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엇을 해도 궁금해하지 말아줘.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 방해하지 말아줘. 산책, 산책, 산책, 산책, 계단… 키스! 하~ 부드러운 인권 연애~ 부드러운 인권 연애. 원해!"
장애여성공감(이하 공감) 발달장애여성 회원들이 만든 '내가 원하는 사랑과 연애'에 관한 노랫말이다. 한국사회에서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오랫동안 성폭력으로부터의 보호를 중심으로 이야기되어왔다. 장애여성들은 안전을 이유로 성적 실천을 통제당하는 삶이 결코 '안전하지 않음'을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말해왔지만, 정책은 보호주의와 예방으로 일관해왔다. 지난 8월 열린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심의에서 한국정부가 강조한 성과 역시 10년 이상 예산 증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여성장애인 교육지원사업(구 어울림센터 지원사업)과 출산지원금 100만 원 정도일 뿐이다. 이번 심의에서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특히 탈시설에 관해 심도 깊은 질의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섹슈얼리티의 시설화는 거주시설 내 강제불임 시술 등을 통해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침해할 뿐 아니라, 장애인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시설 안에서 통제해야 할 비정상적 요소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탈시설 후 지원주택을 거주시설과 같은 법인이 운영할 수 있게 되어 있어, 단순히 시설/탈시설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 더 넓은 의미에서 장애인들의 사생활과 성적 행동을 제한하게 되는 문제를 낳는다. 공감은 지난달 장애여성 2명과 비장애여성 5명이 함께 유럽연수를 다녀왔다. 성서비스 중심의 권리담론을 비판하며 2010년 '장애인 성서비스 유럽연수'를 다녀온 이후 두번째 방문이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 글에서 장애인의 성적 권리와 자기결정을 보장하는 제도 및 지원체계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 지원자와 당사자들의 이야기와 공감의 문제의식을 연결하고자 한다.잠자는 곰을 깨우지 마라?
덴마크의 프리치 켈리(Fritsch Kelly)는 '외로움과 그 반대편(Loneliness and its opposite)'이라는 논문을 통해 사회복지 현장의 장애인 섹슈얼리티에 대해 덴마크와 스웨덴의 관점과 방식을 비교한다. 스웨덴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장애인의 섹슈얼리티를 두고 '잠자는 곰을 깨우지 말라'고 일컫는다. '장애인들에게 자위나 피임 등을 가르쳐 성적 자극을 주어 문제를 일으킬 필요 없다'는 한국의 우려와 닮았다. 그러나 연수에서 만난 덴마크의 성 상담가 킴은 "장애인의 자위 경험이 성폭력 발생 시 그것이 폭력임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하며 '장애에 구애되지 않는 섹슈얼리티 가이드라인'을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성적 지원은 단지 특정 성적 행동을 물리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동료 시민이자 돌봄 제공자로서 장애인과 어떻게 관계 맺고 의사소통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특히 성적 지원에 대한 장애인의 동의가 충분한 정보에 기반한 구체적이고 자발적인 동의인지, 정확히 무엇에 대한 동의인지(자위도구의 사용여부나 그 범위, 시선과 몸의 거리, 상담자의 역할 및 개입의 수위, 지원을 중단하는 내용 등) 분명히 하는 것을 킴과 또다른 상담가 옌 모두 강조한다. 장애여성이 성적인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사회의 책임이다. 사회가 깨우기 싫은 '잠자는 곰'은 비장애‧이성애 중심주의, 자본주의적 성장체제, 인종주의 등 차별과 불평등을 만드는 지배질서와 규범일 것이다. 따라서 고민과 성찰을 주변인들의 역할로 가져올 때, 다만 좋은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사회변화를 위한 동료되기와 지지가 좀 더 쉽게 시작될지 모른다.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말하기
장애남성의 성적 행동을 어떻게 중단해야 할까,라는 질문은 장애돌봄 현장에서 자주 논의되곤 한다. 이 단순한 질문으로부터 수많은 질문을 끌어낼 수 있다. 왜 장애남성의 섹슈얼리티는 권장과 통제를 동시에 하려고 하는가? 왜 장애여성의 자위와 성적 즐거움의 문제는 다루지 않는가? 성적 지원과 화장실 지원 등과 같은 신변 지원에서 '사적'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발달 장애여성 당사자들은 왜 성교육 내용을 만들고 평가하는 역할에서 배제되는가? 등과 같이 정책에 필요한 담론을 만들고 당사자들의 여론을 듣는 작업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장애여성 활동가 진은선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장애여성의 섹스'"를 말하는 것의 중요성을 짚는다. 망한 섹스에 대한 경험을 더 많이 말하면서, 폭력과 즐거움 사이, 성취되거나 미끄러졌던 수많은 선택과 역동 속에서 장애여성들이 겪은 일들이 좀더 의미화되고 사회를 향해 말해질 필요가 있다. 그는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닌 상호의존적 돌봄이 가능한 동료 관계를 맺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정책이 해줄 수 없는 연대와 실천의 장에서 난잡한 돌봄(1980~90년대 에이즈 인권활동가들에 의해 쓰이기 시작한 용어로 현재 기준에서 실험적이고 확장적인 방법으로 실천하는 돌봄을 의미한다)을 고민하며 지금 당장이라도 도전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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