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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개혁 필요한 이유는 재정 아닌 '노인빈곤 해결'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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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개혁 필요한 이유는 재정 아닌 '노인빈곤 해결'이어야 [복지국가SOCIETY] ​공적연금개혁, 협치를 통해 국민노후안전망 확실히 구축해야  
이번 정부에서는 제대로 된 공적연금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 물음은 윤석열 정부가 태생적, 정치 구도적 한계를 극복하고 문재인 정부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공적연금개혁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냐는 문제와 공적연금개혁을 서둘러 마무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개혁이라는 두 가지 문제의식을 포함하고 있다. 결론부터 얘기한다면, 우리 국민 노후의 삶이 극히 고통스럽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정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관점과 방향을 바꾸어 공적연금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이 엄중한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진정성 있는 협치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공적연금개혁의 한국형 성공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공적연금개혁은 어쩌면 윤석열 정부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하고도 우선적인 민생개혁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러기에 국민들은 ‘협치’를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이 개혁과제를 어떻게 다루고 접근할지 눈여겨 볼 것이다. 모든 국민들이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바란다. 심지어 윤석열 정부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윤석열 정부 실패의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부담과 고통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먼저 왜 공적연금개혁이 윤석열 정부의 우선적 개혁과제가 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 다음으로 공적연금개혁이 협치를 통한 개혁의 모델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며,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공적연금개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필자의 생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공적연금개혁이 중요한 이유는 '재정불안'이 아닌 '노후빈곤'

22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언론들은 일제히 공적연금개혁의 시급함을 지적하고 있다. 대부분의 논조가 공적연금의 재정불안과 기금고갈 위험에 대한 조속한 대책요구로 향한다. 노후빈곤이나 노후소득보장 강화 요구는 극히 일부이다. 과연 무엇이 더 시급한가? 재정문제인가 노후빈곤 해결인가? 사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독일에서 공적연금제도가 처음 도입된 지 100년이나 지난 후에 도입되었다. 하지만 단 한 순간도 시급히 개혁되어야 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서구 산업 국가들은 대부분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초반에 공적연금제도를 도입했다. 그 후 50년~60년을 지나는 동안 이들 나라는 복지국가 성장기, 성숙기를 거쳐 2차 대전 이후 1970년대 중순까지 복지국가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당시 대부분 국가에서 가입자가 퇴직 전 받던 월급대비 연금액의 비율인 '소득대체율'은 70%를 웃돌았고, 그리스 같은 나라는 90%에 달하였다. 반면, 보험료율은 그때까지도 10%~13%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던 중, 1970년대 중반 이후 석유파동과 함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자 재정악화 우려로 인해 복지국가 위기론이 대두되었고 삭감개혁이 시작되었다. 복지국가의 조정기에 접어든 것이다. 이들 나라는 복지국가 제도의 도입, 성장, 성숙, 황금기에 이르는 과정을 충실히 겪었기에 어려운 조정기를 맞았음에도 국민들의 노후 삶은 매우 안정되고 행복할 수 있었다. 국민들의 노후의 삶이 보장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가 다음 과제로 복지국가의 장기적 재정안정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삭감개혁을 통해 제도의 장기적 유지가능성을 높이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연금제도가 성장기에 접어들기 전, 제도 미성숙 국가에서는 다른 접근을 해야 한다. 이미 제도 황금기를 지난 나라들의 삭감개혁을 무분별하게 차용하여 결행한다면 그 나라의 공적연금제도는 빈곤예방과 노후소득보장이라는 공적연금제도 도입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과연 어떠했던가?

공적연금제도 미성숙기의 제도 설계와 재정운영은 성숙기의 그것과 달리해야

앞서 언급했지만, 우리나라는 서구 복지국가들보다 100년이나 늦은 1988년에 국민연금제도를 도입했다. 도입한 해를 제외하고는 삭감개혁 요구에 시달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정치인, 관료, 언론인들은 물론 공적연금학자들까지도 "서구의 삭감개혁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며 강력하고 선제적인 삭감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정부는 얼마간의 형식적 절차를 거쳐 신속하게 삭감개혁 실행을 반복했다. ​사실 우리 국민연금제도는 1988년에 도입되었지만 전 국민을 포괄한 제도가 된 것은 1999년부터다. 그러니 이제 20년이 갓 넘은 청소년 연금제도다. 따라서 미성숙한 공적연금제도 가입자들에게는 그만큼 배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다. 가입할 수 있는 절대 기간이 짧기 때문에 낸 보험료 총액보다 받는 연금 총액의 비율인 수익비를 2배 이상으로 해준다. 저소득자들에게는 수익비를 더 높여 준다. 세대간, 세대내 연대적 재분배, 국가의 재정지원, 기금운용 수익 전입 등을 통해 이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공적연금으로 국민의 적절한 수준의 노후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공적연금제도의 최우선적 목적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과도한 수익비는 제도가 성숙해 감에 따라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연금지급개시연령 조정과 국가 재정책임 강화 등의 방법으로 조정된다. 이를 통해 점진적으로 수지 균형을 이루게 된다. 공적연금제도의 운영 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적절한 수준의 연금급여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요체는 제도 미성숙기와 성숙기의 제도와 재정운영 방식은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무시한 삭감요구는 그간의 공적연금 개혁 시 개혁목표와 우선순위 설정에서 공적연금의 발달단계 요소를 간과하거나 무시해 온 것은 아닌가? 우리나라는 외형상 공적연금제도가 잘 구축되어 있다. 그럼에도 서구 복지국가들과 달리 왜 국민들이 극심한 노후빈곤에 시달려야 하는가?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공적연금개혁을 비판할 자격을 가지려면 공적연금개혁을 통해 국민들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를 분명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17년 이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노후빈곤율 1위와 노인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계속 보유하고 있다. 공적연금개혁의 시급성을 얘기하면서 이 부끄러운 국제적 사회지표를 지우겠다는 의지마저 피력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개혁 필요성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개혁논의를 중단한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는 관점이다. 개혁의 시급성을 얘기하기 전에 어떤 개혁을 할 것인가의 올바른 인식과 결단이 필요하다. 올바른 개혁의 목표를 세울 수만 있다면, 그래서 국민들을 노후빈곤의 수렁에서 건져내야한다는 소명이 분명하다면, 공적연금개혁만큼 시급한 민생개혁과제가 어디 있겠는가?

공적연금개혁, 정치권 협치와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지난 대통령 선거 시에는 공적연금개혁에 관한 구체적 언급을 한 후보가 없다. 하지만 각 후보들의 관훈토론 내용과 마지막 유세 시 후보들의 언급 등을 보면 공적연금개혁의 틀과 개혁 논의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윤석열 당시 후보를 포함하여 어느 누구도 확실한 개혁안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은 새 정부가 여야 협치를 통한 개혁안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바람직한 개혁안 마련을 위해 진영 논리를 떠나 여야가 협력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어떤 하나의 유력한 개혁안을 고집하기 보다는 서로 수많은 이슈들을 공유하고 논의하고 대안을 찾아나갈 필요에 대해 정치권이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 공적연금 개혁의 이슈들이 많고 복잡해 개혁의 방향 설정과 개혁안 합의가 어렵다는 점을 후보들이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대통령 후보 토론회 등에서 당시 후보들이 언급한 공적연금개혁 관련 내용들에서 몇 가지 공통점들을 찾을 수 있다. 첫째,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반드시 공적연금을 개혁하자는 데에 모든 후보들이 합의했다. 둘째, 국민연금만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립학교교직원연금, 군인연금을 모두 포함하는 개혁을 할 필요성에 모두 공감했다. 셋째, 재정문제와 함께 노후빈곤의 문제가 있다는 점도 대부분은 인식하고 있었다. 넷째, 연금개혁위원회 설치 및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통한 개혁을 약속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특히 대통령 당선 후 국회 시정연설과 국정과제 발표 등을 통해 "국회와 정부의 초당적 협력", "초당적 공적연금개혁위원회 구성", "임기 내 공적연금개혁 그랜드 플랜 제시" 등을 약속했다. 이는 협치를 통한 공적연금개혁논의를 기대하게 하며, 충분하고 폭넓은 논의를 통해 제대로 된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약속한 바를 진정성 있게 실천한다는 전제로, 공적연금 개혁 논의의 틀은 제대로 잡은 것으로 이해된다.

공적연금개혁에 대한 고언- 지금까지와 정 반대로 가야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수많은 정부들을 거치면서 많은 공적연금개혁을 추진해 왔다. 그 개혁들이 올바른 방향의 개혁들이었다면 그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출한 정책효과가 확연히 나타났어야 했다. 가장 먼저, 우리나라의 노후빈곤이 대폭 완화되었거나 노후소득보장 수준이 상당히 강화되었어야 했다. 공적연금제도 도입의 핵심 목적이 노후빈곤 예방과 적정 노후소득보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인빈곤율은 17년간 연속 OECD 1위이다. 노인빈곤은 노인자살의 중요 요인으로 작용하여 노인자살률도 OECD 1위의 비극이 지속되고 있다.​국민연금 수급자의 평균 연금액이 2022년에야 가까스로 55만 원에 도달했다. 국민연금제도가 노후빈곤 예방과 노후소득보장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정책 실패라고 해도 무방하다. 최소한 지금까지 국민연금 개혁의 방향이 잘못 되었다는 점만은 인정해야 한다. 노후빈곤과 노후소득보장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도외시하고 기금고갈을 늦춘다는 명분으로 천문학적 공적연금기금을 쌓아놓는 것이 정상인가? ​그렇다면 다른 한 편으로, 공적연금제도 간의 형평성은 확보되었는가? 공적연금개혁 논의가 일어날 때마다 귀족연금과 서민연금 논란이 계속되어 왔다. 사회적 연대의 핵심기제가 되어야 할 공적연금제도들 간의 형평성 논란이 도를 지나쳐 오히려 사회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제 동네에서 귀족연금을 받는 노인(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을 받는 수급자들)과 기초연금이 주된 소득원인 노인들이 서로 반목하고 사는 세상이 되었다. 민관 공적연금제도들 간에 제도를 차별적으로 도입하고, 설계하고, 운영한 결과이다. 과거 수많은 개혁 과정에서 왜 이런 문제를 시정하지 못해왔고 심지어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했는가? 지금까지의 개혁들이 임기응변적이었고, 뭔가 뒤에 숨기는 개혁이었고, 떳떳하지 않은 개혁이었음을 분명히 드러내주고 있는 증거이다. 이래도 과거의 개혁이 성공적이었다고 항변할 수 있는가? ​이제 마지막으로 기금고갈 방지와 재정안정화 측면에서는 성공했는지 살펴보자. 그렇게 많은 관료, 전문가, 학자들이 수많은 날들을 모여 회의하고 토론하여 기금고갈 방지와 재정안정화 논의를 계속해 왔다. 개혁이 성공했다는 증거로 기금고갈 시기가 몇 년 늦추어졌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그러나 개혁 성공을 대서특필한 언론사의 지면에서 한 달 후에는 “국민연금 기금 00년 후에 다시 바닥나, 재정 불안정 심각!”이라는 기사가 나온다. 기금고갈 시기의 존재가 공적연금 불안정의 기준이 된다면 기금고갈 예정시기가 없어질 날은 언제인가? 그 날은 그 기금이 고갈된 날이 될 것이다. 아니면 영원히 그 날이 오지 않거나. ​그렇다면 그렇게도 막으려 했던 공적연금의 기금고갈은 막아졌는가? 군인연금의 기금은 이미 1973년도에 사실상 고갈되어 그 해부터 일반예산의 지원을 받고 있다. 공무원연금기금도 국민의 혈세투입을 막아야 한다고 온 세상이 법석이었지만 2000년에 사실상 고갈되어 2001년부터 일반예산의 지원을 받고 있다. 만약 기금고갈이 재정파탄과 공적연금제도 파산을 의미한다면 위 두 공적연금제도는 당시에 붕괴되었어야 하고, 두 제도의 연금수급자들은 연금을 받지 못해 큰 사회혼란이 일어났어야 한다.​실제로 전 세계에는 공적연금제도에서 기금이 거의 없이 몇 주, 또는 몇 달치 급여수준의 급여준비금만으로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가 대부분이다. 올해로 국민연금기금 1000조 원 대기록을 달성한다고 한다. OECD 최고의 노인빈곤국가인 것을 부끄러워 할 줄 모르고, 노인빈곤을 예방할 목적의 국민연금제도가 기금 1000조 원을 쌓았다고 자랑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1위 공적연금기금의 탑은 과연 누구를 위해 무슨 목적으로 쌓은 탑인가? 우리나라의 공적연금개혁이 시급한 이유는 재정문제 때문이 아니라 극심한 노인빈곤과 자살을 막기 위해서다. 기금고갈 시점을 늦추려는 재정안정화에 방점을 찍은 지금까지의 개혁방향이 아닌 정 반대방향의 개혁으로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제대로 된 개혁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난한 과정이 될지라도 정당 간 협치의 노력과 진정성 있는 사회적 논의를 통해 한국적 공적연금개혁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바람직한 개혁논의를 위해서는 그간의 공적연금개혁 논의가 얼마나 임기응변적이고 허구적이었는지 냉정히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공적연금개혁 방향과 내용에 대한 구체적 대안 제시는 다음 글을 통해 하기로 한다.

* 이재섭은 영국 켄트대학교에서 사회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35년간 민·관 공적연금제도연구, 개혁, 실무 두루 경험했으며. 노후가 행복한 사회 만들기를 소명으로 하고 있다. 공무원연금연구소장을 엮임했으며, 현재는 (사)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공적연금수급자유니온 공동대표 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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