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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죽고 나서야 산재 인정된 삼성 '반도체 청소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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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단독] 죽고 나서야 산재 인정된 삼성 '반도체 청소노동자' 유해물질 노출된 '반도체 청소노동자'의 죽음... '클린룸' 청소 위험성 인정한 첫 사례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 '클린룸'(반도체 제품이 만들어지는 곳으로 주로 먼지가 들어가지 않는 밀폐된 공간)을 청소하다 췌장암으로 사망한 청소노동자의 죽음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됐다. 이 노동자는 지난 2019년 산재를 신청한 뒤 심사를 기다리다 지난해 2월, 5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8일 <프레시안> 취재 결과, 삼성반도체 화성캠퍼스에서 클린룸 청소를 하다 췌장암 진단을 받은 故이모 씨는 지난달 21일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로부터 업무상 질병 판정을 받았다. 췌장암 발암요인으로 인정 되는 벤젠 등 다양한 화학물질에 노출된 반도체 라인 내 청소노동자의 노동 환경과 질병의 상관관계가 인정된 것이다.

이모 씨는 2014년 9월부터 4년 11개월 동안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 클린룸을 청소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2019년 7월 췌장암 진단을 받고 같은 해 9월에 산재를 신청했다. 이후 2년 6개월동안 항암치료를 진행하다 지난해 2월 18일 사망했다. (관련기사 : 삼성 반도체공장 청소노동자의 죽음…산재 역학조사에는 참여도 못했다) 앞서 2021년 12월에도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 청소노동자의 유방암이 산재로 인정된 바 있다.

이번 판정으로 유해물질의 찌꺼기를 청소하는 과정에서 클린룸 유해환경의 위험성이 주된 산재 요인으로는 처음 인정됐다.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질병판정서를 통해 "고인은 반도체 공장 FAB 클린룸에서 청소업무를 수행하면서 FAB 출입자와 유사한 다종의 유해물질 등에 노출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클린룸 뿐만 아니라 설비 오픈에 따른 전리방사선 등에 대한 노출 위험이 존재했다"고 반도체 청소노동자의 업무 위험성을 인정했다.
▲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는 클린룸 이미지. 클린룸에는 오퍼레이터와 엔지니어만이 아니라 청소노동자도 있다. 고 이모 씨는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 17라인 클린룸에서 2014년 9월부터 4년 11개월 동안 청소노동자로 근무하다 지난 2월 췌장암으로 사망했다.ⓒ픽사베이
이모 씨의 유족인 남편 김모 씨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몇 년을 싸우다가 결국 죽은 다음 산재 판정을 받으니 기뻐해야 할지 슬퍼야 할지 모르겠다"며 "함께 기뻐해야 할 사람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노동자들이 일하다 병에 걸리면 산재 인정을 해주고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우리처럼 힘들게 산재 판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슬픈 일"이라며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아내는 비록 세상에 없지만, 다른 노동자들에게 이 결과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클린룸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 뿐 아니라 다른 반도체 청소노동자들도 앞으로 좋은 결과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현재 시민단체 반올림이 받은 삼성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청소노동자 직업성 질병 피해 제보는 14건이다. 병명은 유방암, 췌장암, 피부암, 위암, 백혈병, 비호지킨림프종 등으로 다양하다. 그 중 5명이 산재를 신청했고, 이 씨를 포함해 2명이 산재 인정을 받았다.

주목받지 못했던 '투명인간' 반도체 청소노동자의 노동환경... 어떤 일을 하나?

오퍼레이터(생산직), 엔지니어처럼 똑같은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일하지만 반도체 청소노동자의 위험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청소노동자는 오퍼레이터, 엔지니어와 같은 공간에서 일하며 바닥과 벽면의 먼지와 약품을 닦고 방진복, 방진화 등을 정리한다. 클린룸의 먼지를 최소화 하기 위해 면포로 구석구석을 닦아내고, 생산, 수리 과정에서 클린룸 곳곳에 떨어진 약품을 닦는 일을 한다. (관련기사 : 반도체 청소노동자는 '알 수 없는' 성분의 가루와 약품을 치운다)

9층은 그나마 좀 깨끗했지만 7층 6층으로 내려가면 갈수록 근무 환경은 더 안 좋았다. 알 수 없는 약품 냄새로 인해 코로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어떤 이는 머리가 아프다고 하고 토가 나올 것 같다는 이도 있어 모두가 그 자리를 기피하곤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6층 근무 때는 어느 특정 구역만 가면 가스 냄새도 나고 현장 바닥엔 빨갛고 노랗고 파란 알 수 없는 약품 찌꺼기들을 걸레로 닦고 일일이 다 털어서 스막으로 묶어서 내곤 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난 걸레를 털 때마다 약품이랑 먼지가 내 입으로 들어갈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제일로 무섭고 두러웠던 곳은 슬러리라는 곳인데 가면 드럼통 안에 알 수 없는 약품들이 많이 들어왔다. 지나고 보니 굳이 가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곳을 가서 일했다. 그곳에서 일한 걸레는 버리려고는 했지만 면포가 모자랄 때 거기서 닦는 면포도 털어서 묶어내곤 했다. (이모 씨가 생전에 작성한 노동환경에 대한 최종의견진술서)

이모 씨가 생전에 작성한 최종의견 진술서를 살펴보면 이모 씨는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난 걸레를 털 때마다 약품이랑 먼지가 내 입으로 들어갈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었다"고 적었다. 이 씨는 해당 공정에서 나오는 먼지와 물질들을 면포로 닦아냈고, 이 면포에 붙은 물질을 털어내는 역할도 했다. 일회용으로 사용하는 면포지만, 이마저도 부족할 때는 면포를 털어서 세탁업체에 보냈다.
▲알 수 없는 성분의 물질을 닦은 면포를 털어내는 것도 청소노동자의 업무였다. 보통은 일회용으로 사용되고 버려지는 면포다. 그러나 면포가 부족할 때는 털어서 세탁업체에 보내곤 했다. ⓒ반올림
또한 고정된 자리에서 근무하는 오퍼레이터와 달리 청소노동자였던 이모 씨는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 1~3층, 6~9층 모두 돌아다니며 전 공정에서 나오는 물질과 먼지들을 청소했다.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에서 일했던 또다른 이모 씨는 "라인을 돌다보면 바닥에 갈색, 주황색, 형광색 등 다양한 가루들이 있다. 저희 같은 청소노동자가 하는 주 업무가 면포로 그 가루들을 닦아내는 것"이라며 "닦을 가루가 없다면 저희가 있을 이유가 없다"도 증언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입자의 먼지에 노출되어 있던 것이다.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유해물질을 면포를 이용해서 찌꺼기를 닦고, 닦은 면포를 세탁하기 전에 터는 등의 작업 및 폐기물함 정리 작업 과정에서 다양한 휘발성 유기화합물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위험성을 인정했다. 반올림 상임활동가 조승규 노무사(노무사사무소 씨앗)는 "역학조사가 오래 지연되면서 안타깝게도 살아계실 때 산재 결과를 듣지 못하셨고 산재신청으로부터 3년 넘은 지난해 12월에야 산재 인정 판정을 받았다"며 "결과가 많이 늦었지만 이번 판정은 반도체 청소노동자 피해자들이 증언해온 위험요인을 인정한 첫 판정이라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조 노무사는 "고인 이전에는 청소노동자가 설비를 다루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유해물질 노출 위험을 부당하게 낮게 평가하였다"며 "하지만 이번 판정에서는 청소노동자도 다른 클린룸 출입자와 유사한 수준으로 유해물질에 노출된다고 보았다"고 평가했다.  조 노무사는 "반도체 공장 내 청소노동자들의 수는 상당하지만, 그들의 경험은 그간 어디에서도 제대로 가시화되지 않았다"며 "그래서 일하다 위험에 노출되고 병에 걸린 청소노동자 피해자들 서로가 그 증거가 되었다"고 했다. 이어 "고인의 경험이 우리 사회의 인정된 기록으로 남았다는 것이, 돌아가신 고인과 그 유가족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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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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