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는 지난 2011년 후마니타스칼리지를 설립하고, 3학점 교양 필수과목으로 '세계와 시민'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와 시민'은 매 학기 25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100개의 강좌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를 주제로 선정해 한 학기 동안 해당 주제를 토론하고 이를 연구해 동료에게 조사 결과를 소개하는 학생 주도의 공동 프로젝트(Global Citizen Project, GCP)를 수행한다. 수업에서 다뤄지는 주제는 성소수자 문제, 동물권, 플랫폼노동, 기후변화 등 오늘날 언론에서도 뜨겁게 다뤄지는 이슈들이다. 해당 주제들을 다루면서 학생들은 글로컬 차원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시민적 삶의 존재 조건을 이해하고, 세계시민으로서의 책임감 있는 삶의 자세를 다진다. 청년으로서 첫 걸음을 떼는 학생이 수업의 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을 기록하는 수업인 셈이다. <프레시안>은 지난해에 진행한 '세계와 시민' 수업 프로젝트 중 10개를 추려 수강생이 직접 작성한 원고를 소개한다. 편집자.
여성의 재생산권을 위한 낙태 보장
학창 시절, 성교육 시간에 왜 피임과 임신중절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는지, 성적 자기 결정권을 논하면서 어째 여성의 임신중절권은 이야기하지 않는지 의문점이 있었다. 그 의문점은 2018년, 유튜브 채널 <닷페이스>에 올라온 도서 <유럽 낙태 여행>의 프로젝트 영상을 보며 더 심화했다. 어째서, 왜, 아직도 당연한 그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가? 여성의 임신, 출산, 육아는 인류의 모든 시간을 통틀어 미행된 적이 없지 않은가? 그만큼 임신과 출산은 인류의 존폐가 걸린 중대사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 책임을 오직 여성에게만 전가하고, 권리는 부여하지 않는다. 여성을 보호하지도 않는다. 이 같은 사회문화적 측면은 다분히 성차별적이며 여성을 억압하는 불합리한 모습을 띈다. 재생산을 국가가 통제하려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여성의 재생산권이 여성 개인에게 전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국가에 있다면, 이는 가부장적 문화의 산물이다. 아울러 이는 곧 성차별이다. 권리가 주어지지 않으면 권력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조는 따라서 임신 중절권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이론적 배경을 갖추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했다. 우리는 국내외 낙태죄 존재 여부와 낙태죄 폐지 운동의 역사, 폐지 이후의 대안 방안, 그리고 낙태죄 폐지가 필요한 이유 등을 학습하였다. 국내의 낙태권 운동 역사를 알게 될수록 한국 사회가 아직도 가부장제 사회에 머물렀음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오늘날 한국은 국가 권력이 여성과 약자에게 폭력으로 작용하는 구조를 바탕으로 성장했음을 알게 됐다. 지금껏 여성의 재생산권은 오로지 국가의 이익을 위해 논의되는 사안에 불과했다. 오늘날 국가가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보다 출산율을 더 중요하게 보는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개인의 권리보다 가정의 형성과 보존이 더 우선되고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다. 낙태죄 폐지 이후 관련 입법은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다. 필연적으로 제도적 차원에서 변화가 시급한 문제임에도 국회에서의 논의는 제자리를 공전했다. 우리는 관련 문제를 공부하면서 보건복지부에 관련 민원을 준비했다. 이 때 의료계에서 임신 중절을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지점들에 대해 논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 이전에도 동일한 내용의 민원이 이미 제기됐음을 알게 되었다. 2020년에 작성된 그 글은, 2022년 5월 중에도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이었다. 당장 개선돼야 할 중요한 사안이 다른 의안들에 밀려 여전히 떠돌고 있음을 자각했다. 제도적 차원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문제가 사회의 공론장에서 주요 담론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사람들이 재생산권에 너무 무지함을 깨달았다. 주제를 정하는 과정에서도, 팀원들과 토론하면서도, 그리고 나 자신을 보면서도 매번 느꼈다. 이들이 재생산권에 무지했던 것은 그들만의 죄가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정치가, 의료계가, 그리고 교육계가 재생산권에 철저히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재생산권을 우리 사회의 주요 의제로 형성할 수 있는 권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민 사회에 우리 의견을 전파하고 공론장을 마련하기 위해 독자 기사를 투고했다. 담론 형성의 주체는 나와 같은 일개 학부생도 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말이다. 그 환상은 1인 시위로 이어졌다. 국회의사당의 그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가장 작은 크기의 피켓을 들고 재생산권 보장, 낙태약 도입, 포괄적 성교육 도입을 외쳤다. 내 주변에 선 다른 이들은 나보다도 훨씬 큰 피켓을 들고 낙태죄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를 외쳤다. 그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어쩌면 당연한 사회에서 살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1인 시위하는 1시간이라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는 아직도 재생산권을 자연스레 배우지 못했을까? 왜 학교 성교육에서는 재생산권을 가르치지 않을까? 왜 우리가 직접 행동을 해야만 할까.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생물학적 성에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왜 권리로써 주어지지 않을까? 왜 우리는 대학교에 와서야, 그리고 이런 사회 참여적인 과목을 듣고서야 재생산권을 알게 되었을까.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한 권리를 너무나 당연하게 빼앗기고 있는데 이런 문제에 대한 아무 고민도, 생각도 없는 대한민국 사회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왜 우리가 자문할 수 있는 단체는 한정적이었는가? 왜 산부인과 의사는 우리의 인터뷰를 다 거절했는가?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난 지 벌써 3년이다. 그 3년이란 시간 동안 대체 대한민국 사회는 어떻게 변화했는가? 그리고 내 이런 공허한 외침은 어떤 힘을 가질 수 있을까. 끝내 아무 답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 자리에서 깨달은 것은 있었다. 이렇게 시민으로서 참여하며 그 역할을 다하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이게 시작이고, 우린 더 나아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 GCP 프로젝트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아직도 낙태에 대한, 여성 재생산권에 대한 논의는 우리 사회에서 뒷전이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우리 사회의 공적 공론장에 대한 분노와 아쉬움이 컸다. 기대와 다른 현실은 직접 행동을 하며 희망을 찾고자 한 나에게 무력감을 주었다. 개인적으로 씁쓸한 기억으로 남은 프로젝트가 되어버렸다. GCP 활동을 하며 특히 개선이 필요하다 느꼈던 점은 활동하는 학생들이 대부분 당사자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재생산권이 여성은 물론, 남성에게도 중요한 권리라는 것 자체를 주변 학생들이 잘 인지하지 못했다. 여성들은 그저 '낙태'라는 개념에만 꽂혀서, 자신들에게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남성들은 재생산의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는 개념이 절대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했다. 우리 조는 물론, 함께 수업을 들은 다른 조의 활동을 보아도 대부분 사회를 향한 시각에서 당사자성은 사라지고 시혜적인 시선만이 남아있었다. 발표 내용은 자신에겐 절대 일어나지 않을 문제라는 확고한 생각. 사회와 철저히 분리된 '나'라는 개인과 '사회 문제'라는 병리. 세계와 시민을 배움으로써 우리가 직접 행동을 통해 바꿔나가는 문제 지점들이 '나'도 겪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느끼지 못했다. 이렇듯 시혜적인 시선으로 일어나는 활동이라는 점이, 그리고 우리 팀도 어쩌면 다를 것이 없었다는 점이 가장 아쉽지 않았나 싶다. 그렇기에 우리 학교의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세계와 시민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에게 당사자성을 더욱 중요하게 가르쳐야 하지 않나 싶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은 당장 그것을 겪는 이들에게 주어진 현실이지만, 우리에게도 중요한 현실임을 학생들이 깨닫게끔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깨달음을 도와주는 것이 바로 이 후마니타스 칼리지여야하지 않나 싶다. 학생들의 당사자성을 회복할 수 있다면 정말로 직접 행동이 '직접'으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과 같은 수박 겉핥기식의 무의미한 활동들이 조금은 더 개선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쉬운 점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생각만 했던 사안을 실천적으로 다룰 수 있는 경험이 되어 좋았다. 이러한 경험 덕분에 사회 운동을 더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문제에 부딪힐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한편 활동 도중 왜 대학생들은 소극적 연대에만 힘을 쏟느냐는 글을 읽게 되었다. 왜 학생들이 대학 사회 내부에서의 인권 침해 사안에 연대하지 않고, 전 세계적인 문제에만 연대하느냐는 내용이었다. 당장 대학 사회 내부에서 발생하는 인권 문제가 생각보다 다양함을, 그리고 내부의 목소리는 더 쉽게 묻힘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마침, 경희대학교에는 대학 사회 소수자들의 인권과 권리를 보호하고 증진하는데 노력을 하는 기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이하 학소위)는 대학 사회 내부 및 외부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같이 행동하는 기구이다. 앞선 깨달음들을 통해 학소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들어가서 활동할 용기가 생겼다. 지금은 두 달 짜리 새내기 위원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GCP 활동을 통해 대학 사회에서 직접 행동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대학 내외의 소수자와 학생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열심히 투쟁하고 있고, 투쟁할 것이다.*지구방위대 : 김도현(Hospitality경영학부)‧박하향(사회학과)‧백현(성악과)‧유지연(주거환경학과)‧정해민(Hospitality경영학부)‧홍해(자율전공학부)
/ 기사 작성 : 박하향, 정해민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