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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병원은 '병원'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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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영리병원은 '병원'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시민사회단체, 2일 토론회서 영리병원 허용 법 개정 요구
현행법상 영리법인은 병원을 설립할 수 없다. 병원을 설립할 수 있는 주체는 의료인, 정부, 지자체 등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병원 운영에서 생긴 수익은 내부 투자에만 사용된다. 병원의 운영 또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수가 제도 등 공익적 목적으로 강하게 통제받는다. 예외는 존재한다. 2002년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외국인은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을 개설할 길이 열렸다. 2005년에는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이라는 조건이 폐기됐다. 이에 제주특별자치도는 2006년 제주특별법을 제정해 외국인이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게 했다. 중국 자본이 투입된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는 2015년 '제주국제녹지병원' 의료기관 개설 허가 사전심사청구를 신청하면서 국내 첫 영리병원의 설립이 시작됐다.

이후 제주 녹지병원은 사업허가와 허가 취소를 겪었다. (☞관련기사 : '내국인 진료 제한은 위법'…법정 싸움서 녹지병원 또 승소) 그동안 제주도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영리병원과 의료민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5일 제주 녹지병원의 의료기관 개설 허가 조건이었던 '내국인 진료 제한'이 위법이라는 1심 판단이 나오면서 논란은 재점화됐다. 국내 첫 영리병원의 진료 대상이 외국인 의료 관광객뿐만 아니라 내국인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녹지병원이 개설허가 후 3개월 내 업무를 시작하지 않아 제주도로부터 받은 '개설허가 취소 처분' 또한 위법이라는 대법원의 판단도 지난 1월 나왔다. 현행 의료법은 '병원 개설 허가를 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를 시작하지 않으면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녹지병원은 사업 설계부터 내국인 이용을 배제하지 않았지만, 제주도가 녹지병원 진료 대상자를 외국인으로 뒤늦게 한정함으로써 개원이 늦춰진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제주도는 지난 12일 제주 녹지병원이 병원 부지 제3자 매도, 의료시설 멸실 등 개설 허가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며 두 번째 개설 허가 취소를 내렸다. 그런데도 녹지병원이 내국인 진료 허용과 기존 허가 취소 처분에서 승소한 상황에서 영리병원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수많은 병원 중 고작 하나의 영리병원이라는 생각과 달리 "영리병원이 한국 의료체계 붕괴 도미노의 시작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차기정부인 윤석열 정부는 영리병원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원격의료, 디지털헬스케어 등 '규제혁파'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첫 영리병원 추진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를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참여연대, 연구공동체건강과대안, 보건의료단체연합 등은 2일 참여연대에서 '왜 다시 영리병원인가? 위기의 시대 영리병원 재점화 논란과 한국의료의 위기 토론회'를 개최했다. 시민사회단체는 "민간병원 위주의 한국 의료시스템은 여전히 위기"라며 "영리병원은 의료체계 붕괴를 가속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많은 병원 중 고작 하나의 영리병원이라는 생각과 달리 "영리병원이 한국 의료체계 붕괴 도미노의 시작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제주녹지국제병원

제주 녹지병원 법원 판단은 평등의 원칙 위반...법 개정해서 영리병원 막아야

영리병원의 입법적 근거는 '경제자유구역법'이며 제주 녹지병원은 '제주특별법'에 근거한다. 노무현 정부 시기 추진된 두 법률에 따라 국내에서는 기존 비영리법인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수가 적용 없이 수가를 임의로 책정할 수 있는 외국인 개설 의료기관이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이찬진 변호사는 "의료서비스에서 '1국 양제'가 구축됨으로써 의료에 대한 차별적 접근이 제도적으로 허용된 상황"이라며 "법 제정 이후 제주 녹지병원이라는 사례가 생겼는데, 이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공급자 측면에서 국민건강보험의 근간을 뒤흔들고 수요자 측면에서는 건강권에 차별적 접근을 허용하는 매우 예민한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녹지병원에 대한 법원의 판단 또한 국내 의료체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제주지방법원은 제주 녹지병원의 허가조건인 '내국인 진료제한'에 대해 "진료 대상을 제한하는 내용의 부가적인 약관을 붙일 수 있다는 명시적인 근거가 없다"라며 "외국의료기관이 제주특별법과 의료법이 정하는 요건에 맞을 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허가해야 한다"라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이 변호사는 법원의 이러한 판단이 "내국의료기관과 외국의료기관이 동일한 법적 지위를 갖고 있음을 전제로 한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국내법상 병원은 국민의 건강권 보장이라는 공익적 목적에 따라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급여비용 법정화, 법정 수가 강제 등을 규제받는다. 그러나 외국 영리병원은 이와 같은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법원의 판결은 이런 차이점을 고려하지 않고 외국의료기관이 자유롭게 허용될 수 있도록 한다는 지적이다. 이 변호사는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녹지병원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한 개설허가 취소 처분 소송에 대한 법원의 판단도 "녹지병원이 제출한 사업계획서에 외국인 의료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의료 서비스 제공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흠결이 있다"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녹지병원은 2015년 보건복지부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서 "제주도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의료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의료 서비스 제공"을 명시했다. 사업자 스스로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의료 서비스 제공은 고려하지 않은 채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법원은 사업자가 사업을 승인받을 때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내국인 진료가 가능함을 전제로 한 발언이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내국인 진료 제한이라는 허가 조건은 '주된 허가사항 변경'이고, 사업 시행 지연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 변호사는 "특별한 위법사항이 발생하지 않는 한 사전승인(외국인 관광객 대상 의료서비스 제공) 내용대로 외국의료기관 개설을 허가하도록 하는 구속 효력이 발생한다"라며 법원의 판단을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법원이 제주 녹지병원 허가 여부를 판단함에 의료행위가 법정제한 시스템에서 벗어날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기계적 해석론을 적용했다"라며 "한국 공적 의료체계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위험이 사법적으로 발생했다"라고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따라서 영리병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영리병원 허가 법안의 근거가 되는 두 법안을 폐지 및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상원 의료영리화저지제주도민운동본부 정책기획국장 또한 "제주도민들은 압도적으로 영리병원 도입에 반대했었다"라며 "제주특별법의 제307조~319조 등 의료기관 개설 특례조항을 폐지하고 경제자유구역법 내 허용조항 또한 전면 삭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가 17일 오전 제주도청 앞에서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제주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개설 허가 취소가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판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리병원 도입되면? "진료비 상승하고 사망률 높아질 수도"

해외 영리병원 사례 연구를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영리병원 환자의 사망률이 비영리병원보다 높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는 미국 영리병원체인에 대한 15개 연구를 분석한 결과 영리병원 환자의 사망률이 비영리병원보다 높고 이는 10~15%의 투자자 배분과 경영진의 높은 보수로 인해 숙련 전문의료진을 덜 고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리로 운영되는 장기요양시설 또한 낮은 재투자율, 환자 대비 간호사 비율로 인해 사망률과 입원율이 높게 나타났다. 우 대표는 "영리병원이 비싸고 좋은 병원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미국에서는 의사들이 의과대학 등록금을 갚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곳으로 여겨진다"라며 "영리병원에서는 임금이 높은 숙련된 의사나 간호사를 해고하는 경향도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던 시기 영리병원은 "병원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장기요양시설의 코로나 발생률과 사망률은 영리시설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리, 비영리, 주정부의 시설을 비교했을 때 영리시설이 코로나에 가장 취약했던 것이다. 또한 영국의 경우에는 정부 소유 병원이 360만 명의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하는 동안 영리병원은 코로나 환자의 0.08%만 진료했다. 미국, 호주의 영리병원의 경우 수익성 위주로 조직된 병원의 특성상 코로나 유행 시기 재정안전성이 급격히 저하된 것으로 분석됐다. 우 대표는 "작년 11월까지 코로나 환자 70~80%를 전체 병상의 10%인 공공병원이 담당했었다"라며 "공공병원의 비중이 작고 민간병원이 감염병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영리병원 도입은 재앙"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영리병원을 도입하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공공의료 병상 비중이 평균 73%인 것에 비해 한국의 비중은 10%로 최하위 수준으로 머무르고 있다.

영리병원은 '의료민영화'의 시작

영리병원 허가는 의료 영리화의 기반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아마존을 비롯한 해외 빅테크 기업이 개인의 건강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기업이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헬스케어' 사업이 국내에서도 영리병원을 기점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팀장은 "건강데이터 수집을 통한 헬스케어, 인공지능 진단 등 의료 디지털화가 건강에 이롭다는 믿을만한 연구 자체는 부족"하고 "보건의료데이터를 민간기업이 집적하고 고도화함에 따라 안전성, 정확성, 프라이버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민감한 개인의 건강데이터를 기업이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일이 국민의 건강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고 사생활 침해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리병원은 기업들이 얻기 어려운 보건의료데이터를 공적 통제에서 벗어나서 얻을 수 있는 공간이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 기획팀장은 "현재는 형식적으로나마 의료기관들이 산업계와 소유가 분리되어있지만 영리병원이 허가된다면 경영진 판단에 따라 데이터가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또한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빅테크 기업과 영리병원이 결합한다면 불필요한 검사와 처치 등 의료비 상승을 이끌 유인이 있다"라며 "영리병원 논의와 영리적 디지털 헬스산업이 아닌 공공의료체계 구축이 일어나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변혜진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위원은 "차기 정부가 규제 완화를 이야기하고, 도민들의 반대에도 녹지병원을 허가한 원희룡 지사를 국토부 장관으로 임명했다"라며 "코로나 시기 겪었듯이 병상부족이 지속해서 나오는 의료체계 위기의 상황에서 영리병원을 막기 위한 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본을 비롯한 기업들의 영리병원 추진 움직임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연구공동체건강과대안, 보건의료단체연합 등은 2일 참여연대에서 '왜 다시 영리병원인가? 위기의 시대 영리병원 재점화 논란과 한국의료의 위기 토론회'를 개최했다. 시민사회단체는 "민간병원 위주의 한국 의료시스템은 여전히 위기"라며 "영리병원은 의료체계 붕괴를 가속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레시안(이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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