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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나라에서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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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나라에서의 죽음 [인권의 바람] 직장 내 젠더폭력으로 사망한 신당역 여성노동자를 추모하며
징역 9년. 동료를 스토킹하고 불법촬영하다 끝내 살해한 신당역 여성 살해 가해자 전주환에 대한 선고 결과다. 여성노동자의 살해를 접한 우리는 9년이 중형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이 판결로 고통에서 헤어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스토킹과 불법촬영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용기 내었던 피해자는 직접 판결을 들을 수 없었다. 대중교통 공공화장실이라는 공적인 공간에서 살해당했다. 그녀는 지난해 10월 불법촬영 혐의로 가해자를 고소했고, 올해 1월에는 스토킹 혐의로 2차 고소했다. 고인이 합의보다는 엄중처벌을 원했던 것은 성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함이었는지 모른다.

젠더감수성 없이 안일한 법원과 경찰의 책임

법원은 성폭력범죄자에게 관대했다. 1차 고소 때 경찰은 가해자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이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경찰은 한 달 동안 신변보호 조치를 취했다고 했지만 이후 '피해자가 원치 않아서' 보호조치의 기간을 연장하지 않았다. 2차 고소에서는 가해자가 혐의를 인정했다는 이유로 경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하지도 않았다. 연도별 스토킹 112신고 현황을 보면, 올해 1월에서 6월까지의 스토킹 신고자 1만3097명 가운데 73.7%인 9647명이 여성이다. 스토킹범죄는 성차별의 구조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통제하고자 하는 전형적인 젠더폭력 범죄이다. 젠더감수성 없는 수사기관은 가해자에게 관용을 베풀어 스토킹과 불법촬영이 살해에 이르게 했다. 경찰과 법원은 스토킹범죄가 강력범죄의 전조라는 것을 간과했다. 특히 스토킹처벌법의 반의사불벌 조항 때문에 가해자가 합의를 명목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하거나 협박하여 2차 스토킹이 일어난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최근까지 기소된 사건 237건 중 81건이 공소기각 되었고 최근까지도 이와 같은 사례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스토킹범죄는 가해자가 도주하기보다 신당역 사건과 같이 2차 스토킹을 하고 물리적 폭력, 살해와 같이 보복범죄로 이어지는 것이다. 스토킹범죄의 특성이라도 법원과 경찰이 알고 있었더라면 가해자의 가식적인 반성문에 넘어가지 않고 충분히 보복을 예상하여 피해자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

구조적 성차별을 모른 척하는 여가부의 책임

신당역 추모공간을 찾은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여성혐오 범죄로 "보지 않는다"며 "여성과 남성의 프레임으로 보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당역 사건이 알려진 후 진행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성 대상 범죄의 구조적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김현숙은 "다양한 이유가 있다"는 모호한 답변을 했다. 김현숙은 구조적 성차별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성평등추진기구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발언을 했다. '여성혐오'는 misogyny(미소지니)의 번역어로 구조적 성차별과 거기에서 비롯한 폭력, 대상화, 낙인 등을 뜻한다. 신당역 사건은 여성혐오가 전제된 사회에서 일어난 명백한 구조적 문제임에도 여가부는 모른 척했다. 여성의 폭력 피해를 예방하고 보호해야 하는 설립목적을 가지고 있는 여가부의 역할은 분명하다.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위해 현장점검을 실시할 수 있음에도 지금까지 여가부의 움직임은 없다.

이 사회가 공범이다

피해자의 일터가 안전할 수 없었던 이유는 더 있다. 성폭력방지법에 따라 공직유관단체에서 성폭력 범죄가 발생할 경우 여가부에 통보해야 함에도 서울교통공사는 최초로 불법촬영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사건 이후에는 서울교통공사 김상범 사장이 여성 당직을 축소하는 성차별적 대책을 가져왔다. 국회는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할 수 없는 스토킹처벌법을 만들었다. 시민사회의 비판이 있음에도 반의사불벌 조항을 포함한 스토킹처벌법을 통과시켰다. 스토킹처벌법과는 별도로 피해자 지원에 초점을 맞춘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이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아홉 달이 넘게 다뤄지지 않다가 이제야 논의되고 있다. 법원, 여가부, 국회와 기업이 여성혐오적 태도를 취하는데 윤석열 정부가 큰 영향을 미쳤다. 윤석열 대통령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혐오를 전략으로 당선됐다. 윤석열은 후보시절부터 성폭력을 처벌 강화로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젠더폭력이 구조적 문제라는 인식 없이 엄벌주의만으로 젠더폭력을 끊어낼 수는 없다.

한 명의 여성도 잃을 수 없다

"죽지 않을 수 있었는데 또 찬란한 인생 하나가 스러졌습니다. 국가는, 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나는 그저 운이 좋아서 당신 대신 살아있다." 신당역 추모공간에 어느 시민이 적은 포스트잇 메시지이다. 강남역에서 신당역으로 이어지는 여성 살해 사건은 사회적 트라우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이 죽임당하는 끔찍한 경험이 개인의 경험이 아닌 우리 사회의 경험임을 우리는 느끼고 있다.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는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다. 구조적 성차별을 인정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9월 22일 보신각에서 신당역 여성노동자 스토킹 살해에 분노하는 집회와 행진이 있었다. 다시는 한 명의 여성도 잃을 수 없다는 마음들이 모여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구호를 외쳤다. 그곳에 있던 모두는 여성과 소수자들이 어디서든 안전할 때까지 지치지 않고 나아갈 것을 다짐했다. 고인을 추모하며, 우리는 끝까지 싸워갈 것이다.

*이번에 선고된 징역 9년형은 불법촬영과 스토킹 혐의에 관한 것으로,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별도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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