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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돌사진이 없다구요? 혹시…차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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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돌사진이 없다구요? 혹시…차녀세요?" [프레시안 books] 이진송 <차녀힙합>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드라마의 주연인 고등학생 성덕선이 생일이 며칠 차이 나지 않는 대학생 언니 성보라와 생일잔치를 같이 하고 싶지 않다며 부모에게 신신당부하는 장면이다. 생일을 앞두고 장녀 보라는 형편이 어려운 부모에게 생일선물로 새 안경을 사달라고 (부탁하지 않고) 당당하게 요구하지만 차녀 덕선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생일잔치를 따로 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다음 주 생일, 보라는 새 안경을 쓰고 나타났지만 덕선은 생일 케이크마저 물려 쓰는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생일상을 앞두고 덕선은 그간 계란후라이며 닭다리 배식이 언니와 남동생 위주로 이루어지는 등 일상 속에서 차녀로서 받았던 서러움을 토로하며 "나는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사람이냐"며 폭발해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이 장면은 언니는 첫째라서, 동생은 막내라서 부모와 친지들에게 특별한 대우를 받지만 태어난 순서로도(둘째), 성별로도(언니에 이은 또 딸) '새로울 것이 없어' 자라는 내내 '뒷전'인 차녀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어떤 종류의 가족 서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장남, 최근 이 '유교국'에서 맏딸로 사는 어려움을 풀어내며 인기를 얻은 K-장녀 서사와는 달리 어떤 종류의 가족 서사에서도 거의 말해지지 않는 차녀의 서사를 경험 중심으로 풀어낸 에세이 <차녀힙합>(문학동네·308쪽)에도 덕선의 대사가 인용돼 있을 만큼. <차녀힙합>의 저자는 2013년부터 꾸준히 발간된 연애와 결혼의 '정상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독립출판물 <계간 홀로>의 발행인 이진송씨다. 위로 1년7개월 먼저 태어난 언니가 있는 1988년생 차녀이자 막내로 살아오다 2002년과 2003년에 늦둥이 여동생과 남동생이 태어나며 중간에 '낀' 자식이 되었다는 저자는 책에서 가족 구성원 중 차녀로 살아온 경험을 솔직하게 풀어내며 공감을 이끌어 낸다. 가족 앨범의 처음을 장식하며 가족 이야기의 '시작'이 되는 언니의 백일 사진은 있는데 차녀인 나는 돌사진조차 없고, 언니는 늘 새 물건을 쓰는데 차녀는 늘 언니가 쓰던 것만 써 왔고, 부모는 언니에게 걸스카우트든 아람단이든 학습지든 세상 모든 것을 경험시켜 주는데 차녀는 자신의 희망과는 관계없이 그들이 먼저 경험하고 판단한 것을 기초로 해 경험조차 선별적으로 주어진다는 것, 부모님은 언니의 학부모 모임에만 나가고 언니가 좋아하는 음식만 기억한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걸, 알고보니 나뿐만 아니라 꽤 많은 차녀가 겪고 있었다는 것. 이 모든 게 "왜 닭다리를, 계란프라이를 언니와 동생만 주냐"는 덕선의 외침에 "왜 저래"라고 심드렁하게 말하는 보라처럼 사소하게만 느껴진다면 <응답하라 1988>에서 우리의 주인공인 덕선의 엄마가 왜 '덕선 엄마'가 아니라 "보라 엄마"라고 불리는지 떠올려보자. 우리 엄마가 항상 내가 아닌 언니의 엄마로 불린다는 것, 그리고 그게 너무 '당연'하다는 것은 아무도 차녀를 중심으로 우리 가족과 우리 부모를 생각하고 있지 않고 차녀가 이 가족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일깨워준다. 저자는 자라면서 차녀는 너는 "두번째"고 아들이 아니어서 "잉여"이며 "말석"이라는 메시지를 끊임 없이 수신한다고 봤다. 존재만으로 주목을 받고 자신의 몫이 당연히 주어지는 첫째와는 달리 차녀에게는 '주어지는' 것이 없다. 집안의 권력 관계를 잘 살펴 내 존재와 역할을 증명하고 인정 받으려 애쓰는 방식으로 관심을 '쟁취'해야 한다. "첫째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때문에 중압감을 느낀다면 차녀는 어둠 속에서 대사 한 줄이라도 더 얻어보려고 발버둥치는 무명배우 같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차녀의 독특한 성격적 특성이 형성되고 이를 '차녀성'이라고 일컫는다. 저자는 차녀성을 "중심에 서지 못하고, 항상 순서가 밀리고,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편애해주기를 바라지만 차마 대놓고 요구하지는 못하는, 욕구와 의사가 그다지 중요하게 취급된 적이 없기에 생긴 감각 같은 것. 누군가와 나누지 않아도 되는 온전한 애정을 향한 원초적 갈망과 우선순위에서 끝없이 밀리는 주변부의 경험"으로 정의한다. 저자는 차녀성이 "약자성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단어이자 개념이다. 차별과 억압까지는 아니더라도, 미묘하게 끊임없이 '밀려나며 생긴 감각을 아우른다"고 덧붙였다. 저자는 차녀성의 주요한 특성 중 하나로 중립을 지키려는 속성, 혹은 중재 능력을 꼽는다. 차녀로서의 힘듦을 토로하다가도 "장녀도 힘들죠", "엄마라고 그러고 싶었겠어요"라며 자기도 모르고 중립을 지키려 하고 '내가 힘들다고 말해도 되는 건가'라며 눈치를 살핀다. 반면 장남이나 장녀가 누구의 눈치도 살피지 않고 가족 내에서 '내가 제일 힘들다'고 말한다. 힘듦을 토로할 때도 첫째가 출생 지위로 인해 평생 누려 온 '중심성'이 발휘된다는 것이다. 차녀의 이러한 특성은 늘 가족 내 권력 흐름을 주시하며 내 자리를 찾으려고 노력한 경험에서 나온다. 저자는 "이것이 바로 차녀로 살아온 세월이 내 몸과 마음에 주입한 죽일 놈의 중립 기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저자는 '중재'라는 특성을 통해 차녀성을 차녀가 아닌 여성에게까지 확대를 시도한다. 저자는 "가족 구성원의 짬 처리반으로 살며 몸에 익힌 생존 기술은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주변을 두루 돌보고 항상 배려해야 한다는 한국 여성 훈육법과 만나 시너지를 낸다"며 "중재 자체는 뛰어난 능력"이지만 "높은 확률로 약자의 몫"이라고 지적한다. "중재란 줄을 잘 타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는 기술"인데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은 중재를 하지도 눈치를 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전통적으로 아버지와 자녀 사이 등 가족 내 중재 역할이 여성에게 맡겨져 왔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현실 세계가 여성을 2등 시민 취급하기에, 세상 모든 여성은 가정 내 출생 순서와 무관하게 '차녀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픽사베이

성감별 임신중단이 횡행하던 시절, 차녀는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다'

80년대 후반에 태생 저자에게 차녀는 '그냥 둘째아이'가 아니다. '살아남은 둘째 아이'다. 인구조절 정책으로 한 가정에서 2명 이상의 자녀를 두는 것을 권장하지 않은 시대에 남아선호가 강한 한국에선 '성감별'을 통한 임신중단이 횡행했다. 아이를 두 명 밖에 낳을 수 없는 상황에서 첫째가 아들이 아닐 경우 뱃속에 있는 둘째가 성감별을 통해 딸인 것으로 밝혀지면 임신한 어머니가 가족들로부터 임신중단을 (강하게) 권유(강요)받게 되는 식이다. 이런 상황을 이겨내고 겨우 태어나더라도 탄생의 순간부터 축복 받기는 커녕 할머니가 '또 딸' 출생 소식에 "밥상을 엎"는 대접을 받는다. '아들을 낳지 못한 죄인'이 된 어머니는 푹푹 찌는 한여름에 "출산 사흘만에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 빨래를 했다." 자라는 과정에서 칭찬 받을 일이 생기면 가족들로부터 '그 때 안 지우길 잘 했다'는 소리를 듣고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을 보이면 '고추 하나 달고 나오지'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를 지적하면 아마 대개 악의없이, 오히려 탄생을 축복하고 대견한 마음을 표현한 말이라고 하겠지만, 의도가 어떻든 차녀에게는 자신이 그 자체로는 태어나는 것조차 충분하지 않은 존재였다는 위태로운 존재 기반을 거듭 상기시키는 말일 터다.  저자가 태어난 1988년(용띠해)을 비롯해 1990년(말띠해), 1986년(호랑이띠해)은 호랑이, 용, 말띠 여자는 기가 세다는 근거 없는 믿음과 결부돼 여아 낙태가 더욱 거셌다. 86년의 여아 100명당 남아 출생아 수인 출생성비는 111.7명, 88년은 113.2명, 90년은 116.5명이다. '센 여자'인 게 문제면 호랑이와 용보다 왜 말띠해에 이 현상이 더 심했느냐고? '백말띠해에 태어난 여자는 팔자가 드세다'는 근거 없는 속설을 구실로 여아 출생이 더 기피됐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이 해의 출생성비는 1970년부터 최근 통계인 2020년까지 중 가장 높다. 2010년대 이후 완화됐지만 출생성비는 첫째보다 둘째, 특히 셋째에서 더 불균형해지는 경향이 있어, 1990년 첫째 출생성비는 108.5지만 둘째는 117.1, 셋째는 189.9까지 올라간다.  셋째의 경우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가 두 배 가까이 태어났다는 의미다.  서른이 되던 해 "여아 선별 임신중단이 기승을 부렸던 1988년에 태어나 여성혐오 범죄에서 살아남아 무사히 서른이 된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해주자"며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무작위로 88년생 여성의 신청을 받아 꾸렸던 '88 용띠 파티'를 연 이유를 "우리는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다'는 감각을 공유하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말과 감각에는 과장이 없는 셈이다. 저자는 여아라는 이유로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 그리고 여아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임신중단을 종용받은 어머니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90년대 언론이 성비 불균형 때문에 "남자 어린이에게 여자 짝꿍이 부족하다는 것을 큰 사회문제라도 되는 양" 다룬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저자는 책에서 "차녀가 더 힘들다는 식의 불행 배틀을 하려는 게 아니"며 "다만 둘째 자녀의 경험과 감정, 그 조금 특별하고 치열한 세계에 관한 이야기가 아직 부족하다"는 취지로 이 책을 기획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여겨졌던 '잉여'의 경험 때문에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내면에 서러운 여자아이가 울고 있는 친구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서." 가족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를 다루며 "그래서 나는 어쩌고 싶은 거지? 사과 받고 싶은가?"라며 무수한 혼란을 겪었다는 저자는 글을 마무리하며 가족 안에서 각자의 고통의 크기를 따지거나 서열을 매길 필요도, 같은 방식으로 용서하고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더 이상 어릴 때 겪었던 부당한 일이 나를 공격하지 않고,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고백했을 때 어느 정도 받아들여 졌으며, 마지막에는 웃으면서 툭툭 털어버리는 경험이 나를 구했다"며 "나의 결정을 지지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는 견뎌낼 수 있다. 그 누군가가 꼭 혈연이 아니어도 좋다. 딸로 자라온 우리에게는 또 다른 딸을 뜨뜻하게 안아줄 재능이 열매처럼 맺혀 있으니까"라고 썼다. 그리고 차녀로서, 또 여성으로서, 중심성을 갖지 못하고 늘 밀려나 있는 사람으로서 평생 갈구해 온 인정을 이제 그만 추구하고 "거절"하겠다고 했다. 저자는 "내가 아무리 고군분투해도 누군가에게는 아들 대신 뽑은 꽝이었다. 된장녀이자 꼴페미였다. 그리고 못생겨서 연애 못하는 루저고, 결혼 시장에서 패배한 노처녀거나 이기적인 요즘 것들일 수도 있겠지"라며 "나는 타인의 인정을 거절할 권리가 있고, 평가와 무관하게 존재할 자유가 있다. 둘째 딸로서, 연애하지 않는 여성으로서, 페미니스트로서, 비혼인으로서, 나는 아무 것도 증명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의 인정도 갈구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 그랬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결국 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든 우리는 다 자랐고, 여기서부터의 삶은 '내가' 결정하고 바꿀 수 있다고요. 나로는 충분하지 않을까봐 마음 졸였던 모든 딸들이 이제 자기 자신을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가길."

▲이진송 저 <차녀힙합> 표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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