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부차 학살에 대한 국제적 비난이 커지는 가운데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집행위가 러시아산 석탄 수입 금지를 제안하며 에너지 금수 조처에 나섰다. 다만 집행위는 천연가스(LNG)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AP> 통신 등 외신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5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 부근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을 "극악무도한 범죄"라고 지칭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기 위해 연간 40억유로(약 5조3천억원)에 이르는 러시아산 석탄 수입 금지 조처를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이날 석유 수입 금지를 포함한 추가 제재에 대해서도 이미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해당 제안은 6일 EU 대사들 간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EU의 러시아산 석탄 의존도는 2020년 기준 49%, 석유 의존도는 25.7%나 된다. 미국과 같이 즉각적인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금지 조치를 취하지 못한 이유다. EU는 지난달 수입 중단 대신 올해 말까지 러시아산 가스 수입 물량의 3분의2를 줄이고 2030년까지 러시아산 화석연료에서 독립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미국도 6일 러시아에 대한 모든 신규 투자 금지, 러시아 은행 및 국영 기업에 대한 제재, 러시아 정부 관리에 대한 추가 제재를 포함한 전면적인 추가 제재를 발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에 더해 <로이터> 통신을 보면 4일 미 재무부는 러시아가 미국 은행에 예치된 준비금으로 지불 기한이 도래한 6억달러 상당의 국채 일부를 상환하려는 시도를 차단했다. 미 재무부 대변인은 "러시아는 (자국에) 남아 있는 귀중한 달러보유고를 소진하거나, 새로운 수입을 창출하거나, 아니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의 외환보유고는 서방 제재로 60% 이상(3500억달러) 동결된 상태다. 3월에도 러시아의 채권 이자 지급 기한이 여러 번 도래했지만 미국은 당시에는 결제를 막지 않았다. 채권 상환에는 30일의 유예기간이 있어 러시아가 당장 디폴트에 처한 것은 아니다. 경제 제재 외에도 부차 학살 뒤 유럽 각 국은 자국에서 활동 중인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하는 조치도 취하고 있다. 5일 <가디언>은 4일부터 이틀간 이탈리아·프랑스·독일 등 유럽 각국에서 추방당한 러시아 외교관과 대사관 직원의 수가 206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EU가 러시아산 석탄 및 석유 수입 금지 제재까지 제안했지만 천연가스(LNG) 수입 금지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도 계속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마틴 울프 수석경제논평가는 5일 "2021년 기준 러시아 가스 수출의 74%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소속 유럽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가 수출을 통해 얻는 총 수입의 5%에 해당한다"며 "금수 목록에 가스를 추가하는 것은 러시아의 고통을 증대시킬 것"이라고 썼다. 그는 비관적 가정 아래 러시아 가스 공급을 끊으면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3%가 감소할 수 있다는 추정치가 있지만 "금수 조치는 전후 유럽이 건설한 가치를 옹호하기 위한 집단 의지의 선언이 될 것이다. 이를 이끄는 것은 독일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5일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 수송관인 "노르트스트림2 파이프라인 건설을 강행한 것은 분명한 실책"이었다는 자책성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고 <로이터>가 보도했다. 독일은 2월 러시아에 대한 제재의 일환으로 가동 노르트스트림2의 가동 중단 방침을 밝혔다. 앞서 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 등 발트 3국은 1일부터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중단했다고 밝히며 EU에 가스 수입 금지를 촉구했다. <프랑스24>는 이들 국가들이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인 가즈프롬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데 위기를 느끼고 자체 LNG 터미널을 건설하는 등 에너지 독립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전략연구재단의 니콜라스 마주치 에너지 전문 연구원은 "발트해 연안 국가들은 연간 1000만~1200만 입방미터의 가스를 필요로 하지만 러시아산 가스 수입 물량의 3분의2를 줄인다고 하면 1000억 입방미터가 필요하다"며 소비 규모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짚었다. 미국이 2030년까지 연간 500억 입방미터의 가스를 유럽에 공급하려 하고 있지만 부족 물량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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