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영 사건과 의료·돌봄 공백
윤석열 정부는 사회서비스 민영화 방침을 혁신으로 포장했지만, 시장에서 서비스를 구매할 수 없는 이들은 가족부양 굴레에 짓눌리게 된다. 강도영은 의료·돌봄 공백이 가정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준 가장 적확하고도 극적인 사례다.(☞ 관련 기사 : <프레시안> 2021년 11월 19일 자 ''강도영 비극', 국가는 '간병 살인' 책임 없나')
강도영 사건의 가장 모순적인 부분은 돌봄의 책임뿐만 아니라 보건의료 자체의 허점까지 강도영에게 떠넘기는 데 있다. 국가와 사회가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는 손쉬운 방법이고, 발달장애인, 치매 환자 가족을 비롯하여 이 순간에도 수많은 돌봄 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다.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고 의료·돌봄 서비스의 제도적, 관계적 공백을 메우지 못하면 비극은 거듭하여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강도영 아버지는 발병 전부터 만성질환 관리 대상이었으나, 일차의료에서 '만성질환 관리사업'을 이용하지 못했고, 일자리를 잃은 후 '상병수당 시범사업' 또한 이용하지 못했다. 뇌출혈로 쓰러진 후에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사용하지 못했고, 재난적인 의료비와 간병비는 강도영 부자를 고립시키고 비극을 키워낸 근원적 이유가 되었다. 퇴원 후에는 '지역사회통합돌봄' 체계와 전혀 연결되지 못하고 방치되었다. 신청주의 한계를 차치하고서라도, 강도영 부자 비극 속에는 수많은 제도가 있음에도 이용할 수 없었던 의료·돌봄 공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복지서비스의 단순한 양적 증가는 더 이상 복지국가의 해법이 될 수 없다. 의료·돌봄 공백을 메워나갈 촘촘한 제도적 인프라와 관계적 연결망 구축이 관건이다.사회서비스 고도화? 공백의 확장!
윤석열 정부는 사회서비스 고도화와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해, 서비스 공급 주체의 다변화와 투자 유도를 이야기한다. 기업, 종교단체, 대학, 대형 협동조합 등을 통해서 사회공헌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서비스의 경쟁력과 질을 높이며, 돌봄 경제를 실현하고, 의료·돌봄 서비스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의료·돌봄 공백을 먼저 메워야
의료·돌봄 공백을 메워야 한다. 그래야 제이, 제3의 강도영을 막을 수 있다. 지역사회 통합돌봄 체계를 구축하면서 존재하지만 전달되지 못했던 제도들은 제대로 전달하고, 부족한 부분은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현장의 인력을 대폭 충원해야 한다. 병원마다 의료사회복지사 고용을 의무화하고,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간호사를 OECD 평균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 이를 통해 방문진료, 방문간호, 가정간호를 활성화하고, 전환기 의료와 퇴원 후 관리 프로그램을 전면화해야 한다. 병원 밖에서도 지역에서도 취약한 사람들이 사회와 연결되어 있어야만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즉 관계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신청주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며, 발굴 데이터의 종류만 늘리고, 현장 인력 충원이 아닌 AI 상담사를 도입하겠다면서, 사회서비스를 통째 시장에게 넘기려는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없다.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강도영 이후 1년 지난 오늘날, 이태원 참사로 수많은 시민이 깊은 슬픔에 빠져있다. 강도영 사건과 이태원 참사는 원인과 책임은 다르게 접근해야 할 문제일 수 있어도 본질은 이어져 있다. 시민의 안전과 필요를 국가가 외면했다는 것이다. 국가가 책임지고 시민의 안전과 복지를 고민하며, 필요한 영역에 충분한 서비스와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 지자체가 지역의 복지 필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거버넌스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지역사회통합돌봄을 꾸준히 지원해야 한다. 취약성이 고립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제2 제3의 강도영 부자가 병원 밖 지역에서도 사회와 연결돼 있을 수 있도록, 윤석열 정부는 의료·돌봄 관련 관계부처 회의부터 성실히 임하라. 윤석열 정부는 전방위적인 퇴행을 멈춰라. 국가가 시민의 안전과 사회안전망을 책임지지 않는 나라. 무정부 상태라는 자조, 국가가 없다는 한탄이 두려울 지경이다.*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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