함"이었다. 문 대통령은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청와대 민정수석 자리에 '정의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임명했다. 국정농단 수사를 이끌 서울중앙지검장으로는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를 맡았다가 좌천된 윤석열 검사를 소환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사 윤석열은 승승장구했다. 문 대통령은 국정농단 수사를 완수한 윤 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 고검장을 거치지 않고 검찰총장으로 직행한 첫 사례였다.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을 임명하면서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하라"고 했다. 그러나 검찰이 당시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조국 전 민정수석 관련 수사에 착수하자, 청와대는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줄이겠다는 사법 개혁을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검찰이 조국 전 장관 일가 수사에 이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전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까지 의욕적으로 수사에 나서자, 청와대는 이를 '검찰의 쿠데타'로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 지휘봉조차 제대로 잡아보지 못한 조국 전 장관 대신 추미애 의원을 장관으로 임명해 '검찰개혁' 고삐를 죄었다. 추 장관은 검찰 인사를 '총장 패싱'으로 단행한 데 이어 급기야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검찰총장에 대해 직무 배제와 징계를 청구했다. 징계 위기에도 자리를 지키던 윤 총장은 결국 임기 4개월을 남기고 사표를 제출했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가 야심차게 단행한 권력기관 개혁은 '윤석열과의 싸움'으로 위축됐다. 그리고 다툼이 커질 때마다 아이러니하게도 윤 총장은 정치적 체급을 높여갔다. 살아있는 권력, 내로남불 세력과 맞선 강직한 인사, 또는 '희생자' 이미지가 부각됐다. 그가 총장직을 내려놓았을 때는 이미 어느새 유력한 대선 후보로 지목되고 있었다.세계가 주목한 'naeronambul(내로남불)'
윤 당선자가 검찰개혁 과정에서 획득한 또 하나의 이미지는 '공정'이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일가 논란 속에서 반대급부로 형성된 것이었다. 박근혜 탄핵 정국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 최서원(최순실)의 자녀 정유라 입시 의혹이었다면, 문재인 정권 심판론의 도화선이 된 사건은 조국 전 장관 자녀 입시 특혜 의혹이었다. 고교 논문 저자 등재 논란, 장학금 자격 논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청탁 의혹, 허위 인턴 경력 개지 의혹, 위장전입 의혹 등 논란은 2030세대의 분노를 이끌어냈다. 여기에 가족 운용 사모펀드 의혹, 사학재단 웅동학원 비리 등 조 전 장관 일가가 연루된 의혹은 수없이 쏟아졌다. 과거 조 전 장관이 SNS에 남겼던 정의감 가득한 글은 부메랑이 되어 '내로남불' 이미지를 강화했다. '정의'의 아이콘이자 촛불 정부의 실세 역할을 한 조 전 장관에게 국민들은 배신감을 느꼈다. 여론 악화에도 문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적으로 책임질 불법행위가 드러난 것은 없다"며 임명을 강행했다.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말했던 문 대통령에게 더 큰 배신감을 느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한 광장의 촛불은 문재인의 청와대를 향했다. 취임 이후 고공행진을 기록하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도 '조국 사태'를 계기로 급전직하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내로남불'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여성 인권 옹호에 앞장서 온 박원순, 안희정 등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줄줄이 성추행 사건에 연루되며 온 국민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더 큰 문제는 집권당이 보였던 반응이었다. 가해자인 단체장들을 옹호하고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며 2차 가해에 앞장섰다. 도덕적 우월성을 당의 정체성으로 내세우던 민주당의 이같은 행태에 국민은 공분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언했던 문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당의 귀책으로 재보궐선거가 열릴 경우 공천 후보는 내지 않겠다던 당 규약도 뜯어고쳐 공천 후보를 냈다. 이 규약은 문 대통령이 과거 당 대표를 지내던 때 만든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우리 헌법이 고정불변이 아니고 국민의 뜻에 의해서 언제든지 개정될 수 있듯이 당헌도 고정불변일 수는 없다"며 옹호 입장을 폈다. 다당제를 보장하겠다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입법화했지만, 선거가 임박하자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을 따라 위성 정당을 만들며 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미래통합당을 향해 "가짜 정당"이라며 비난한 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비판이 제기되자 "미래통합당의 의석 독차지를 막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합리화하기에 바빴다. 적폐 청산을 외치며 타인에게는 한없이 엄격하던 민주당은 스스로에게는 한없이 관대했다. 그 역풍은 지난해 4.7 재보궐 선거에서 경고음을 울렸다.주요 외신인 뉴욕타임스는 'naeronambul'을 지난해 여당의 4.7 재보궐 선거 참패의 원인으로 지목했다.부동산 실패에 방역 실패까지
계속된 내로남불 행태로 부글대던 민심을 폭발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은 '부동산'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에 몰두하는 사이,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집값을 잡겠다며 28번이나 정책을 고치고 또 고쳤지만 집값을 잠재우기는커녕 더욱 부추겼다. 취임 100일, "주머니 속에 강력한 집값 대책"이 있다고 호언했던 문 대통령은 임기 말이 되자 "부동산만큼은 할 말이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실효성 없는 부동산 정책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 바로 'LH 사태'였다. 구조를 고치지 않고 덧대놓은 부동산 정책은 힘 없는 국민의 주거권을 희생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집권당은 반성에 앞서 '과거 정권의 적폐가 누적된 결과'라며 책임 돌리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조국 사태가 잠잠해진 이후로 조금씩 회복 기미를 보이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고위공직자 다주택자 논란, LH 사태를 거치며 급기야 최저점을 찍었다. 문재인 정부의 집권 기간 동안 나타난 위선, 기만을 지켜본 국민들 사이에선 정권교체 여론이 높아졌다. 그 전초전이 지난해 4.7 재보궐 선거였다. 결과는 민주당의 참패였다. 그리고 그 후 11개월의 기간 동안 문재인 정권은 '정권 심판' 여론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촛불과 개혁의 독점, 내로남불 정치, 실패한 민생 정책에 코로나19 팬데믹까지 덮쳤다. 코로나 사태 초반, 문재인 정부의 방역이 효과를 보이는듯 했지만,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되면서 사실상 K-방역 성공담도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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