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재미난 현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무언가를 건드리는 족족 그것은 커지고 있다. 권력으로부터 핍박당한 자가 권력을 쥐니, 그 권력으로부터 핍박당한 자가 생겨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론이란 건 변덕스럽고 고약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교하는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정부가 더 낫다는 응답률(57.8%)이 윤석열 정부가 더 낫다는 응답률(32.8%)을 압도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19~20일 전국 성인 유권자 10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2일 발표. 무선전화 방식,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런 여론조사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있어 사실 고약한 기획이라고 본다. 5년간 국정 운영을 한 직전 대통령과 이제 출범 두달 갓 지난 대통령에 대한 단순 선호도 조사는 공정성도 객관성도 담보되기 어렵다. 최소한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특정 정책을 두고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가 다룬 방식을 비교해야 맞다. 이런 흥미성 여론조사는 밴드 웨건 현상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언론은 이 조사를 주목했다. 이런 고약한 기획이 나오게 된 이유가 윤 대통령 탓이기도 해서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인사 실패에 대해 "전 정권에 이런 훌륭한 장관들 봤느냐"고 강변했고, 사적 채용 논란에 참모들은 "그럼 전 정권은 공채로 뽑았느냐"고 반문하며 스스로 프레임을 향해 걸어들어갔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국회 연설에서 경제가 어려운 이유를 문재인 정부 탓으로 돌렸지만, 많은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를 퍼트린 것도 아니라고 본다. 이런 정부여당의 태도가 여론조사업체를 자극했고, 그 결과 기획회의에서는 아마 이런 질문이 나왔을 것이다. '전 정권과 현 정권을 비교해 본다면?' 윤석열 정부의 태도를 보면 '문재인 때리기 원툴로 정권을 잡았다'는 비아냥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어 보인다. 정부·여당은 여전히 문재인 정부와 싸우고 있다. 일례로 정부는 처음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이슈로 키웠는데, 빠른 검찰 고발과 민감한 정보 자산 노출 우려, 증거 조사의 한계 등에 봉착하면서 이번엔 탈북 어민 북송 사건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여권이 총 공세에 나선 이 두 사건을 관통하는 '가설'은 첫째, 문재인 정부가 이 사건을 조작했고, 둘째, 피살 공무원과 탈북 어민의 인권을 짓밟았으며, 셋째, 대북 문제 성과를 위해 고의적으로 북한에 굴욕적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론은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는다. 한 조사에서 '문재인 정부 당시 발생한 북측의 우리 공무원 피격사건과 선원 16명 살해 혐의가 있던 북한 어민을 북으로 송환한 건에 대해 현 정부는 안보문란으로 규정하고 국정조사 등을 추진하고 있다. 안보문란이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공감한다'는 41.2%, '비공감'은 51.8%로 나타났다. (KSOI가 지난 15~16일 전국 유권자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해 18일 발표. 무선전화 방식,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문재인 정부를 때릴수록 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가는 이 현상은 과거의 '어떤 일'을 상기시킨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총장 윤석열'을 때릴수록 그의 존재감이 커지던 현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도전 선언 후 국회 기자실을 방문, <세계일보> 부스를 찾아 기자들에게 "그때 그 조사 아니었으면 내가 여기까지도 안 왔다"고 말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기사는 2020년 1월 31일자 '윤석열, 새보수·무당층 지지 업고 급부상'기사 속 여론조사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낙연(32.2%)에 이어 10.8%를 기록, 당시 보수 1위 주자였던 황교안(10.1%)을 처음으로 제쳤친 조사였다. '핍박당하는 자'는 정권 핵심 인사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수사하며 정권과 정권 지지자들의 거센 반격 속에서 '반 문재인 진영'의 기수로 거듭난다. 공무원의 영역에서 정치인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순간, 그는 <세계일보> 기사 방행일을 기점으로 했을 때 검찰총장 취임 6개월도 채 안됐을 그 시점부터 '정치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고백해버린다. 여론조사의 '밴드 웨건' 현상으로 부상한 그가 지금 역설적으로 '밴드 웨건' 현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때릴수록, 스스로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문재인 정부의 존재감이 커지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국민의힘에도 적용된다. 이준석 대표가 자신의 징계를 논의하는 당 윤리위 개최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비공개 만찬을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을 때, 대통령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단칼에 끊었다. 이 대표가 "여당과 대통령실 측은 여러 정책현안에 대해 상시적인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당대표 입장에서 대통령 일정을 공개할 수는 없다"고 한 것과 온도차가 컸다. '친윤계'로 분류되던 이 대표 자신의 비서실장이 갑작스레 사퇴했고, 윤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담 첫 순방 환송 자리에는 참석하지도 못했다. 이 대표의 당원권 정지 6개월이 확정된 후 윤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당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여론조사에서는 이준석 대표 중징계에 찬성하는 여론이 더 컸다. 이 배후에 '윤핵관'이 있다는 것은 이준석 대표의 일방적 주장일 수 있지만, 모든 정황이 '이준석 밀어내기'를 가리키고 있다는 걸 부인할 순 없다. 이 대표 중징계 배후에 윤 대통령과 윤핵관이 관련이 없다고 믿는 여의도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일반적인 예상을 빗나가는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중징계 후 '모멸감'으로 당권을 내려놓을 거라 생각한 이준석 대표는 다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친박 돌격대'의 공격을 받은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가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았을 때와 다르다. 이준석 대표는 권력의 속성을 잘 아는 '스핀 닥터'형 인물이다. 친박계의 권력 투쟁 속에서 권력의 비정함을 학습했고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영리하게도 탄핵 찬성 편에 섬으로써 정치 생명 연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30대의 나이로 야당 대표에 올라섰고, 그 방법론이야 옳든 그르든, 반 문재인 정서의 고약한 틈을 비집고 들어가 선거 기술자로서 면모를 과시하며 정권 교체에 기여했다. 그에게 '정치 철학'은 부족하지만 '정치 기술'은 충만하다. '통치'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제일 잘하는 게 '권력 투쟁'이니만큼, 그는 곧바로 숨을 고르며 '투쟁'에 돌입했다. 대표직을 내놓지 않고 전국을 돌며 지지자를 규합하고 있다. 8월 경으로 예상되는 경찰의 성상납 및 증거인멸 교사 의혹 수사 결과가 나오면 곧바로 반격 채비를 갖출 것이다. 국민의힘 윤리위 결정의 논리적 결점을 공략하며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할 것이다. 차기 당대표 선호도 1위를 기록한 출렁이는 여론의 틈새를 노릴 것이다. '윤핵관'이 그를 때릴 수록 그의 존재감이 커져가는 아이러니, 이건 윤석열 대통령이 이미 온 몸으로 겪은 바 있지 않은가. 윤석열 대통령의 별명 중에 흥미로운 게 있다. 2020년 2월 24일자 <한국일보> 칼럼 '윤석열 스타일은 바뀌지 않는다'의 내용 중 한토막을 인용하면, 그의 별명 중 하나는 "무죄 제조기"다. () 조국 사건, 국정농단 사건만 떠올리면 의아하지만, 검사로서 그는 무리한 기소와 무리한 수사 때문에 기소해 놓고도 판판이 무죄를 받아내던, 일상 업무에선 그다지 유능한 검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랬던 그가 정치를 결심하게 된 주요 계기는 '여론조사'였다. '권력과 맞짱 뜨는' 직진 스타일은 로마 검투장에 선 스파르타처럼 변덕스런 대중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었다. 이젠 그 스스로가 '만인지상'의 권력자가 됐고 지금 그를 핍박하는 사람은 없다. '윤석열의 시간'이 도래했음에도 반대 진영(문재인)을 공격하고 진영 내 반대 세력(이준석)을 때릴수록, 그들의 존재감은 커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런 방식으로 커왔던 터라, 더욱 아이러니하다 하겠다. 검사 시절에는 평상시 '무죄 제조기'라 하더라도 특정 사건 한두 건으로 뜰 수 있고, '사람에 충성 않는다'는 기개를 부려 호평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는 대통령은 단 한 건만 '무죄 제조'를 해도 정치적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더 이상 '조국 잡던 윤석열'은 없다. 정치 현실을 직시하고 이제부터라도 '국정'에 매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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