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산부인과학회가 시험관 시술을 통한 '비혼 여성 출산'에 반대 입장을 다시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위원회는 30일 "(산부인과학회가) 윤리지침을 현행과 같이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대한산부인과학회가 인권위의 권고를 불수용한 것은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산부인과학회의 현행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은 오직 혼인을 한 상태에서만 체외수정 시술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인권위는 지난 5월 학회 측에 "개인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더욱 적극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윤리지침 개정을 권고했다. 이날 인권위 발표에 따르면 학회는 "제3자의 생식능력을 이용하여 보조생식술로 출산하는 것은 정자 기증자 및 출생아의 권리 보호를 포함하여 논의해야 하는 중대한 문제이므로,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관련 법률의 개정이 우선되어야 한다"며 인권위의 지난 권고를 불수용했다. 더불어 학회는 "독신자의 보조생식술을 허용하는 국가들은 동성 커플의 보조생식술도 허용하고 있어, 독신자뿐만 아니라 동성 커플의 보조생식술 허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도 윤리지침 유지의 근거로 들었다. 다만 비혼 출산을 허용하는 국가들의 경우 오히려 '성소수자 부부의 출산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학회 측의 논리엔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9월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서울시민의 비혼 출산에 대한 인식 현황 및 정책과제' 연구에 따르면 일본, 영국, 미국, 스웨덴, 호주, 덴마크, 프랑스, 독일 등 다수의 해외 국가들은 이미 비혼 여성에게 보조생식술을 통한 출산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덴마크는 2007년 개정된 보조생식법에서 '혼인 여부 및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18~40세의 모든 여성이 공공의료 영역에서 보조생식술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스웨덴의 경우 2015년 "성소수자 부부를 가족형태의 하나로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비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가 마련됐다. 프랑스 또한 지난해 생명윤리법 개정을 통해 인공수정 허용 대상을 동성 커플 및 비혼 여성까지 확대한 바 있다. 5월 인권위 권고 당시 참고인 진술에 참여한 여성가족부도 지난해 4월 확정한 '제4차 건강가족기본계획(2021~2025)'의 과제가 "가족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법·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라며 "비혼 출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인하고, 이를 뒷받침할 정책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관련 법·윤리·의학·문화적 쟁점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인권위는 지난 권고에 불수용 결정을 내린 학회 측 입장을 두고 "사회적 합의의 유무 등은 대한산부인과학회가 권한 없이 임의로 단정하여 판단할 사안은 아니다"라며 "대한산부인과학회가 비혼 여성의 출산에 대한 자기결정권 등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국내에선 지난 2020년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 받아 비혼 상태로 출산한 방송인 사유리 씨의 일화가 알려지며 체외수정 시험관 시술 등을 통해 비혼 여성의 출산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사유리 씨가 정자를 기증 받은 일본의 경우, 국내와 비슷하게 산부인과학회에서 시술 대상을 부부로 제한하고 있으나 개별 병원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있다. 해당 지침을 실제로 따르는 병원도 2021년 기준 일본 전역을 통틀어 12개소로 극소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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