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주류인 친윤(親윤석열) 그룹이 당 지도체제를 비대위로 전환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당 대표 직무대행을 맡고 있던 권성동 원내대표가 더 이상 직무대행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지난주 배현진 최고위원에 이어 주말 동안 조수진·윤영석 최고위원이 추가로 사퇴 의사를 밝혔다. 비대위가 출범하게 되면, 징계로 직무정지 중인 이준석 대표의 당직 복귀는 사실상 무산된다. 권 원내대표는 31일 오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당이 엄중한 위기에 직면했다. 국민의 뜻을 충분히 받들지 못했다. 당 대표 직무대행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저 역시 직무대행으로서의 역할을 내려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권 원내대표는 특히 "조속한 비대위 체제로의 전환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그는 "여러 최고위원 분들의 사퇴 의사를 존중하며, 하루라도 빠른 당의 수습이 필요하다는데 저도 뜻을 같이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 2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윤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우리 당도 잘 하네요. 계속 이렇 게해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텔레그램 메시지가 사진기자들의 카메라에 찍히면서 위기에 몰렸다. 메시지 내용 자체는 권 원내대표에게 불리한 게 아니었지만, 윤 대통령이 이준석 대표를 못마땅해 한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 대표에 대한 당 윤리위 징계의 공정성·배경 등이 의심받는 상황이 된 데 대한 일종의 책임론이었다. 권 원내대표는 사건 직후 "저의 부주의로 대통령과의 사적인 대화 내용이 노출되며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은 전적으로 저의 잘못"이라며 "이유를 막론하고 당원 동지들과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으나 당 대표 직무대행에서 물러날 뜻은 없다고 했었고, 특히 지난 28일 울산 정조대왕함 진수식에 참석하면서 윤 대통령 전용기에 동승, 윤 대통령으로부터 "이틀인가, 며칠인가,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텔레그램 메시지 노출 사건은 해프닝일 뿐이고 △당 대표 직무대행 겸임에 노고가 많다는 위로와 함께 △앞으로도 당정이 단일대오로 잘 해나가야 한다는 취지의 격려와 당부를 받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사태가 일단락되는가 했다. 그러나 지난 29일 배현진 최고위원이, 일요일인 31일 조수진·윤영석 최고위원이 각각 최고위원직 사퇴 뜻을 밝히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배 최고위원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당선인 대변인을 맡아 신(新)친윤계 핵심으로 꼽히던 인물이다. 조 최고위원도 대선 당시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 문제를 놓고 최고위 석상에서 이 대표와 정면충돌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강한 친윤 성향으로 분류됐다. 특히 조 최고위원은 이준석 체제가 출범한 6.11 전당대회 당시 4인의 선출직 최고위원 가운데 최다 득표로 당선된 이른바 '수석 최고위원'으로,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둘 모두 자리를 비울 때 당 대표 직무를 대행하는 위치에 있다. 지난주 배 최고위원의 사퇴 선언과, 초선의원 63명의 비대위 전환 촉구 성명에도 버텼던 권 원내대표가 '직무대행 중단 및 비대위 전환'으로 달라진 입장을 공개 표명한 것은 조 최고위원의 사퇴 기자회견 직후였다. 조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국회 기자회견에서 "각성과 변화를 요구하는 민심의 엄중한 경고에 책임을 지기 위해 최고위원직을 물러난다"며 "당은 물론, 대통령실과 정부의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바닥을 치고 올라가려면 여권 3축의 동반 쇄신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른바 '윤핵관'이라 불리는 선배들도 총체적 복합 위기의 근본적 원인을 깊이 성찰해 달라. 정권교체를 해냈다는 긍지와 자부심은 간직하되, 실질적인 2선으로 모두 물러나 달라"고 했다. 조 최고위원은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제가 지난 29일도 여러 설득을 드렸는데. 어제 한 분이 분명한 입장을 밝혔고. 그래서 저도 미룰 수 없게 됐다"며 전날 사퇴 불가 입장을 밝힌 김용태 청년최고위원을 겨냥한 뒤 "당이 총체적 비상상황이라서 이견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마저 이견이 있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윤 최고위원은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올린 입장문에서 "국민의힘이 집권 여당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해 당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큰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국민 여러분께 머리숙여 깊은 사죄를 드리며, 이에 국민의힘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윤 최고위원은 이준석 대표가 임명한 지명직 최고위원이지만, 임명권자의 뜻과는 달리 이들 친윤계와 거취를 같이했다. 조·윤 최고위원의 사퇴로 현재 국민의힘 최고위는 총원 9명 중 4명(조수진·배현진·김재원·윤영석)은 궐위, 1명(이준석)은 직무정지 상태가 됐다. 국민의힘 당헌에 따르면, 최고위원회의는 △당 대표 △원내대표 △선출직 최고위원 4인 △청년최고위원 1인 △지명직 최고위원 1인 △정책위원회 의장 등 총 9인으로 구성된다. 다만 이날 권 원내대표가 비대위 전환을 공식화했고 최고위원 3인이 추가로 사퇴 의사를 밝혔음에도, 국민의힘 내에서는 현재 상황이 "당 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원회의의 기능이 상실되는 등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당헌 96조)라는 비대위 구성 요건이 충족된 상황인지에 대해 해석이 갈리고 있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연합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비대위 요건에 맞으면 당연히 (비대위로) 가야 한다. 그것을 막거나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최고위원이 4명 이상 사퇴하면 된다"는 해석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이 대표는 궐위가 아니라 직무정지라는 '사고' 상태이고, 이 대표와 가까운 정미경 최고위원, 김용태 청년최고위원은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고,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은 당연직 최고위 구성원이기에 이들이 모두 자리를 지킨다면 9인 중 5인으로 과반수가 유지돼 '최고위 기능이 상실됐다'고 보기 어려운 상태 아니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원내대표 선거 러닝메이트제가 아닌 당 대표 지명에 의해 임명된 첫 정책위의장(작년 4월 당헌개정)이다. 김용태 청년최고위원은 지난 30일 페이스북 글에서 "부당한 압력에 밀려 떠내려갈지언정, 제가 믿는 '원칙'이라는 가치를 스스로 저버리지는 않겠다"며 "민주주의에선 절차적 정당성이 가장 중요하고, 이것이 흔들리면 민주국가로서의 근본 체계가 무너진다. '초유의 상황', '해석의 여지', '비상상황'이라는 수사를 내세워 원칙을 저버리고 제멋대로 당을 운영한다면 결국 자기부정에 빠지는 꼴"이라고 비대위 전환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정 최고위원도 지난 29일 CBS 라디오에 나와 '최고위원들이 자진 사퇴하는 방식으로 지도부를 붕괴시킨 다음에 비대위나 조기 전대로 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게 꼼수"라며 "어떤 식으로든 수습해서 (권성동 직무대행 체제로) 가야지, 방법이 없다"고 했었다.
권성동, 직무대행은 거부하고 원내대표직만 유지?
한편 권 원내대표가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지 않고 당 대표 직무대행만 그만두는 것이 가능한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상태이지만, 그게 가능하다 해도 어쨌든 그가 원내대표직만이라도 유지하는 한 최고위 구성원으로서의 성원은 채우게 된다. 현 국민의힘 당헌은 "당 대표가 사고 등으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원내대표, 최고위원 중 최고위원 선거 득표순으로 그 직무를 대행한다"고만 돼 있다. 원내대표가 직무 대행을 거부할 수 있는지,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해서는 명시적 규정이 없다. 현재 당 내 여론은 권 원내대표가 원내대표직은 유지해야 한다는 쪽에 가깝다. 초선의원 성명을 주도한 박수영 의원은 지난 29일 기자들과 만나 "하루가 멀게 리스크가 터지는데 (권 대행이) 두 가지 일(당대표 직무대행과 원내대표)을 같이 하니까 부담이 돼서 그런 것이니 분리하자는 것"이라며 "(권 대행이)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하라고 한 바는 없다. 원내대표는 원내대표(직무)를 하고, 당 대표 직무대행은 다른 사람이 하는 게 좋겠다는 내용"이라고 했다. 반면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이날 SNS에 쓴 글에서 "하도 답답하고, 걱정돼서 참다 참다 한 마디 한다"며 "권 대행은 본인의 사심과 무능만 드러냈을 뿐 야당과의 협상, 당이 나아갈 새로운 비전, 무엇 하나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리더십만 바닥을 드러냈다. 권 대행은 지금 당장 모든 직을 내려놓고 당을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라"고 주장했다. 김 지사는 "최고위원들도 책임에서 예외는 아니다. 무얼 주저하느냐"며 "국민의힘이 집권 여당으로서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다시 회복하려면 당이 지도부를 새롭게 구성하고 재창당의 각오로 환골탈태해야 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