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당원권 정지 6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으면서, 집권 여당 대표가 임기 중 당 윤리위 징계로 퇴진 위기에 놓인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이 대표는 그간 '가장 경징계인 경고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해온 만큼, 재심청구와 법적 쟁송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항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자유한국당 시절 김순례 최고위원이 당원권 정지 3개월 징계를 받고도 그 이후 다시 최고원직에 복귀한 선례를 들어, 이 대표 역시 '6개월 후 대표직에 복귀해 내년 6월까지 잔여 임기를 수행하겠다'고 할 가능성도 상당하다. 특히 전날 JTBC가 보도한 '성상납 제보 배후인물설'에 대해 이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평소와 달리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늘 냉정한 태도를 견지해온 그가 기자들 앞에서 울먹이며 "몇 달 동안 뭘 해온 건가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 "마음이 무겁고 허탈하다", "1년 동안의 설움이 북받쳐올랐다"는 감정적 언사를 내놓은 점이 눈길을 끌었다. 그간 재심·소송과는 별개로 이 대표가 최고위를 통한 징계 취소를 시도하거나 윤리위원들에 대한 임면권을 행사하는 등 당 대표 권한을 활용한 강경 대응에 나설 것인지에 대해서는 부정적 전망이 많았으나, JTBC 보도는 이 대표가 이같은 대응을 할 정치적 명분을 최소한 이 대표 본인에게는 제공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전환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와 윤리위 등이 향후 어떤 대응을 해나갈지와는 별개로,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징계 사태를 '대통령과 각을 세운 여당 대표에 대한 대통령 친위세력의 쿠데타'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이 대표를 윤리위에 제소한 것도 '가세연' 등 보수 시민단체였다. 실제로 이 대표 측 인사인 김용태 당 청년최고위원은 8일 오전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윤리위가 당원과 국민이 뽑은 당권에 대해 쿠데타를 일으켰다"며 "반란군은 토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당내 사법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실제의 법원과는 권위·위상·독립성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당 윤리위가, 사실관계에 대한 각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사건에 대해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는 것에 대해서도 애초부터 무리가 아니냐는 시각이 많았다. 당내 온건·중도 성향 인사들이 '일단 경찰 수사 결과라도 기다려 보고 그를 근거로 판단하자'는 주장을 해온 것도 그래서였다. 이양희 윤리위원장은 "윤리위는 수사기관이 아니다"라며 "수사기관의 결정에 따라 당원들이 마땅히 준수해야 할 윤리강령과 규칙을 판단한다면 국민의힘은 스스로 윤리위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전날 기자들에게 밝혔고 이전에도 수 차례 비슷한 언급을 해왔다. 하지만 유엔 인권보고관, 인권위 전문위원 등을 역임한 이 위원장을 비롯해 윤리위원들의 품성과 판단력을 신뢰한다 해도, 당 내부는 물론 사회 전체가 이번 사태를 '윤핵관(윤석열) 대 이준석'의 구도로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은 사실 판단 단계 이전에서부터 이들에게 선입견이나 압력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런 맥락 때문에, 이번 징계 사태가 이 대표의 정치생명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일반적 예상과는 반대로 오히려 이 대표의 정치적 체급을 키워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했다가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유승민 전 의원이 일약 대선주자로 발돋움한 사건을 연상하는 이들도 있다. 당내 정치지형에서 상대적으로 이 대표와 가까운 김근식 송파병 당협위원장(경남대 교수)도 전날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대표로서 신중치 못한 행동, 과도한 언론 노출, 젠더 갈라치기 등 이준석 대표의 노선과 행태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으나, 정작 이 대표에 대한 징계는 이같은 그의 문제적 행태에 대한 것도, '성 상납'이라는 범죄혐의에 대한 것도 아닌 '증거 인멸'에 대한 것이었고 그 전후 과정에도 미심쩍은 구석이 남아있었다. 징계 결정으로 인해 오히려 이 대표의 과오와 결점이 덮이는 효과가 생길 수 있다. 구체적으로, 김 위원장이 '젠더 갈라치기'라고 표현한 부분은 정확히 표현하자면 '성차별 옹호'가 맞다. 최근 오하이오주의 제이랜드 워커 사건 등 미국사회에서 엄존하는 흑인에 대한 차별의 존재를 부인하고 '차별은 개인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이 '흑백 갈라치기'가 아니라 '인종차별 옹호'인 것과 같다. 그러나 이는 이 대표의 징계 사유도 아니었을 뿐더러, 한국 정치에서는 큰 결점으로 작용하지도 않았고, 더구나 이번 윤리위 징계로 인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특성이 돼버렸다. 이제 대중은 '이준석'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성차별을 부인한 20대 남성 대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보다 '윤석열 대통령과 맞서다 현직 대표로서 윤리위 징계를 받은 순교자'를 더 앞서 떠올리게 됐다. 실제로 이 대표의 징계 결정이 내려진 지 3시간 만에,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 당사자로 지난 대선 경선 당시 유승민 캠프 대변인을 지냈던 김웅 전 의원이 페이스북에 이 대표의 사진과 함께 "남이가 진 앞에 출몰하면서 사력을 다하여 싸우니 향하는 곳마다 적이 마구 쓰러졌고 몸에 4,5개의 화살을 맞았으나 용색이 태연자약하였더라"라는 글을 올렸다. 이 대표를 간신의 역모 참소로 옥사한 조선 초기의 무신 남이에 빗대 영웅시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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