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를 불법파견으로 판정하고, 처우개선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지 5년이 지났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제빵기사, 카페기사들의 처우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임종린 노조지회장이 53일 단식으로 했고, 이어 노조 간부들의 단식을 더하면 밥 굶는 시간 160일입니다. 노동자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국민 빵집'을 위한 연재를 진행합니다. 편집자 주
2030 청년 20%는 아침으로 빵을 먹는다. 아침밥을 먹는 35%에 결코 뒤지지 않는 비율이다. 그만큼 우리 일상 속에서 빵을 찾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빵집을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마치 넷플릭스를 키면 수많은 드라마들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시내를 지나다보면 전국 어디에서나 빵집을 쉽게 찾을 수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흔하게 찾을 수 있는 빵집은 모두가 알고 있는 파리바게뜨이다. 전국에 빵집이 1만 8천 개인데, 이중 절반은 프랜차이즈 빵집이고, 그 중 절반 가까이가 파리바게뜨이다. 바로 그 파리바게뜨에서 매일 반복되고 있는 노동착취는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아주 가까이에 있는 친숙한 무언가를 소비하면서도, 그 이전에 노동의 모습을 우리는 만나지 못한다. 카메라 뒤에 노동을 카메라가 비추지 않고 있는 것처럼, 빵집에 늘 새로 진열되어 있는 빵들과는 다르게, 빵을 만드는 노동은 우리의 시선이 닿는 곳에 진열되어 있지 않다. 보이지 않지만 길고 긴 시간을 쉬지 않고 일한다. 만드는 것이 우리가 보는 방송이고, 우리가 먹는 빵이지만, 노동의 현실은 너무나도 닮아있다. 매일 동이 터올 무렵에 일을 시작해서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거나, 한 달에 쉬는 날이 3~4일도 안 되고는 한다. 이러한 장시간 노동 속에서, 빼곡히 둘러싸인 복잡한 고용구조는 노동권의 책임을 회피하기 쉽게 만든다.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불법파견 판정 이후에도 자회사 고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지만, 여전히 제빵기사들은 본사의 지시에 따라야 하고, 가맹점주들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 회사는 하나인데, 사장은 서너 명이다. 방송에서도 흔히 다단계 하청과 도급계약, 무늬만 프리랜서 계약이 만연해있다. 방송 제작 현장에서도, 빵집에서도, 흔한 장시간 노동의 굴레 속에서 제대로 쉬는 날도 없는 일터가 넘쳐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노동을 그나마 견디는 것은 젊은 노동자들이다. 그나마 젊다는 이유로 견디기에는 몸이 남아나지 않을 노동현장에서, 나의 미래를 진지하게 이 일터에서 그릴 수 있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청춘을 갈아 넣는 일터들을 벗어나 언젠가 독립된 나의 공간을 꾸리거나 보다 자유롭게 일하는 것이 꿈이 되고, 그러한 꿈을 향해 묵묵히 견딘다. 파리바게뜨가 2010년대부터 급격히 성장한 배경에는 노동시장에서 등 떠밀려서 창업을 고민하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선택한 자영업자들과 3천 개가 넘는 매장에서 균질한 품질관리를 요구받고 해내는 젊은 제빵기사들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배경으로 이제는 해외로 뻗어나가고 있다. 중국, 미국, 프랑스, 말레이시아 등에서 44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연내에 영국과 캐나다에도 매장을 개설한다고 한다. 넷플릭스를 비롯하여 해외로 뻗어가는 K-드라마의 이면에는 미국의 10분의 1 수준으로 고퀄리티 드라마를 제작하는 압도적인 가성비가, 그리고 그 가성비가 가능하게 하는 노동착취가 있었다. 수년에 걸쳐서 지속된 파리바게뜨의 노조탄압을 생각하면, 해외로 뻗어가는 K-베이커리가 K-노동착취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이 만연해있는 방송 제작현장을 보던 눈으로 바라보아도 파리바게뜨에서 일어난 노조탄압과 휴식권 박탈은 참담한 수준이다.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흩어져 있는 제빵기사들의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온갖 회유와 탄압이 가해지고, 단식하는 노동자를 조롱하며, 이미 다른 노동자들과 가맹점주들을 방패막이 삼아 제대로 된 노동현장을 만들자는 노동자들을 비난한다. 그나마 여러 방송사와 제작사들이 경쟁하는 방송현장과 달리 압도적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자신감인지 오만함인지 알 수가 없다. 5년 전, 만드는 사람이 행복한 드라마를 보고 싶다는 시민들의 바람과 외침이, 20시간 넘는 장시간 노동이 벌어지던 방송 제작현장에도 변화를 시작하게 만들었듯이, 만드는 사람이 행복한 빵을 먹고 싶다는 시민들의 바람을 파리바게뜨는 더 이상 묵살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바람을 묵살하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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