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입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했습니다. 경찰에 수없이 연행됐습니다. '장애인 등을 위한 편의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경찰서에서, 저는 계단 앞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조사가 끝나면 지장을 찍어야 합니다. 지장을 찍는 그 장소가 2층, 3층이라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조사 시간이 30분이면 지장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1시간, 2시간이었습니다. 이 일이 20년 전 일입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경찰서는 변한 게 없습니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
2일 오후 2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를 비롯한 장애인 활동가들이 서울경찰청 정문 앞에 모였다. 박 대표 등 전장연 활동가들에 대한 서울경찰청의 남대문 경찰서 집중출석 요구를 규탄하기 위해서다. 기자회견 시작 이후 거세진 빗발 속에서 이들은 경찰 측이 지난 1998년 제정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 등 편의증진법)'을 지키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전장연 시위에 대한 엄벌 대응을 예고하고 남대문 경찰서 집중 출석을 요구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먼저 경찰청의 불법행위부터 돌아보시라" 지적했다. 앞서 지난 6월 20일 김 청장은 전장연 측의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투쟁을 "불법행위"라 지목하며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반드시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혜화, 용산, 종로, 남대문, 영등포, 수서 등 서울시내 6개 경찰서가 전장연에 출석을 요구했다. 전장연 측은 자진출석 의사를 밝히고 지난달 14일(혜화서), 19일(용산서), 25일(종로서) 각 경찰서를 방문했지만 "이들 경찰서는 장애인편의증진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근거하여 공공기관으로 장애인에게 제공해야 할 정당한 편의증진시설을 설치하고 있지 않다"며 출석을 거부했다. 출석요구를 받은 장애인들이 조사를 받고 소명을 하기 위해 경찰서에 출두하더라도, 엘리베이터 등 이동 편의시설의 부재로 장애인들은 경찰서에 진입조차 하지 못한다는 아이러니를 꼬집은 셈이다.'관할서 조정', '1층 조사실'이면 문제 해결? … 전장연 "눈 가리고 아웅"
이날 전장연 측은 전장연 조사를 위한 경찰 측의 대처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수준의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장애인 등 편의증진법은 '장애인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 및 정보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규정한다. 경찰서 등 공공시설에 대한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접근성 격차가 현격할 정도로 존재한다면, 해당 시설이 "정부가 비준하고 국회가 동의한 (장애인 등) 접근성 조항을 어기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실의 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시 관내 31개 경찰서 중 '장애인 등의 이동 편의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곳은 총 10곳으로 32.3%에 달한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도 전국 지구대 및 파출소에서 계단이나 바닥 턱 등에 의한 장애인 접근성 미비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현장에서 발언에 나선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는 이러한 현실을 두고 "1998년도에 제정된 편의증진법, 2007년도에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경찰은 지키고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경찰서라는 이 사회의 기본적인 시스템"에 대한 접근권이 침해되고 있는 현실에서, 장애인은 본인이 인권침해를 당했을 때, 혹은 고발 건 등에 휘말렸을 때 "제대로 된 보호조치도 받을 수 없고 제대로 된 소명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박김 대표는 "장애를 가진 사람. 이동이 안 되는 사람 접근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당연히 접근이 가능하도록 법을 지켜야 되는 것이 국가이고 경찰청"이라며 "결국 경찰청은 스스로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