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광장을 찾은 서울퀴어문화축제엔 다양한 참여자들의 여러 이야기들이 공존한다. 2022년의 퀴어문화축제에서 <프레시안>이 만난 이야기들을 전한다. 서울 이태원의 레즈비언 바 '레스보스'에서 윤김명우 사장을 지난 14일 대면으로 만났고, 퀴어 프렌들리 비건 타투샵 '업스테어 스튜디오'의 우디 작가는 15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퀴어퍼레이드 현장에 찾아온 젠더퀴어 당사자 스케디 씨는 16일 현장에서 만났다.
우여곡절 끝에 16일 서울광장에서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진행됐다. 3년 만에 대면으로 만나게 된 퀴어문화축제다. 올해로 23회를 맞이한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올해 퀴어문화축제가 함께 할 수 있기까지도 차별적 행정이 있었다. 서울시는 성소수자에게 광장을 내어줘야 할지 '심의'했고, 63일 만에 "과도한 노출 금지"라는 조건을 달아 축제를 '허가'했다. "서울시는 왜 성소수자가 진행하는 축제에 대해서만 (광장 사용을) 신고제가 아닌 허가제로 운영하나"라는 비판이 있어왔지만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관련 기사 ☞ '자유'는 어디가고?…"서울광장 사용은 성소수자에게만 '허가제'인가" )
그렇게 어렵게 얻어낸 광장에, 많은 부스가 설치되고 더 많은 시민들이 줄을 이었다. 한 시민은 서울시가 내 건 '노출 금지' 조건을 비웃듯 긴 우비를 걸치고 '노출 x, 그래서 껴입음'이라는 문구를 새겨놓기도 했다.
성소수자, 장애인, HIV 감염인 … 차별받는 모든 이들을 위한 광장
16일 퀴어퍼레이드 현장에선 오전부터 부스마다 인파가 붐볐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등 퀴어 당사자 활동 단체들이 먼저 눈에 띄었다. 지난 5월까진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이름 아래 국회 앞에서 볼 수 있던 활동가들이 부스 주변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광장 바깥에선 '하나님의 이름으로 동성애를 규탄한다'는 보수종교단체들의 반대집회가 한창이었지만, 광장 안에는 '천주교 성소수자모임 안개마을', '로뎀나무그늘교회',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등 종교 관련 단체들도 퀴어문화축제의 곁을 지켰다. 광장 안쪽은 차별받는 모든 이들의 연대의 장이었다. 매일 아침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전장연은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며 무지개를 내건 사다리를 들고 현장을 찾았다. 무지개는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뜻하는 상징물이고 사다리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상징물이다. 이날 전장연 활동가들은 오후 4시부터 진행된 퍼레이드(행진)에도 참여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와 '이상한 연대의 행진단'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빌리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행성인) 활동가는 "HIV(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 감염인과 비감염인의 기대수명은 다를까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행성인 부스 앞에 섰다. "HIV 감염인에 대한 통념과 공포심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친절한 말투로 무장한 그는 부스를 찾는 한 명 한 명의 시민에게 말을 걸며 차분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했다.
"HIV 감염인과 비감염인의 기대수명이 다를까라는 질문의 답은 '아니다'입니다. 오히려 사회의 '차별과 혐오'가 HIV 감염인의 기대수명에 영향을 줘요. 사회적으로 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있다면 검사를 받으러 가는 것도 꺼려지고, 치료를 받는 것도 꺼려질 수 있어요. 그렇게 고립되다 보면 우울증이라거나 다른 질환도 증가할 수 있고요. 치료약에 대한 접근성, HIV 감염인들이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에 대한 접근성도 중요하죠. 결국 사회가 만들어내는 차별이 HIV 감염인 기대수명에 악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어요."
"직장에도, 학교에도... 퀴어는 당신 곁에 있습니다.'
노동 현장에서 퀴어들이 받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수습노무사모임 '노동자의 벗'의 노무사들은 월급쟁이 퀴어 직장인들의 고민을 듣기 위해 '월급쟁이 퀴어의 대나무숲'을 만들었다. 한 시민이 "남자친구 소개 필요 없어요. 저 여자 좋아해요"라는 문구를 대나무숲에 적어놓았다. '남자친구', '여자친구' 있냐는 성별이분법적 질문에 대꾸하고 싶은 속마음이다. 노동자의벗에서 활동하는 8명의 노무사는 더 체계적인 퀴어 노동자 노동상담을 위해 최근 '퀴어동네'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퀴어동네에서 활동하는 한 노무사는 앞으로의 행보를 붇는 <프레시안>의 질문에 "퀴어라고 직장에서 차별받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 게 최종 목표"라고 답했다.
대안학교 청소년 퀴어 동아리 '무아'와 '무운'은 부스 앞에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라는 문구를 적어 놓았다. 무아는 충청북도 제천에 위치한 제천간디학교의, 무운은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성미산학교의 퀴어 동아리다. 무운은 다양한 퀴어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홍보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퀴어의 삶이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책이다. 무아는 오는 11월에 개최 예정인 ‘청소년 퀴어문화축제’를 홍보했다. 모두 보이지 않는 존재인 청소년 퀴어들의 이야기를 사회에 드러내는 일이다.
"청소년 퀴어들은 사회에서 ‘비가시화’되고 존재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해요. 그래서 청소년 퀴어가 여기 있고, 이렇게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 부스를 준비하게 되었어요."(제천간디학교 퀴어 동아리 '무운' 풀 활동가)
반대 집회, 소나기도 뚫는 '퀴퍼' 행진 … 각국 대사들은 "함께 살자" 연대발언
서울광장 바깥, 보수 기독교단체들의 퀴어퍼레이드 반대 집회는 집요하고 거대했다. 크레인으로 앰프를 길게 매달아 서울광장 안에서도 "퀴어 축제 반대"라는 목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군복을 입고 태극기를 든 이들이 "동성애는 죄악", "차별금지법 반대"를 연호했다. 서울광장 사용을 허가한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퀴어퍼레이드는 혐오와 비를 뚫고 계속됐다. 오후 4시 30분이 넘어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한 시민들이 행진을 시작했다.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에 우산을 펼치고 걸어야 했다. 무지개 깃발 등 각자의 상징물을 들고 서울 도심 곳곳 행진이 시작됐다.
오늘이 첫 퀴어퍼레이드 참여라는 박진희(24) 씨도 행렬에 따라나섰다. "퀴어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 대항”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는 박 씨는 반대집회로 인한 소음 속에서도 이 축제가 "그 어떤 축제보다도 즐겁다"라고 강조했다. 현장을 찾기 전, 뉴스로 축제를 접할 때마다 그는 "반대집회 혐오세력에게 씩 웃어주고, 퀴어들과 함께 걸으면서 분노해보고 싶었다."
"퀴어퍼레이드는 정말 즐거운 형식으로 본인들을 나타내고 표현하는 행사잖아요. 퀴퍼를 갈 거야, 가서 같이 즐기고 올 거야, 라는 말에는 사회의 차별에 대항하는 의미를 가질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반퀴어를 말하는 이들에게 같이 걸으며 씩 웃어주고, 같이 분노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요."
이날 행진 직전, 퀴어퍼레이드를 지지하는 12곳의 주한 대사관 대사들도 연대 발언에 나섰다. 주한 뉴질랜드 대사 필립 터너는 그의 남편인 이케다 히로시와 함께 무대에 올라 "성적 지향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주한 미국 대사도 올해 처음으로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했다. 지난 10일 한국에 도착해 임기를 시작한 필립 골드버그 미국 대사는 "이제 막 한국에 도착했지만 이 행사에 참여하고 싶었다"라며 "그 어느 곳에서의 차별도 반대하고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를 추구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우리는 그 누구도 두고 갈 수 없다"라며 "인권을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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