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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천지 갈 곳 없고, 딱 죽었으면 싶네유"…어르신들에게 주치의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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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천지 갈 곳 없고, 딱 죽었으면 싶네유"…어르신들에게 주치의가 있다면?   [발로 뛰는 동네의사, 야옹선생의 지역사회 의료일지]
안녕하세요. 지역사회에서 발로 뛰는 동네의사 야옹선생입니다. 저는 지금 진료실에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아픈 분들을 찾아가는 방문 진료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민들레 의료사협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오십니다. 마침 어르신들이 많이 사시는 아파트 단지를 끼고 있는데다 경증치매 어르신 돌봄, 주간보호센터 등 어르신들을 위한 사업들도 많이 하는 덕분입니다. 또 어르신들은 한번 마음을 붙이면 바꾸지 않고 한 병원을 꾸준히 다니시지요. 워낙 기저질환도 다양하고, 이곳저곳 아픈 곳도 많으셔서 젊은이들보다 자주 오시기도 합니다. 그러다 단골이 되고, 보면 반갑고 안 나오시면 걱정되는 사이가 되지요. 이제 곧 여든이 되시는 한 어르신은 충청도 분답게 성정이 느긋하시고 점잖으셔서 진료오실 때마다 한참 어린 저에게 깍듯이 존대와 인사를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다달이 저에게 진료를 받으러 오시는데 어느 날 표정이 너무 어두우신 겁니다.
"어르신, 무슨 걱정 있으세요? 얼굴이 안 좋으셔요."
제가 혹시나 해서 여쭤보니, 말을 잇지 못하시고 눈물을 글썽이십니다.
"아이고... 이걸 어찌 말씀드려야하나...사실, 제가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어유."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자세히 얘기를 좀 해주세요."
찬찬히 얘기를 들어보니 사기를 당하여 빚이 생겼고 그 때문에 임대료를 못 내게 생기셨다는 겁니다.
"원장님, 제가 여기서 쫓겨나면 그때는 그냥 죽는 거여유. 세상천지 갈 곳도 없고, 그냥 딱 죽었으면 싶네유."
홀로 사시는 분이라 주변에 도움을 줄 가족도 없고,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어진 저는 민들레 사회복지사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상황을 좀 알아봐주시고 해결할 방법도 찾아주세요. 지금은 어떤 다른 약보다 이분이 집에서 계속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이분을 살리는 길이에요."
다행히 믿음직한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주민센터며 관리사무소와 소통을 하여 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이후 민들레 의료사협에 대한 어르신의 신뢰는 더욱 단단해졌지요.
ⓒ박지영
작년 가을 어느 날 어르신이 갑자기 엉뚱한 행동이나 말씀을 하신다며 아무래도 치매가 생긴 것 같다는 제보에 방문 진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직접 댁에 가서 본 상황은 참담했습니다. 좁은 집에 놓인 침대에 옷가지과 온갖 잡동사니들이 들어차 있고 이불에는 배설물이 묻어있으며 곳곳에 먹다 남은 음식물들이 버려져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어르신! 이게 무슨 일이에요. 저 알아보시겠어요?"
"어~ 우리 원장님이네유. 어..."
겨우 저를 알아보시긴 했으나 정신이 온전치 않은 것은 분명해보였습니다. 자꾸 누우려고 하시고 엉뚱한 대답을 하십니다. 무엇보다 불과 얼마 전 제가 본 어르신의 모습과 너무 다릅니다. 주변 분들에게 여쭤보니 지난주까지는 괜찮아보였는데 최근 일주일 사이에 이상해지신 것 같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치매라기보다는 섬망에 가깝네요."
수액처치와 혈액, 소변검사를 시행하고 결과를 보니 염증수치가 정상의 수십 배에 달합니다. 바로 의뢰서를 작성하여 응급실로 가시도록 조치를 하였고 결국 요로감염에 의한 패혈증으로 중환자실로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어르신이 이불에 배설물을 묻히고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시니 주변에서는 그저 치매인줄만 알고 어르신 스스로도 정신이 온전치 않아 병원에 갈 생각도 못하고 일주일을 그렇게 지내신 것입니다. 방문 진료가 없었으면 치료가 지연되어 더 큰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겠지요. 다행히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잘 받고 근처 요양병원으로 옮겨져 회복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어르신께 전화가 왔습니다.
"네, 어르신, 지금 요양병원 입원중이시죠? 몸은 좀 어떠세요?"
"몸은 많이 좋아졌어유. 그래서 집으로 가고 싶은데 병원에서 보호자가 없어서 퇴원을 못 한다고 하네유. 어여 집에 가고 싶어유. 원장님도 보고 싶구유."
한 번 더 이 어르신을 위해 민들레 의료사협이 나섰습니다. 주민센터와 복지관을 통해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퇴원계획을 세웠습니다.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으실 수 있도록 소견서를 작성하여 요양보호사가 어르신을 돌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깨끗하고 안전한 집에서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잘 지내고 계십니다.
▲ 어르신과 함께 찍은 사진. ⓒ박지영
우리나라에는 아직 주치의 개념이 없지만 어떻게 보면 매달 고혈압, 당뇨 등으로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의사들이 주치의와 비슷할 것 같습니다. 관심을 갖고 자주 보면 이분이 진료실에 들어오는 순간 건강이 어떤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낯빛이나 걸음걸이를 보고 몸상태를 알 수 있고, 표정을 보면 마음 상태가 어떤지도 짐작이 가고요. 다양한 기저질환을 갖고 있고, 거동도 불편한 모든 어르신들에게 이런 주치의 역할을 하는 의사가 있다면 어떨까요? 아직 우리나라에 노인 주치의 제도는 없지만 다행히 2022년 12월부터 전국 20여 곳의 일차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장기요양등급 1등급에서 4등급에 해당하는 거동불편 어르신들에게 집으로 찾아가는 방문 진료와 방문 간호를 제공하고, 사회복지사까지 함께하는 어르신들의 건강을 위한 주치팀을 만들어 운영하게 됩니다. 제가 일하는 민들레 의료사협도 대덕구과 함께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을 통해 어르신들의 건강을 통합적,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노인 주치의제의 초석이 마련되길 바라며, 앞으로 재택의료센터와 방문진료에 대해 알리고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또한 어르신들을 집에서 돌보면서 생길 수 있는 여러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와 그럴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들도 드려보려고 합니다. 아울러 민들레 의료사협을 찾으시는 다양한 환자분들의 이야기들도 곁들여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단련시키는 개인적인 욕심도 챙기려고 합니다. 그러니, 궁금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물어봐주세요. 제가 아는 한에서 답을 드리고 같이 고민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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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수료했다. 현재 대전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가정의학과 원장 및 지역사회의료센터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엄마의사 야옹선생의 초록처방전>, <아이를 위한 면역학 수업 : 감염병, 항생제, 백신>, <야옹의사의 몸튼튼 비법노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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