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광장 분향소는 시청 앞 분향소로 이전해서 통합 운영합니다"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 공동운영위원장을 역임 중인 자캐오 신부는 분향소 이전·통합 계획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유가족협의회, 시민대책회의와 더불어 이태원 상인 통합대책위원회가 이날 기자회견을 공동주최했다. 자캐오 신부를 비롯한 종교계 인사들도 분향소 정리를 돕기 위해 자리에 참석했다. 분향소가 운영된 약 50여 일 동안 수많은 시민들이 이곳을 찾았지만, 일각에선 '분향소 운영이 이태원 상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견이 일었다. 분향소 인근에 천막을 설치하고 유가족들을 비난하는 방송을 진행해온 한 보수단체 회원들은 지난해 12월 30일 일부 이태원 상인들을 대동한 채 분향소 철거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날도 "이태원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제발 이태원을 떠나라" 등의 문구를 담은 현수막이 '용산 주민·이태원 상인·주민 일동'의 이름으로 분향소 주변 곳곳엔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이날 현장을 찾은 장하림 이태원 상인 통합대책위원장은 "분향소 주변에서 여러 혐오표현을 볼 수 있지만 주민과 상인들은 여기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측은 참사 직후로부터 '희생자, 생존자, 인근 상인과 주민들 모두가 참사의 피해자'임을 천명해왔다. 장 위원장은 "긴 시간동안 지속되는 상권 침체는 저희들 힘만으로 어려운 일"이라면서도 "저희도 시간이 될 때마다 이곳을 찾으며 늘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유가족들이 상생의 마음으로 저희 호소를 받아들여 분향소 이전·통합을 결단해 주신 데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태원 거리를 '안전과 기억'의 거리로 조성하기 위해 계속 협조하겠다"라고도 했다. 유가족협의회, 시민대책회의, 그리고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는 참사 현장 인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중심으로 '모두를 위한 애도와 기억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MOU'를 체결한 상태다."더 이상 서울시청, 오세훈 시장과의 대화는 없습니다"
발언에 나선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이날 서울시와의 '대화 중단'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유가족협의회는 앞서 지난 7일에도 서울시 및 오세훈 시장과의 직접 대화 중단을 발표하며 앞으로의 소통은 시민대책회의를 통해 진행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서울광장 분향소 철거를 요구하고 있는 서울시 측이 7일 '함께 녹사평역 지하 4층 분향소 설치를 협의해왔으나, 유가족이 이를 갑작스럽게 철회하고 서울광장 분향소를 기습·불법·무단 설치했다'고 주장하면서다. (관련기사 ☞ 서울시의 "기습·무단·불법" 공격에 대화 중단한 '이태원' 유족)
이날 이 대표는 앞서 추모공간 및 소통공간 마련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유가족협의회가 '관급 건물을 요구'했으나 서울시 측이 '관급 건물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고, 이에 유가족협의회는 "이태원역도 있고, 녹사평역도 있고, 용산구청도 있고, 시청 로비도 있다"고 대답했을 뿐이라며 서울시의 7일 해명이 “언론플레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서울시는 지난 4일부터 운영되기 시작한 서울광장 분향소에 대해 두 번의 자진철거를 계고, 오는 15일 오후 1시를 행정대집행 기한으로 밝힌 상태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날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유가족 측에) 재차 자진 철거를 부탁드렸고, 오늘도 대화에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라며 "행정대집행 기한은 일단 15일 오후 1시로 예정돼 있지만 현재까진 상황을 지켜보는 중으로, 실제 집행이 이뤄질지는 확답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반면 김덕진 시민대책회의 대외협력팀장은 전날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집행 예정일이 15일이라는 것은) 따로 계고장을 받거나 구두로 전달받은 바가 없고, 저희도 기사를 보고 알았다"라며 "소통의 경우 대책위 측은 구체적인 대안과 협의 책임자와의 소통을 요구하고 있지만 서울시 측은 '일단 만나자'는 식의 일방적인 소통만 시도할 뿐"이라고 주장했다."우리 딸이 잊혀질 까봐 엄마가 용기를 냈어" … 희생자 영정, 끝내 지하로 내몰리나
오후 2시 30분께, 기자회견이 마무리되고 녹사평 분향소의 정리가 시작됐다. 현장을 찾은 종교계 인사들이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을 하나하나 떼어 유가족들에게 전달했다. 영정을 안아든 유가족들이 한 명씩 늘어나면서 광장은 다시 울음바다가 됐다. 몇몇 유가족들은 사진을 안고, 쓰다듬고 혹은 멍하니 지켜보면서 현장을 떠나지 못했다. 아이의 사진을 받아든 어머니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한 청년은 동생의 사진을 들고 묵념하듯 고개를 숙였다."우리 지한이 어떡해요... 너무 불쌍해요."
참사 희생자 고 이지한 씨의 아버지, 이종철 대표는 지한 어머니 조미은 씨와 함께 한참을 광장에 머물렀다. 오열하는 조 씨를 부축하던 이 대표도 이내 고개를 숙였다. 유가족들이 광장에 나선 지 50여일이 흐르기까지 그들의 가장 큰 구호는 항상 같았다.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이 대표는 이날 해당 분향소를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 알리기 위해" 설치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억이 참사를 극복하는 가장 큰 동력이라면, 희생자들의 "얼굴과 이름"은 기억의 가장 큰 동력이다. 이번 이태원 유가족협의회를 위시해 과거 '세월호' 등 참사 피해 유가족들이 서울광장이라는 상징적 장소를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대표는 앞서 지난 6일 '분향소 갈등'에 대응해 개최한 유족 기자회견에서 "지하 4층 굴 속으로 들어가 목소리가 사그라질 때까지 가만히 숨 못 쉬고 죽으라는 말인가"라고 지적한 바 있다."우리 딸이 잊혀질까봐 엄마가 용기를 냈어."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