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게 두려워요. 내가 진짜 아픈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아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아직은 약 안 먹어도 괜찮은 것 같아요."
이전에는 환자에게 짜증을 내거나 무시했지만 저도 내공이 좀 쌓인 터라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 대략의 성격과 심리상태를 가늠해 봅니다.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라면,“고혈압이란 말 그대로 혈관에 가해지는 피의 압력이 높아지는 것이고, 이 때문에 장기에 손상이 일어납니다.”
감정에 호소하는 게 필요한 상황이라면,“(걱정스러운 눈으로 그윽하게 쳐다보다)하...환자분, 사실 제가 너무 걱정되어서 그래요. 이대로 가면 정말 나중에 힘들어집니다.”
또는, 카리스마로 휘어잡아야 한다면 이렇게도 얘기하죠."(손을 덥석 잡고) 어르신, 저 믿으시죠? 제 말을 따라주세요."
“나는 있지? 박선생을 만나서 얼마나 좋은지 몰러~ 어제는 내가 영양제를 하나 샀는데 말이여~ 이건 먹어도 되는겨? 언제 먹으면 돼요? 공복에 먹는게 좋은겨?”
성분표를 들여다보며 기존에 드시는 영양성분과 겹치는지 봐 드리고 설명하고 나면 다음 질문이 또 이어집니다. 궁금한 것도 많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많은 분이라 한번 진료를 보고 나면 진이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분은 제가 한번 말씀드리면 사소한 것 하나라도 기억하셨다가 실천하려고 노력하십니다. 심지어 제가 했는지 기억 못하는 말도 기억했다가 다시 물어보십니다. 제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의사’이기 때문에 칠순 할머니도 제 말에 귀 기울이시고, 팔순이 넘은 어르신들도 진료실에 들어올 때는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신다는 것을 압니다. 갓 의사면허를 따고 환자를 보기 시작했던 전공의 시절, ‘의사’라는 권위에 기대어 거들먹거리거나, 깍듯이 대해주던 분들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환자들이 의사에게 기대하는 지식과 도덕성, 선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이죠. 그냥 의사라서 받는 존중에 익숙해지지 않고, 저를 찾아 주시는 분들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식과 공감능력, 진심을 담은 말을 전달력 있게 하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를 존중해주시고 기꺼이 설득되어 주시는 환자분들께 지면으로나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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