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되었던 발표 시한보다 며칠 늦은 4월 5일 자정,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제6차 평가보고서(AR6) 중 제3실무그룹의 보고서가 공개되었다. 기후변화의 원인과 현상, 미래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제1실무그룹 보고서(지난해 8월 발간)와 기후변화로 야기된 영향과 취약성 등 다양한 결과를 담은 제2실무그룹 보고서(2월)에 이은 세 번째 보고서(완화, 적응, 지속가능 개발)다. 국내 언론에는 금세기 내에 지구온난화를 1.5도 이내로, 즉 티핑포인트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려면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43%, 2050년까지 84% 줄여야 한다는 분석이 헤드라인으로 보도되었다. 2030년까지 40% 감축을 약속한 한국의 NDC로는 부족하다는 것도 덧붙여졌다. 5차 보고서가 인간의 책임과 위험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보고서는 복합적 차원의 해법과 시스템 전환을 상당 부분 다루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소비 습관을 바꾸고, 산림조성과 풍력과 태양광 등 비용이 적게 드는 방안만 쓰더라도 40~70% 정도의 온실가스 감축이 가능하다거나, 각국의 노력이 강화되어 향후 몇 년 사이 온실가스 정점을 만든다면 기후 안정화가 가능할 수 있다는 내용은 다소 용기를 준다. 수요 측면과 흡수원 부분이 8년 전 5차 보고서에 비해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인데, 대기중 탄소 제거 기술 같은 기술과 해법의 현실성과 시장성은 앞으로 많은 논의와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어쨌든 이런 결과를 위해서 기술뿐 아니라 사회 경제 제도적 변화와 일상 생활양식의 변화까지를 본격적으로 요청한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2월의 제2실무그룹 보고서에도 IPCC가 말할 것 같지 않은 내용이 등장했다. 탈성장, 식민주의, 자본주의, 권력 관계 등 기존 보고서에는 언급된 바 없었던 단어들이다. 제3실무그룹 보고서 본문에도 탈성장, 불평등, 부정의 등이 언급되었다. 이번 보고서는 '정의로운 전환'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보고서는 경제 활동과 성장을 탈동조할 가능성에 기반한 녹색 경제 역시 성장을 전제로 한다고 비판하며, 경제 성장에 종속되지 않는 번영과 '좋은 삶'을 주장하는 탈성장론자들의 문헌을 소개한다. 또한, 탈성장 운동은 이윤보다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둠으로써, 비화폐적 재화와 서비스의 교환을 고양하는 것 같은 대안적 실천을 활용하는 변화를 가속할 잠재력이 있다고 언급한다. 사회 전환을 위해서 '내적 전환', 즉 개인의 신념과 행동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연구자들의 주장도 소개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내적 전환은 평화에 대한 인식, 기후와 지구를 보호하고 다른 이들을 돕겠다는 인식을 얻는 것이다. 또한 탄소집약적 라이프 스타일과 발전 모델에 도전하는 포스트-발전, 탈성장과 비물질적 가치를 수용함으로써 일어나는 개인,조직,사회의 일련의 내적 전환이 요청된다는 내용이다. 연구자들은 개인 신념의 변화가 지속가능하고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후행동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설명한다. 그 결과 사람이 자연과 다시 연결되고 기후와 지구를 보호할 책임의식이 깊어지면 가치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6차 보고서는 '식민주의'가 기후변화의 원인이라는 언급까지 명시적으로 포함했다. 보고서에 등장한 이런 언급들은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원주민과 토착 문화, 생태계의 회복과 역량 강화가 중요한 해법 중 하나라는 주장을 더욱 뒷받침할 것이다. IPCC는 새로운 연구를 하는 조직이 아니며 IPCC의 저자들은 독창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고 모든 조각을 모아 전체 그림을 대중에게 제시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니까 이는 5차 보고서 이후 기후변화와 식민주의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문헌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 반영된 결과다. IPCC 보고서가 다루는 주제와 강조점의 변화는 저자 구성과도 관련된다. 제1실무그룹은 기후변화의 과학적 측면을 다루며 자연과학 연구자들이 주로 작성했다.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보고서 작성에는 경제, 지리학, 인류학, 국제 개발 등 사회과학 분야 연구자들의 참여가 늘어났다. 저자 중 여성이 29%, 남반구 출신의 연구자가 41%를 차지한다. 이 역시 IPCC 자체가 진보적인 조직이어서 라기보다는 5차 보고서 이후 세계 기후정의 운동과 더불어 학계의 분위기도 일정하게 바뀐 영향이라고 추측된다. 하지만 이런 보고와 현실 정치,유엔 기후체제의 작동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IPCC 보고서가 실제로 영향을 끼치고 근거 자료로 활용되는 것은 방대한 양의 본 보고서가 아니라 "정책가를 위한 요약본(SPM)"이다. 4월 5일 공개된 제3실무그룹 보고서는 결국 이 요약본을 의미하며, 요약본을 만들기 위해 각국이 이해관계를 조율하느라 며칠을 보낸 것이다. 그만큼 요약본은 일정한 '마사지'를 거쳐서 각국이 마지못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완화'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앞서 말한 탈성장 등 체제 전환을 위한 큰 씨줄과 작은 날줄들은 요약본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고소득국가든 저소득국가든 성장과 발전, 자본주의 시스템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고, 요약본의 문구를 선택할 권한은 IPCC 회원국의 정부 대표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정의로운 전환은 상대적으로 모든 국가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이라는 듯, 불평등, 부정의와 함께 이번 보고서의 요약본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체제 전환을 주문하는 새로운 차원의 보고서이지만 본격적인 체제 전환을 위한 자원과 수단들은 전면에서 빠진 보고서다. 이것이 IPCC의 현 주소이며 국제 기후정치와 기후체제의 단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실망할 일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처한 지형의 확인이고 과제 설정의 기반이다. 국제 기후정의 운동이 고양된 만큼, 많은 담론과 문헌이 나온 만큼 IPCC는 변하고 있다. 더욱더 많은 변화를 위해, 그리고 IPCC의 보고서 같은 매뉴얼 해법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올해는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가 출간된 지 50년이 되는 해다. 1972년 출간 당시 그토록 배척받고 비난받았던 로마클럽의 예상은 거의 들어맞았음이 확인되었고 기후위기는 그 연장 선상의 도드라진 끝이다. 무한한 양적 성장은 가능하지 않고 지구라는 그릇의 시스템은 한계가 있다는 가장 간단하고 명료한 이야기를 세상은(실은 주요국 정부와 권력 집단은) 50년간 무시했고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성장의 한계>는 해법으로 지속가능성 혁명이 필요하고 가능함을 말하며, 그 수단으로 기술적이고 제도적인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저자들이 결론에서 주문한 것은 놀랍게도 '꿈꾸기', '네트워크 만들기', '진실 말하기', '배우기', '사랑하기'였다. IPCC 6차 보고서 요약본의 뒤편에 숨어있는 자원들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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