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말과 사건 속에서 인권의 가치를 벼리기 위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들의 고민을 <프레시안>에 연재합니다. 우리의 말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여는 싹이 되고, 인권 감수성을 돋우는 생각의 밭이 되기를 바랍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면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다. 최저임금제도는 국가가 임금 수준의 최저한도를 정하여 사용자(기업주)가 이를 지킬 수 있도록 법적으로 강제하는 제도다. 근로계약 당사자들끼리 임금을 결정하도록 하면 고용이나 인사 등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용자의 힘이 너무 강해 터무니없이 임금을 낮게 정할 수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제도다. 한국은 헌법과 최저임금법으로 최저임금을 법적으로 강제하고 있으며, 국제노동기구 (ILO)는 1928년 최저임금 결정 제도 설정에 관한 협약(제26호)을 채택하였다. 오늘날 주요 국가들 대부분은 최저 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최저임금은 그야말로 최저 하한선이지 평균임금이 아니다. 그러나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최저임금이 최고 임금이 된 현실이다. 최저임금법을 위반하면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기업주가 최저임금을 주다 보니 최저임금이 최고 임금이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최저임금이 얼마로 결정되는가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노동자위원과 사용자위원 그리고 공익위원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이하 최임위)가 형식상으로만 균형을 맞췄지, 공익위원이 공익을 중심으로 입장을 취하지 못한다는 평가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6월 21일 최저임금위원회 5차 전원회의에서 공익위원들이 <노동부가 업종별 구분 적용과 생계비에 관한 기초 심의자료를 연구해 최저임금위원회에 보고>할 것을 공익위원의 권고안으로 제출했다. 이른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장한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들고나온 것이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이 과연 공익적이라고 누가 당당히 말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공익위원들이 사용자들의 주장과 같은 안을 들고나와 공익위원 제도에 대한 비판은 끊이지 않는다.최저임금 차등적용은 성별, 지역별 격차 더 키워
한국은 전국적으로 단일한 최저임금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입장대로 최저임금을 업종별이나 지역별로 차등 적용한다면 최저임금의 취지 중 하나인 소득 불평등 완화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기업 규모별 임금 격차, 비정규직과 정규직 등 고용 형태별 임금 격차, 성별 임금 격차가 심한데 이를 더 악화시킬 것이다. 통계청에 의하면 한국 저임금근로자의 비율은 2000년 24.6%에서 비슷한 수치를 보이다 올해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최임위 제4차 전원회의에서 찬성 11명, 반대 16명으로 부결됐지만, 불씨는 남아있다. 최근 2018년부터 10%대로 낮아져 2020년 16.0%로 감소하였다. 여성 노동자 비율은 더 높다. 2020년 기준 남성 노동자의 저임금근로자 비율은 10.5%인데 여성 근로자의 저임금근로자 비율은 24.7%다. 일반적으로 중위 임금의 2/3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는 경우를 저임금으로 본다. 저임금근로자의 비율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소득 불평등이 심하다는 뜻이다. 즉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빈곤한 근로빈곤층의 양산과도 연결된다.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은 차등적용 프레임
그런데 최저임금 차등적용이라는 프레임은 최저임금법 7조에 이미 존재했다. 7조 1항에는 최저임금 적용 제외 대상자로"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를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장애인보호작업장 등에서 최저임금을 주지 않고 있다. 적용 제외를 신청하면 직무평가를 해서 인정하는 절차를 갖는데 작년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을 통해 제출된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거의 98% 이상이 신청하면 그대로 허가해주고 있었다. 즉 직무능력 평가가 실질적 근거가 아니었다. 그래서 유엔 장애인 권리위원회도 장애인을 최저임금의 혜택으로부터 배제하는 최저임금 적용 제외 규정에 대해 우려와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대상이 된 장애인 노동자의 임금은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하는 장애인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2020년 기준 37만 원이며, 직업재활시설에서 일하는 장애인은 매년 9천여 명 수준이다. 2020년 한 달 평균 임금이 320만 원이며. 전체 임금 노동자 소득의 중간값을 뜻하는 중위소득은 242만 원과 비교하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알 수 있다. 한 달에 30만 원 미만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전체 중증장애인 노동자 중 30%에 달하면, 10만 원 이상~30만 원 미만의 임금을 받는 장애인은 41.5%이다. (2021년 국감자료). '아무도 뒤에 남겨두지 않는다'는 유엔의 중요한 인권 가치다. 누군가를 뒤에 남겨두고 다수가 잘 사는 길을 택하는 것은 인권의 보편성에 어긋날 뿐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배제할 여지, 예외를 허용하는 것이다. 인권의 보편성이란 예외 없이 누구나 인권을 누릴 자격이 있는 존엄한 존재라는 뜻이다. '장애인은 생산성이 높지 않으니까 장애인만 빼도 되지 않을까. 비장애인들이라도 임금을 잘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거짓말에 우리는 속고 있지 않은가. 배제의 이유는 언제든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일하는 서비스직은 일이 힘들지 않다고 우겨도 되고 00 지역은 산업이 적으니 최저임금을 줄 수 없다고 근거를 만들 수 있고, 이주노동자는 국민이 아니니까 최저임금을 안 줘도 된다는 식으로 근거는 언제든 만들 수 있다. 그렇게 지역별,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이라는 프레임은 만들면 된다. 실제 그동안 여러 의원이 이주노동자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가 최저임금법에 존치하는 한, 우리 사회에 수많은 예외를 만들 가능성을 준다. 그런 점에서 이미 최저임금법에는 차등적용 프레임이 이미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확정하는 시한이 얼마 안 남은 6월, 지금이라도 우리는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할 때이다.최저임금 결정 기준은 지급 능력이 아니라 안정적 삶의 영위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당장의 문제가 아니지만, 최저임금 인상은 여전히 쟁점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최저임금 인상은 성별 격차 등 임금 격차를 해소하는 데 효과를 미치고 있는 만큼 최저임금 인상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경영계는 최저임금을 동결하라는 입장을 내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계는 올해보다 18.9% 인상안을 냈다. 사용자 측은 자영업자 등이 지급 능력이 없으니 인상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댄다. 그러나 한국에서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이유는 대기업 등에서 정리해고와 명예퇴직 등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자구책으로 자영업에 뛰어든 탓이 크다. 오히려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 노동 인력체계의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또 임대료 상승도 큰 몫을 한다. 게다가 골목상권까지 대기업의 프랜차이즈가 넘쳐나고 대리점에 대한 불공정거래행위 등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렇듯 대기업 독식 구조의 책임이 있는 경총이 을들의 경쟁을 부추기는 '자영업자 지급 능력'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민주노총이 중소·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일자리안정자금 확충을 골자로 한 '영세자영업자 및 중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대안으로 제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저임금법 제4조에서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는 지급 능력은 없다. 노동자 생계비, 유사 노동자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을 명시하고 있다. 특히나 요즘처럼 물가 인상이 큰 상황에서 동결은 실질임금의 하락을 뜻한다. 특히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이 최고 임금인 현실을 고려하면 임금동결이 미칠 파장은 매우 크다. 지금은 최저임금법에 명시된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을 더 분명히 새겨야 할 때다. 노동자의 생활 안정이 경제의 밑바탕이지 기업의 이윤 확보가 아니다. 임금을 동결하겠다는 것은 경제 불안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던 구태의 방식이다. 임금동결로 쉽게 대기업의 이윤을 챙겨주려는 정부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이제라도 대기업 중심의 산업체계 전반을 개선하는 경제정책과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를 심화시키는 비정규직, 성차별적 채용과 승진 등 노동정책 개선을 위한 논의가 시작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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