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의 길, 한덕수의 길
한덕수 총리 후보자의 인준을 놓고 말들이 많다. 30여 년 전 고위 관료 때 미국 기업 2곳으로부터 6억대 임대수입을 올렸고 10년 전부터 한 특급호텔 피트니스 센터를 공짜로 사용한 점 등이 드러났다. 특히 문제는 김앤장으로부터 고문료 명목으로 약 20억 원을 챙긴 것인데 그 모양새가 참 고약하다. 한 후보자가 '공직-김앤장-공직-김앤장을 왔다갔다' 하며 실제 몸은 김앤장에 있으면서 공직엔 출장 다녀오듯 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김동연도 한덕수 못지않게 몸값이 높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청와대에서 일했고 이후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로 이어지는 무려 20년이 넘는 기간 언제나 청와대 아니면 요직에 있었다. 그래서 2014년 국무조정실장 퇴임 후 대형 로펌들에서 제의가 쏟아졌고, 2018년 부총리 퇴임 후에는 연봉 20억 원을 제시한 곳도 있었다. 심지어 백지수표를 내민 곳도 있었지만 이를 피해 양평에 칩거하고 전국을 돌며 피해 다녔다.양대 정당과 거리를 둔 이유는?
그에게서 또 다른 특이함이 보인다. 그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좋은 '자리'를 얻을 기회는 정말 많았다. 그런데 그는 왜 3년 간 양쪽과 거리를 뒀을까? 왜 대선 직전에서야 이재명 지지를 선언하며 합당을 하게 됐을까? 국민의힘은 '당내엔 김동연, 당밖엔 윤석열' 포석으로 대선을 준비하기 위해 김동연 영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나는 문재인 정부 초대 부총리"라며 야당 영입설을 일축했다. 총선 때는 민주당 후보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민주당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가 부총리 재직 시설 청와대 인사들과 갈등관계에 있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회의 때면 험한 말과 고성이 오가며 "1대20으로 싸웠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그런 그들이 민주당과 청와대 안팎에 포진한 상황에서 홀로 민주당에 들어가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일찍 들어갔다면, 일찍 묻혔을 것이다. 결국 그가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이재명 때문 아닐까. 그는 대선 기간 양당 후보로부터 만나자는 요청을 받고 권력구조 개편 등 자신이 정치하는 이유 네 가지를 제시하고 이에 대해 전향적이라면 만나겠다고 했다. 그는 윤석열 후보를 만났지만 "이런 문제들을 깊이 고민하고 계신 거 같지는 않았다"며 "잘 모시겠다"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어느 자리에선 "말이 안 통했다"고도 했다. 이재명 후보는 세 번 만났는데 이러한 문제에 대해 "굉장히 적극적이고 전향적이고 일관됐다"고 했다. 결국 그들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에 뜻을 모아 '국민통합정부 구성'에 합의하면서 김동연은 이재명 지지를 선언하며 대선 후보직을 사퇴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이제까지의 여느 관료 출신들처럼 이당과 저당을 두리번거리며 국회의원이나 시장 등 '자리'를 가지고 거래하지 않았다. 국무총리는 물론 백지수표 제안도 거절하고 전국을 다니며 농민과 어부, 서민과 소상공인들을 만나고 다니며 이 시대를 이해하려고 애쓴 사람이다.'시대'를 이해하려 애쓴 사람
저서 <대한민국 금기 깨기>에서 그는 이미 두 번의 좌절을 겪었다고 고백한다. 첫 번째가 바로 참여정부 시절 본인이 직접 주도해 만들었던 '비전 2030'이다. 25년 뒤인 2030년을 목표로 국가의 비전과 정책방향, 그리고 실천전략을 만드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작업이었다. 그 작업의 결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동반성장'과 '복지국가'를 위해 패러다임의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하나 둘씩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기준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당시 보고서가 발표되자마자 느닷없이 '세금폭탄' 논쟁으로 넘어가 버렸다. 보수와 진보의 진영논리 싸움, 이념논쟁에 더해 언론의 총공세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다. 결국 '비전2030'은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좌초됐다. 두 번째 좌절은 문재인 정부 경제부총리에 재직하면서였다. 아주대 총장 재직 중이어서 고사했다. 그러나 바로 그 '비전2030'을 실현해야 하지 않겠냐는 설득에 마음이 움직였다. 문재인의 대선 공약도 이에 기반해 만들어진 터였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 청와대와의 갈등은 결국 그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규제 일변도의 징벌적 정책, 이념과 지지자들을 우선시 하는 분위기 속에서 청와대의 벽은 높았고 그의 주장은 번번이 가로막혔다. 부총리를 그만두고 나서도 마음이 무거웠다고 한다. 그는 이를 '숙제를 마치지 못한 무거운 부담감'이라고 했는데 어찌 보면 씻겨지지 않는 회한이었을 것이다.두 번의 좌절을 딛고 성공할 것인가
"전에는 나라가 국민을 걱정했는데 이제는 국민이 나라를 걱정합니다." 부총리 퇴임 후 전국을 떠돌던 어느 날 여수 안포마을 전어잡이 배에서 들었던 말이다. 깜깜한 바다에서 그물을 끌어 올리면서도 계속 이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고 한다. 이런 민심이 바로 그에게 사명을 부여한, 계시가 아니었을까. 대한민국의 권력구조를 바꾸고자 정치에 들어왔지만 이미 버거운 싸움 한 가운데 서있다. 대통령 취임 3주 만에 벌어지는 지방선거. 그 중에서도 최대 격전지가 되어버린 경기도지사 선거. 상대는 자객공천으로 내려온 대통령의 최측근. 한 국가의 경제사령탑에 있다가 스스로 내려와 세상을 떠돈 지 3년. 공직자로서 정치에 시달리며 두 번의 좌절을 겪고도 이번에 그는 아예 그 정치를 바꾸려 길을 나섰다.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어찌 보면 김동연은 십여 년 전 이재명 같기도 하다. 이제 그 쓸쓸함과 남루함을 뒤로 한 김동연. 그는 과연 승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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