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패배의 원인
앞으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이번 대선을 둘러싼 공론장에서 오가는 말들은 크게 세 가지를 가리킨다. 첫째, 86세대 엘리트 정치인들과 문재인 정권 핵심 인사들의 '내로남불'에 대한 경멸이 젊은 층에 좌절감과 경멸감은 안겨주었다는 사실이다. 원인은 조국 사태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여권은 일을 이렇게까지 만들지 않을 충분한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청와대와 극렬 친문인사들은 문제가 있는 인사 결정과 입장을 고집스럽게 관철해나갔다. 물론 극소수 양심 있는 민주당 인사들은 비판적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반성은 거의 없었다. 대선 국면이 다가와서야 밀린 숙제를 치르듯 반성문이 작성됐다. 이는 민주당에 대한 엷은 지지와 기대로부터의 이탈로 이어졌다. 대장동 이슈는 막판까지 그 기억을 잊지 않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둘째,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노동 정책은 총체적으로 실패하였고, 이 실패의 의미를 제멋대로 편취한 보수언론과 경제지의 공격이 주효했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 부동산 보유자에게는 자산 폭등을, 20~30대 다수에겐 열패감을 안겨주었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권 시기 자산 격차는 크게 벌어졌는데, 누구도 제대로 반성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재명 후보는 막판에 수세에 몰리자 국민의힘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부동산 정책을 약속했다. 이재명 후보는 대대적인 주택 공급 확대와 규제 완화, 세금 완화를 밝혔고, 특히 "종부세로 인한 억울함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고, 4종 일반주거지역을 신설하고 용적률을 500%까지 상향해 재건축·재개발에 속도를 내겠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의 과오를 반성하는 게 아니라, 지난 과오를 전 세대로 확대 재생산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산 격차를 더 심하게 벌리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약속은 아무리 자산 증식의 꿈을 안고 있는 젊은 세대라고 할지라도 신뢰감을 주지 못하거나, 혹은 기만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셋째, 집권당인 민주당은 위성 정당을 포함해 180석이나 되는 의석수를 가지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들이 약속한 것마저 지키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에 약속에 걸맞은 어떠한 행보도 보이지 않았고, 민주당은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으로 줄줄이 이어진 고위공직자 성폭력 사건의 당사자였다. 임기 내에 최저임금 1만 원을 달성하겠다는 약속은 내팽개쳤고, ILO 핵심 협약 비준 약속은 차 떼고 포 뗀 채로 이뤄졌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역시 민간 도급이나 자회사 간접고용으로 대체됐다. 그 결과 민주당은 시민들에게 정치에 대한 환멸감을 안겨다 주었고, 무능력과 거짓말쟁이 정당이라는 사실을 방증했다. 선거운동 기간 이재명 캠프가 아무리 윤석열보다 좀 더 선거 기술적으로 전문가다운 모습을 보였다고 할지라도, 이런 근본적 문제를 상회하기엔 역부족이었다.숨은 패배자들
주지하다시피 이번 대선은 민주당의 패배이고, 이재명 전 도지사의 패배다. 그런데 진짜 숨은 패배자가 있는 따로 있다. 바로 문재인이다. 우리가 이 '숨은 패배자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한국 사회의 책임과 과제를 분명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 윤석열을 낳은 일등 공신은 권영세도 장제원도 아닌 조국과 민주당의 86세대 정치 엘리트들이다. 이들은 젊은 날의 학생운동 경력을 훈장처럼 내세우면서 거들먹거릴 뿐, 실질적으로 자신들 역시 국민의힘과 더불어 사회 엘리트 계급이라는 사실을 성공적인 부동산·금융 투기로 보여주었다. 투기는 자산과 고급 정보력을 갖출수록 유리한데, 이들은 자신들이 지닌 권력을 십분 활용했다. 그런 점에서 이들에게 '운동권 출신'이라는 명함을 붙여주는 것은 이름 없이 활동해온 많은 운동권들엔 치욕일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떠들던 '민주화' 같은 말들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자신들의 삶으로 증명했다. 이번 선거의 두 번째 실패자가 있다면, 바로 이준석과 그의 극렬 추종자들이다. 이재명 후보는 민주당과 청와대, 선본 자신의 헛발질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힘을 짜내 국민의힘 후보로 나선 윤석열 당선자에 매우 근접하게 따라붙었다. 선거 막판 추적불꽃단 박지현 씨를 영입해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이전에는 발휘하지 못하던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전통적인 방식의 사표론이나 읍소에 흔들리지 않던 부동층 상당수가 여성 혐오에 대한 공포 효과로 결집했다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이준석과 그의 극렬 추종자들은 젠더 갈등을 적극적으로 악용하면서, 이른바 '이대남'의 사회적 불만을 시스템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혐오로 끌어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20대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은 이윤밖에 모르는 자본과 민주당·국힘 기성 정치 세력에게 있지만, 이준석 대표는 20대 남성의 피해감이 여성을 향하고 있던 인터넷상의 쟁론을 정치적 언어로 교묘하게 치환함으로써 20대를 성별로 갈라치는 데 성공했다. 선거일 직전까지 이준석은 10%포인트 차의 승리를 장담하며 떠들었지만, 결과적으로 0.73%포인트 차이에 불과한 박빙의 신승이었다.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윤석열 후보는 20대 전체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뒤지는 결과(이재명 47.8%, 윤석열 45.4%)를 얻었는데, 이는 지난 5년 문재인 정권이 20대들로부터 매우 비판적으로 평가받은 것에 비하면 놀라운 결과다. 이와 같은 결과에 대해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이준석 대표 때문에 10%포인트 차이로 이길 걸, 1%포인트 차이로 이겼다"고 비판하고 있다.우리의 실패
마지막 실패자는 진보정당을 포함한 우리 사회운동 자신이다. 대안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사회운동의 성취가 전무한 것은 아니지만, 대중들로부터 선택받기에는 여전히 부족했다. 이명박-박근혜 시기 사회운동은 거악에 맞선 '대단결'로 시민사회 내의 차이를 애써 무시하고 뭉개버릴 뿐, 대안적인 정치 운동을 준비하지도 국힘-민주당 내의 차이를 분별하지도 못했다. 진보정당들은 혁신에 지지부진했고,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정치적 실용주의는 비현실적인 노선이었고, 결과적으로 실리를 얻는 데도 실패했다. 사회운동은 정당들의 정책 하위파트너로 취급될 뿐, 대안 세력으로 존중받지 못했다. 이로 인해 촛불 항쟁 이후 진정한 변화가 아니라, 내로남불 정치 엘리트들만의 5년, 혐오 정치의 5년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터전에서 희망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전체 판도를 뒤바꾸는 데 실패했다. 물론 저들의 실패와 우리의 실패는 다르다. 더 나은 세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실패를 인식한다는 것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고, 이전과는 다르게 대안을 만드는 것으로 연결된다. 요컨대 국제 정세의 혼돈 속에서 만성적이고 장기화한 신자유주의 정치 위기는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젠더 갈등을 여성 혐오로 치환하여 이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거두려는 이들도 이런 시도를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 단단하고 끈끈하게 사라지고 짓밟힌 목소리들을 연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세계 자본주의 역사는 이런 극단의 시대에 우리의 선택지가 '야만 혹은 변혁'으로 갈린다는 것을 일러준다. 2022년의 우리는 어떤 쪽이든 야만에 가까워 보인다.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는 조금 덜 한 야만과의 연합을 편의적으로 택하는 것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는 그런 선택을 강요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회의 총체적 위기에 맞서, 서로의 잠재력을 결집하고 대항의 헤게모니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앞으로 우리에게 남아있다. 미래의 꿈과 목표가 있는 '운동'은 절대 위축되지 않는다. 그러니 야만의 세계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꿈을 포기하지도 누군가에게 의탁할 필요도 없다. 같은 현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른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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