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권했던 사회
주식이다 비트코인이다 자산을 불릴 '투자'가 유행처럼 번졌던 1년 전, 몇몇 청년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청년들이 요즘 투자를 많이 한다는데, 무슨 돈이 있다고 투자를 하냐는 질문에 '빚도 자산이라는데, 빚 내서라도 자산을 불려야 할 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글쎄… 30대는 상황이 다르겠지만, 20대는 소득도 적고, 신용거래 실적도 없는 상태에서 빚을 내서 투자한다는 게 가능할까? 그맘때쯤 각종 투자 어플리케이션이 등장하고, 통장에 있는 푼돈이라도 돈이 돈을 불리는 상품에 가입해야 한다고 광고했다. 펜데믹 영향으로 일자리는 줄고, 청년이 진입할 수 있는 일자리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그랬다. 노동소득에만 기대는 것은 불안하다, 돈이 돈을 벌어오는 투자라도 하면 불안을 조금은 줄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대권 도전에 나선 후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주식 초과이익에 대한 세금 부과나 가상화폐 운영에 대한 안정성 규제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전국이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들썩일 때, 조금이라도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빚을 내 집을 샀다. 2배, 3배 집 값이 뛰어 몇 개월 사이에도 몇 억의 자산을 쉽게 불리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자산증식의 욕망은 청년에게도 무섭게 불어났다. 이제 청년의 자산투자는 '영끌'과 '빚투'라는 공격적인 투자로 불렸다. 자산 투자의 광풍이 휘몰아 친 2021년이었다. 그러나 올해가 되면서 미국 연방은행은 금리인상을 공식화했고 한국은행 또한 빅스텝을 단행했다. 게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도화선이 되었다. 먼저 주식 시작이 출렁였다. 그리고 연이어 부동산 가격도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 자산 가치가 급락하면서 빚을 내 자산을 취득한 사람들에게 어려움이 닥쳤다.빚이 늘고 있다
그래서 가계부채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작년 말 한국은행 보고서, 올해 IMF 보고서에서는 우리나라 가계부채 문제가 부각되었다. 통상 GDP 중 가계부채의 비중이 60~80% 수준이면 위험신호로 보는데,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이미 GDP를 넘어선 104.2%로 무려 1859조 원 규모를 기록했다. 게다가 다중채무자의 비율이 높아 부채의 취약성도 높다. 금융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3곳 이상의 금융사에 빚을 지고 있는 다중채무자가 451만 명에 달하고, 채무금액은 598.8조 원으로 5년 전 대비 22.1%나 늘었다. 더 큰 문제는 청년층과 노년층의 다중채무 비중이 급증한다는 점, 또 이들이 신용카드사, 캐피탈을 포함한 여신전문금융권과 저축은행권 등에서의 채무금액 증가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득 수준이 낮고, 신용 또한 낮은 청년과 노년층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1금융권 보다는 금리가 높지만 대출이 가능한 2금융권으로 집중하고 있다. 빚을 빚으로 막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아찔한 상황이다.빚진 자의 도덕적 해이 논란
정부는 지난 7월,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 추진현황과 계획을 발표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한 금융 구호 대책과 새출발 기금 조성, 주거 관련 대출 상환부담 경감과 임차인의 주거비용 경감, 청년과 서민의 재기 지원을 위한 채무조정 강화, 서민과 저신용층의 금융지원과 민생범죄로부터 보호 등의 내용이 담겼다. 논란은 청년의 재기 지원을 위한 채무조정 강화에서 터졌다. '영끌', '빚투'로 빚진 청년들의 손실에 정부 재정을 투입한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었다. 언론에서는 연일 성실하게 빚을 갚고 있는 사람들의 박탈감을 다뤘다. 이번에도 청년에 대한 정부 지원에 도덕적 해이가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다. 정부는 해명자료를 냈다. 청년을 위한 대책은 빚의 원금을 탕감하는 내용은 없을뿐더러 신용회복위원회가 기존에 해 오던 채무조정 프로그램으로 신속성을 강화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신속채무조정 프로그램의 대상은 다중채무자이면서 90일 이상 이자를 연체하고 있는 하위 30%이하의 저소득 또는 저신용자로 대부업조차 이용하지 못한 채 빚으로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는 위기군이라는 설명이다. 이들을 위한 채무조정제도는 청년이 금융채무불이행자로 전락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여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돕는 취지로 오히려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정책이라는 점을 덧붙였다. 정부의 설명은 청년 저소득·저신용 다중채무자를 엄격하게 선별하여 금융부채의 이자를 감면하는 정책이라는 점, 해당 혜택을 받으려면 신청자는 다른 대출이나 신용카드 이용이 정지되는 등 불이익도 감수해야 하는 점, 고소득자도 신청이 가능하지만 소득과 자산보다 부채가 더 많아 채무가중도가 높은 경우에만 신청이 가능한 점 등을 들어 도덕적 해이로 제도 유인은 적다는 입장이다. 실제 장혜영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 특례를 지원 받은 청년들의 연체 사유 중 절반 이상이 생계비 증가와 실직에 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 등 투자 실패 등의 사유는 전체의 0.8%에 불과한 것으로 '영끌', '빚투' 청년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는 논란을 정면으로 비판했다.빚진 청년들의 서로 다른 현실
2020년 기준 주식투자자 중 20대와 30대의 비중이 40%으로 청년의 비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자산 또한 전년대비 늘었지만, 전월세 보증금의 비율이 높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영끌'과 '빚투'가 성행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일이 없어서 생활이 어려워져 대출을 받고, 전세가격은 높아져서 보증금 빚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실제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청년의 대출사유는 전세자금대출, 신용대출, 주택담보 대출 순이었다. 20대와 30대 사이에서도 차이가 낮다. 20대는 전월세 보증금 마련의 비중이 높았다면, 30대는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의 비중이 높았다. 다시 말해 청년의 빚을 '영끌'과 '빚투'로만 단순화할 수 없다. 그러나 청년의 빚진 사유가 주식투자나 부동산투자든, 전월세 보증금이나 생계비 대출이든 현재의 불안을 나타내는 것을 매한가지다. 노동소득으로는 노후를 상상할 수 없는 상태에서 금융자본주의의 이점을 활용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선택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또 소득과 자산을 부모로부터 대물림 받는 세습 구조에서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들의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다. 청년이라는 세대 안에 이미 안정적인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사람도 있고, 어떠한 사회적 지위도 얻지 못한 채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빚은 사람을 쪼그라들게 만든다. 신진욱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채무조정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 중 채무 변제를 마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아존중감, 우울감, 행복감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특히 우울감 개선은 두 집단 간의 차이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절벽 시대를 목전에 앞두고, 우리나라의 인적 자원 차원에서도 사회 발전의 잠재력 차원에서도 청년의 부채 문제는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비단 청년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빚 권했던 사회의 그림자에 대한 사회적 책무에 대한 논의가 일방적인 도덕적 해이로만 치부되는 나태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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