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달러 환율이 24년 만에 처음으로 146엔을 넘어섰다. 일본은행이 밀어붙인 완화정책 영향으로 엔화 폭락세가 멈추지 않는 모양새다. 12일 오전 10시 30분 현재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46엔 선을 넘은 후 현재는 145.70엔을 웃도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46엔을 넘어선 것은 아시아 외환위기가 연쇄 발생한 후폭풍이 이어지던 1998년 8월 이후 처음이다. 일본 금융당국의 강력한 시장 개입이 단행됐음에도 엔화 가치 폭락세가 이어진 결과다. 앞서 전날 스즈키 순이치 일본 재무상은 "외환시장의 과도한 움직임이 발생하면 (환율이 급격하게 오르든 내리든) 어떤 움직임에도 조처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고려하면, 일본 정부는 환율이 146엔을 넘어서자 시장에 개입해 환율 하락세에 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달 22일(현지시간) 1998년 이후 24년 만에 처음으로 환율시장에 개입해 엔화 가치를 끌어올린 바 있다. 달러화를 대량 매각하고 엔화를 사들임에 따라 당시 환율은 장중 145.90엔 선까지 치솟았다 140.3엔 선까지 내려갔다. 이날 일본 정부가 엔화 가치 인상을 위해 사용한 달러화 규모는 3조 엔 정도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강경한 정책 결과 지난달 말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1조2380억 달러로 내려갔다. 전월 대비 540억 달러(4.2%) 급감한 결과다. 이 같은 감소 폭은 사상 최대다. (다만 일본은 여전히 세계 최대의 달러화 보유국 중 하나다.) 이처럼 대규모 시장개입을 했음에도 이날 엔화 가치 폭락세가 또 관측된 셈이다. 근본 원인은 일본 정부의 '나홀로 완화 정책'이다. 앞선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일인 지난달 22일 일본은행은 경기 활성화를 위해 단기 금리를 -0.1%로 유도하고 10년물 국채 금리는 0%로 유도하는 '초' 완화 통화 정책(제로금리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일본 정부도 환영하는 정책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당장 지난 1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완화 정책을 고수하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임기를 조기 종료하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조치를 끝낼 의향도 없다고 밝혔다. 미국이 주도하는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에 발맞춰 전세계가 기준금리 인상 대열에 들어섰으나, 장기간 침체에 시달린 일본만 나홀로 완화 정책을 고수한 것이다. 외환시장에서 공급량이 늘어난 엔화가치가 급락하는 건 필연적인 결과다. 일본으로서는 시장에 대량의 통화 유통→엔화 가치 하락→기업 수출실적 상승→임금 인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바란 조치다. 아울러 다른 주요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국가부채에 시달리는 일본 정부의 사정도 반영된 정책이다. 일본 정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수준을 나타내는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6월 현재 231.1%로 세계에서 압도적인 1위다. 초장기간에 걸친 디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해결을 위해 돈을 쏟아부었음에도 기대했던 효과가 나지 않은 가운데, 고령화 등으로 인해 복지 부담은 더 커지면서 국가 재정이 갈수록 어려워졌다. 현재로서는 급격한 엔화 약세와 고물가로 인한 이중고가 일본 경제를 타격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오히려 일본은행의 완화 정책으로 인해 고물가 현상만 두드러지는 가운데, 엔화 폭락세가 경제에 더 큰 암운을 드리운 셈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일본이 다른 나라와 같은 금리 인상 대열로 선회하기도 어렵다. 이 경우 일본 정부가 진 천문학적 국가부채가 당장 짐으로 다가온다. 금리를 올리는 만큼 일본 정부의 이자부담도 천문학적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장기간 이어진 경기침체로 인해 세수 확대가 어려운 사정을 고려하면, 자칫 일본 정부가 '빚으로 빚을 돌려막는' 악순환의 길에 더 빠른 속도로 휘말릴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미국발 달러화 강세 현상이 미국을 제외한 세계 다른 모든 나라에 급격한 부담으로 다가오는 가운데, 특히 일본이 영국 등과 마찬가지로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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