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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총선 결과로 대두하는 '적록연정' 가능성에 주목하자

[장석준 칼럼] 기후 재앙에 시달린 호주 시민의 각성이 만든 놀라운 결과

지난 21일(현지 시간) 오스트레일리아(이하 호주) 하원 선거가 실시됐다. 2013년 이후 계속 집권하던 중도우파 자유당이 총 151석 중 57석을 획득하는 데 그친 반면 중도좌파 노동당은 의석을 67석에서 72석으로 늘렸다. 한편 단 1석이던 녹색당은 의석은 3석이 됐고, 기후 위기 대응을 강조하며 자유당을 탈당한 무소속 후보들이 10명 가까이 당선됐다.

노동당 의석이 과반에 미달하지만 기존 집권당 자유당 의석은 그보다도 한참 적기 때문에 노동당이 주도하는 연립정부 말고는 대안이 없다. 실제로 전 총리 스콧 모리슨은 패배를 인정했으며, 노동당 총리 후보 앤서니 알바니즈가 녹색당, 무소속 의원들과 연립정부 구성 협상을 하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노동당이 주도하고 녹색당이 참여하는 적록연정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호주는 대한민국에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훨씬 가까운 나라인데도 이 나라의 이모저모가 한국 사회에 상세히 알려져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 호주 노동당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이 기회에 호주 노동당의 역사와 현황, 과제를 간략히 짚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 지난 17일(현지시각) 호주 시드니 와링가에 적극적 기후변화 대응을 내세운 '틸(청록색)' 무소속 후보 잘리 스테걸의 선거 포스터가 세워져 있다. ⓒAP=연합뉴스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보다 선배였던 호주 노동당

잘 알려져 있듯이, 호주는 대영제국 식민지였다. 그래서 노동운동이나 좌파정치의 역사도 본국 영국이 호주보다 더 앞서고 호주는 영국 사례를 배우거나 따라갔겠거니 넘겨짚기 쉽다. 그런데 현실은 오히려 반대였다. 호주 노동당이 영국 노동당보다 선배였고, 어떤 경우에는 유럽 대륙의 사회주의 정당들보다도 더 앞서 나아갔다.

1890년대에 호주 곳곳에서는 노동조합들이 급속히 발전했다. 이 무렵 호주에는 연방정부가 없고 주정부들만 있었다. 호주연방이 들어선 것은 1900년이었다. 각 주에서 등장한 노동운동은 일단 주 차원에서 노동자정당들을 건설했다. 그러다 연방이 결성되자 주 노동당들이 모여 1901년에 연방 노동당을 창당했다. 영국 노동당이 1900년에 창당했으니 이것만 놓고 보면 호주가 1년 늦다. 하지만 각 주의 노동당들로 거슬러 올라가면, 뉴사우스웨일스 주 노동당이 1891년에 결성됐으니 영국보다 10여 년 앞선 셈이다.

집권 시기를 따져 보면, 더욱 인상적이다. 전 세계에서 좌파-노동정당이 최초로 집권한 곳은 서유럽 어느 나라가 아니라 바로 호주다. 19세기가 끝나가던 1899년에 퀸즐랜드 주에서 보수파 정당들이 이전투구를 벌이는 바람에 비록 1주일간이었지만 노동당이 잠깐 정부를 맡았다.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1904년에 노동당이 총리를 배출하며 4개월간 소수파 정부를 유지했다. 그리고 1910년에는 드디어 연방 하원 선거에서 당당히 승리하며 다수파 정부를 구성했다.

특히 1910년 선거 승리와 집권은 제2인터내셔널에 속한 전 세계 좌파정당들에는 엄청난 뉴스였다. 유럽 대륙에서는 이로부터 10여 년이 더 지난 다음에야 좌파정당들이 집권하기 시작하며, 영국 노동당은 1923년에 처음 연립정부를 이끌게 된다. 호주 노동당은 10년 격차로 이들 모두보다 앞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과연 좌파정치의 첫 사례들이라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첫 번째'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좌파정치'였는지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영국 노동당처럼 호주 노동당도 노동조합들이 주도하여 만든 정당이다. 그래서 이름도 둘 다 '노동당'이다. 한데 노동조합들이 만들었기에 노동계급 성격은 강해도 사회주의 성격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당을 만들고 키우는 데 사회주의자들이 함께 했지만 그렇다고 사회주의 정당이라 하기는 힘들었다.

영국 노동당도 이런 성격이 강했지만, 호주 노동당은 더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악명 높은 백호주의다. 백호주의란 이주민이 호주 노동자, 농민의 삶을 위협하니 되도록 이민을 받지 말고 특히 비백인(아시아인)은 절대 받아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백호주의의 강력한 기반 가운데 하나가 노동조합들이었다. 호주 노동당은 정치 무대에서 백호주의를 대변했고, 이 입장은 서구 문화 전체가 격동하던 1960년대가 되어서야 흔들리기 시작한다.

호주 노동당은 이렇게 호주 노동자들의 자생적 세계관과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이었다. 거기에는 사회주의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심지어는 보수주의까지 뒤섞여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 혁명의 영향과 노동운동의 전반적 급진화 속에서 영국 노동당이 “생산 수단의 공동 소유"를 궁극 목표로 선언한 당헌 제4조를 채택한 것(1918년)과 비슷한 시기에 호주 노동당도 “생산 수단의 사회화"를 기본 정책에 포함시키기는 했다(1922년). 그러나 이 문구는 오랫동안 먼지 쌓인 문서 속에 죽은 문구로만 남았다.

호주 노동당이 사회주의적 정책을 실제 시도한 것은 한참 뒤인 제2차 세계대전 직후였다. 이 역시 영국 노동당의 궤적과 일정하게 겹친다. 전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실시된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영국 노동당은 클레멘트 애틀리 총리가 이끄는 정부를 통해 광산, 철도 등을 국유화하고 국영의료체계를 구축하며 복지국가의 기틀을 놓았다. 같은 시기에 호주에서는 벤 치플리가 이끄는 노동당 정부가 애틀리 정부와 비슷한 개혁을 추진하면서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은행을 국유화하려 했다.

그러나 호주의 전후 개혁은 영국보다도 더 단명했다. 은행 국유화에 대해 대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리자 치플리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결국 노동당은 1949년 총선에서 로버트 멘지스가 이끄는 자유당-국민당 연합에 정권을 내주었고, 이후 무려 23년이나 야당에 머물러야 했다. 이 기간 중에 멘지스 정부는 나름대로 임금을 올리고 복지를 늘리는 실용주의 정책을 펼쳤지만, 대외적으로는 반공주의를 표방하며 호주를 인도양-태평양에서 미국을 거드는 나라쯤으로 만들어 버렸다.

1975년의 궁정 쿠데타에서 '노동당 좌파' 집권까지

호주 노동당은 1972년에야 총선에서 승리하며 권좌에 돌아왔다. 에드워드 고프 휘틀럼 총리가 이끈 노동당 정부는 오랫동안 지연된 사회 개혁에 착수했다. 현재 호주 복지국가의 핵심을 이루는 제도들이 이때 완성되었다. 대학 등록금이 폐지됐고, 전 국민 건강보험이 도입됐다. 공공부문에서부터 남녀 임금 격차를 허무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을 실시했고, 선주민과 소수자 인권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휘틀럼이 무슨 대단히 급진적인 사회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이 무렵 '사회주의 좌파'와 '노동당 우파', 두 분파로 양분되고 있던 당 내 흐름들 중에 전자를 억압하고 후자를 편들며 당을 장악한 인물이었다. 그래도 이후에 '제3의 길'을 들고 나올 후배 정치인들에 비하면, 분명히 진지하고 신념 있는 사회민주주의자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기득권을 누리던 우파는 이 정도 개혁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회 개혁도 문제였지만, 특히 화를 돋운 것은 휘틀럼 총리의 대담한 외교 정책이었다. 그는 호주를 반공주의의 덫에서 끄집어내어, 당시 막 급변하던 아시아와 통하게 만들려 했다. 집권하기 전인 1971년(닉슨이 방중하기 1년 전)에 노동당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고, 집권한 뒤에는 상징적인 수준에서나마 베트남에 파병됐던 호주 군대(실은 자문단)를 철수시켰다.

우파는 사사건건 방해했고 휘틀럼 정부는 이에 정면으로 맞섰다. 1974년에 상원 내 다수당이던 야당이 정부 예산안 통과를 가로막자 조기 총선을 실시해 이를 돌파했고, 헌법에 규정되어 있지만 한 번도 실행된 적 없던 상하 양원 합동 회의를 소집해 사회 개혁 법안들을 일괄 처리했다.

그러자 반대 진영은 마지막 카드를 뽑았다. 마치 비슷한 시기 칠레처럼, 그것은 쿠데타였다. 단, 유서 깊은 의회민주주의 국가에 걸맞게 '궁정' 쿠데타였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호주는 영국 왕이 국가원수인 입헌군주국이다. 여왕은 지구 반대쪽에 머물고 계시니 군주의 권한을 위임받아 실제 행사하는 것은 총독의 몫이다. 한데 총독은 사실상 호주 정부가 지명하고 여왕은 형식적 인준만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총리가 임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 총독에게 총리를 해임할 헌법상 권한이 있다!

당시 총독은 한때 노동당 당원이었다가 우파로 전향한 존 커라는 인물이었다. 1975년 11월 11일, 커 총독은 야당인 자유당 대표 맬컴 프레이저를 먼저 만난 뒤에 휘틀럼 총리를 불러 돌연 해임을 통보했다. 헌법 안에 남아 있기는 하지만 다들 사문화됐다 여기던 권한을 마치 강도가 권총 내밀듯 행사한 것이다. 조기 총선이 1년만에 다시 실시되었고, 마침 제1차 오일 쇼크, 즉 전 세계적 불황이 덮친 상황에서 노동당은 대패했다.

호주인들이 지금도 '1975년 헌정 위기'라 기억하는 이 사건에 관해서는 지금도 말들이 많다. 휘틀럼 자신은 죽을 때까지 막후에 미국 정보기관의 공작이 있었다고 확신했다. 1970년대라면 굳이 칠레 쿠데타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이탈리아나 일본 같은 '민주주의' 국가들에서조차 급진 좌파의 성장이나 집권을 막으려는 정부 기관 내 쿠데타 모의가 빈발하던 시절이었으니 아주 근거 없는 억측만은 아니다.

아무튼 휘틀럼 정부의 이런 어처구니없는 몰락 이후에 호주에서는 오랫동안 그만큼 진지하게 사회 개혁을 밀어붙이는 정부가 등장하지 않았다. 노동당이 집권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노동당은 1980년대에는 노동조합 지도자 밥 호크를 통해, 1990년대에는 토니 블레어의 대선배 격인 폴 키팅을 통해 장기 집권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케빈 러드와 첫 여성 총리 줄리아 길라드를 통해 집권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호주 노동당은 영국 노동당과 마찬가지로 '제3의 길' 노선을 걸었다. 즉, 자유당에 비해 좀 더 합리적이고 점잖은 신자유주의 집행관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과 대비하여 바라보면, 호주 노동당의 이번 총선 승리가 좀 달리 보인다. 총리가 될 노동당 대표 알바니즈는 노동당 내 좌파인 '사회주의 좌파'의 후신 '노동당 좌파' 소속이다. 평면적으로만 보면, 1980년대 이후 역대 노동당 소속 총리들뿐만 아니라 휘틀럼보다도 더 왼쪽이라 할 수 있다. 영국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과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전성기이던 지난 30여 년 동안이라면 결코 주류 좌파정당의 대표가 될 수 없었을 인물이다.

한데 그런 이가 2013년 대표 선거에서 당 내 우파인 빌 쇼튼과 대등한 대결을 펼쳤고, 2019년에는 단독 후보로 대표직을 거머쥐었다. 그럴 수 있었던 사정은 코빈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 노동당처럼 호주 노동당도 과거에 하원의원들끼리 호선하던 대표직을 2013년 경선부터 전 당원 투표로 선출하기 시작했다. 이런 당 내 민주주의 확대와 더불어 풀뿌리 당원들(다수는 노동조합원들) 사이에서 신자유주의 시대를 끝내자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이 두 요소가 만나 이전과는 색깔이 다른 당 대표를 탄생시켰다.

물론 '노동당 좌파' 소속이라 하더라도 알바니즈가 과연 코빈이나 장-뤽 멜랑숑만큼 급진적인지는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호주 노동당이 창당 시기부터 지금까지 쭉 워낙 오른쪽으로 쏠렸고 실용주의 기조가 강하기 때문이다. '노동당 우파'는 사실상 좌파와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앵글로색슨 리버럴이고(미국 민주당 주류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렇게 따지면 '노동당 좌파'는 정통 사회민주주의 정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 노선 변화만으로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기후 위기, 불평등 문제를 국가 개입을 강조하는 정책으로 해결하려는 새 호주 정부의 지향은 인근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에  중요한 참고사례가 될 수 있다. 또한 중국과 대결하던 기존 호주 정부 입장에 완급조절만 가해도 숨 막히는 동아시아-태평양의 미-중 전선에 바람구멍 하나쯤은 낼 수 있을지 모른다.

게다가 한 가지가 더 있다. 알바니즈 대표는 강경한 공화주의자다. 1975년 헌정 위기 이후 이 나라에서는 노동당을 중심으로 입헌군주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전환하자는 흐름이 성장해왔다. 당연한 결과다. 그런 일을 겪고 어찌 저 말도 안 되는 총독 제도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우경했던 키팅 총리조차 공화국으로 가자는 데는 진심이었다. 다만 우파의 끈덕진 반대로 지난 수십 년을 허송세월했을 뿐이다. 부디 알바니즈 정부 아래에서 이번에는 반드시 호주연방공화국으로 나아가길!

▲ 2019년 호주에서는 대규모 산불이 났고 기후 변화 때문에 진화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플리커

우리 가까운 곳의 적록연정에 주목하자

그러나 노동당 이야기로만 끝내서는 이번 호주 총선 결과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또 다른 주역이 있다. 바로 녹색당이다. 1992년에 창당한 녹색당은 21세기에 들어서는 1순위 선호 투표에서 10% 안팎의 지지를 받으며 주요 정치 세력으로 부상했다. '1순위 선호 투표'가 무엇인지 설명하자면, 소선거구제에 결선투표 효과를 더한 호주의 독특한 하원의원 선출 방식인 '선호투표제'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지면 사정상 이미 결말에 다다른 이 칼럼에서 상세히 논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니다. 다만 여기에서는, 소선거구제와 큰 차이는 없는 이 제도 탓에 그간 녹색당이 지지율에 부합하는 현실정치 지분을 확보하기 힘들었다는 점만 확인하자.

그럼에도 이번 선거에서 녹색당은 지역구에서 3명의 당선자를 냈다. 고작 3석이라고 얕잡아 봐선 안 된다. 노동당이 내각을 구성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추가 의석이다. 또한 지난 몇 년간 산불 등 엄청난 기후 재앙에 시달린 호주 시민들의 대오각성이 만들어낸 놀라운 결과다.

더구나 현재 녹색당 대표는 녹색당 안에서도 급진좌파 성향인 애덤 벤트다. 그가 속한 녹색당 좌파는 노동당 좌파보다 더 강력하게 공공소유, 공동자산, 지역사회 참여를 중심으로 기후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입장의 녹색당이 참가하고 노동당이 이끄는 호주 적록연정이 앞으로 기후 위기, 감염병 위기, 경제 위기의 중첩에 맞서 펼칠 정책이 무엇일지 벌써부터 관심이 간다. 지금 지구 위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다만 한 가지라도, 격려와 영감을 줄 선례가 간절히 필요한 처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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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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