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의 정치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부대낌'일 것이다. 고 노회찬 정의당 대표는 누구보다 현장을 강조한 정치인이었다. 생전의 그는 노동자,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머무는 현장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섰다. 약자들의 현장을 찾아가 직접 몸을 부대끼는 것, 그렇게 그들이 맞고 있는 비를 함께 맞는 것이 정치의 시작점이라고 그는 말했다.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에서 그 부대낌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장이 다시 열렸다. 이날은 노회찬재단이 주최하는 '노회찬 정치학교'의 기본과정 3기 입학식 날이었다. 노회찬 정치학교는 노회찬과 같은 정치인 리더를 만들어낸다는 목표를 가진 시민 정치교육 프로그램이다. 제2, 제3의 노회찬을 양성하기 위해 지난 2019년 10월 기본과정 1기를 시작으로 기본과정 2기, 심화과정 1기까지 총 3회 동안 이어져왔다. 수강생들은 기존 리더십 아카데미 등이 강조하는 조직 운영이나 경영 마인드가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 관점을 토대로 '내가 (정치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정치학교에서 배우고 고민한다.
김형탁 학교장은 특히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노회찬 정치학교의 의의를 설명했다. "대중과의 공감, 소통 능력이 뛰어난 정치인"으로 기억되는 고 노회찬 대표의 발자취를 따라 "공감과 소통의 능력을 기르는 것이 노회찬 정치학교만의 특수성이자 지향점이다."
"노 의원이 가장 좋아했던 문구가 '함께 맞는 비'였습니다. '왜 함께 비를 맞아? 우산을 씌우면 되지' 하고 비아냥대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함께 비를 맞는 게 저는 소통의 근본이라 생각합니다. 같은 입장, 같은 처지에서 있어보지 않고 진짜 소통을 할 수 있을까요? 소통이란 건 설명과 설득하려하는 일보단 내가 남이 되어보는 일입니다. 내가 남이 될 수 있으면 그 남과 소통이 가능하고, 그래서 함께 맞는 비는 의미가 있습니다" -김형탁 학교장(노회찬재단 사무총장)
입학식이 열린 이날로부터 정확히 15년 전, 2007년 5월 7일은 고 노회찬 대표가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날이다. 당시 그는 "약육강식이 횡행하는 야만의 나라를 인간의 나라로 만들겠다"고 대선 후보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입학식에 참여한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은 노 전 대표의 그 말을 인용하며 "노 의원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문명이 아닌 야만의 시대로 후퇴하는 이 사회에, 그래서 그 빈자리를 채워주실 여러분이 필요하다. 우리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 뿐, 노회찬이 되는 것은 여러분이다"라고 인사의 말을 전했다.
이날 입학식엔 앞으로 8주간 프로그램을 꾸려갈 수강생들이 모여 정치학교에 대한 기대감을 나눴다. 진보정당 당원, 신입사원 청년, 건설 노동자, 혹은 행정사까지 수강생들의 직업, 연령, 지역, 성별 등 배경은 다양했다. 수강생 김종훈 씨는 "대구에서 노회찬 정치학교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까지 왔다"며 "불평등,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에 대해 공감했지만 그 문제를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같은 꿈을 꾸는 여러분들과 교류하고 소통하고 싶어서 이 자리에 왔다"고 정치학교에 참가한 배경을 밝혔다. 지난 4월까지 청년유니온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이채은 전 위원장도 이날 정치학교에 입학했다. 이 전 위원장은 "가장 일상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을 되뇌며 (정치학교에) 왔다"며 "청년문제, 불안정 노동, 성 차별 등 평소 관심가지고 있던 문제들을 함께 공부하면서 해결책을 고민하고 싶다는 기대를 안고 있다"고 입학 소감을 말했다.
"제가 노동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노회찬 대표의 6411 버스처럼) '버스' 때문이었어요. 여의도에는 새벽 6시에 방송 스태프들을 태우고 가는 버스가 있거든요. 청년유니온 소속으로 처음 활동한 날, 버스에 타는 스태프 분들에게 노동 상담 팜플렛을 나눠주러 갔었죠. 사실 그 전까지는 제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활동을 통해 (제 힘으로도) 세상이 조금 달라질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이채은 수강생(전 청년유니온 위원장)
수강생들은 모두 고 노회찬 대표와 직간접적 인연을 쌓아왔다. 노 대표와 직접 만나 인연을 맺은 이들이 있었고, 그렇지 않다 해도 노 대표의 생전 행보를 기억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온 이들이 있었다. "30대 시절 민노당 당원으로 활동했었다"고 자신을 소개한 수강생 이태융 씨는 "인간이 도구화되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해주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휴머니즘을 지향한다"며 "노 대표의 모든 말씀의 가치도 휴머니즘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자신을 "플랫폼 노동자"라 소개한 한 수강생도 "광장시장에서 노회찬 의원을 마지막으로 뵀었다"며 "그때 노 의원과 (시민들이) 맥주 한 잔하는 자리를 가졌는데, 정치학교를 통해 그때의 그 광장시장 같은 느낌을 한 번 더 받아보고 싶다"고 노 대표와의 인연을 회상했다.
이날 수강생들은 입학식과 함께 "연극이라는 예술을 통해 함께 할 이야기를 연결"하는 '정치-배우 오디션' 워크숍 프로그램과 4주차까지 진행할 모둠활동의 프로젝트 주제탐색 시간을 가졌다. 구민정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가 워크숍 시간을, 이강준 노회찬재단 사업기획실장이 프로젝트 시간을 맡아 진행했다. 해당 프로그램들을 통해 수강생들은 각자의 관심 이슈들을 공유하고 그에 대한 쟁점 사항 등을 함께 논의했다. 노회찬정치학교는 올해 7월까지 9주 동안 이어질 예정이다. 이날 활동을 시작으로 수강생들은 정치, 경제, 노동, 복지, 젠더, 평화, 생태 등 7개 분야의 전문가 강연을 수강하고, 참여형 워크숍과 모둠 프로젝트 등 참여형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해당 과정들을 가리켜, 김 교장은 "비를 함께 맞으며, 이 비를 피하기 위해 우린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이라고 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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