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대 신교수, 자연대 K교수, 경영대 P교수, 사회학과 H교수, 수의대 H교수, 서어서문학과 A교수, 음대 B교수와 C교수..."
모두 지난 2018년 '미투' 국면 이후 공론화된 서울대 내 교수 성폭력 사건 가해자들이다. (관련기사 ☞ "팔짱끼자"부터 "넌 이효리"까지 … '교수 성폭력'은 왜 계속되나) 시위자 심미섭 씨는 그 교수들의 이름 아래로 이렇게 적었다
"교수 성폭력, 멈출 수는 없나? 서울대는 학내 성폭력 전수조사 실시하라!"
서울대에선 2018년 '대학 미투'국면을 시작으로 소위 '알파벳 교수' 사건으로 불리는 다수의 교수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 돼왔는데, 이 과정에서 '학교가 피해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방관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었다. 지난해 12월 1심 유죄 판결을 받은 '음대 C교수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학교가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기 전엔 명확한 징계가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피해자는 학내외의 다양한 2차 가해에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말았다. (관련기사 ☞ 서울대 성추행 교수 1년형 선고됐으나, '미투' 후 삶은 파괴됐다)
졸업식 전날인 지난 23일엔 '서어서문학과 A교수 사건'(관련기사 ☞ 무죄 선고받은 '제자 성추행' 교수...'서울대 미투'는 계속된다)의 항소심이 있었다. 서울대는 당일에도 'A교수에 대한 징계위원회의 서류를 제출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무시하고 자료제출을 거부한 바 있다. 해당 사건의 피해자는 지난 10일 '법원의 문서제출 명령을 이행해 달라'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서울대 총장에게 전달하기도 했지만 서울대 측은 별도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사례들을 두고 심 씨는 학교 측이 "사건이 일어나고 공론화되어도 무시하거나, 학생들의 투쟁이 지속된 이후에야 비로소 미온적 대응을 할 뿐"이라며 "학교의 이런 태도에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라는 외침은 공허해 진다"고 지적했다. 해당 문구는 가해자에게 유리하고 피해자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사회적 통념 및 제도 등을 꼬집는 성폭력 지원 현장의 대표적인 구호다."권력형 성폭력을 멈추기 위해서는 우선 학생들이 자신이 듣고 겪은 일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공론화 이후에도 피해자의 오랜 고통이 예정되어 있다면, 그리고 학교가 피해자를 돕기는커녕 부조리를 방관하거나 심화하고 있다면, 그 누가 용기 있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심 씨는 과거 학내 성폭력 사건을 경험하고 공론화를 선택한 성폭력 피해·고발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의 사건에서도 학교는 △가해자와의 공간분리나 △징계절차 알림 등에 있어서 학교 측의 '미흡하고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바 있다. 그는 자신이 버텨온 나날들을 생각하며 "지금도 버티고 있을 누군가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 피눈물을 붙이고 졸업식을 찾았다. 25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심 씨는 "(사건) 당시 학교는 별 도움을 주지 않았고, 학교를 다니기가 심적으로 힘들어졌다. 돌이켜보면 버티고 버티다가 졸업을 했다"라며 "졸업식이 누군가에겐 ‘버텨온 결과’라는 사실을, 졸업생들 중에는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라고 이날 1인시위의 취지를 밝혔다. 이날 그가 특히 강조해 요구한 것은 '학내 성폭력 전수조사'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학 성폭력 피해 사례를 수집·분석해 대학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를 발표한 바 있지만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 전담부처나 학교 차원의 대학 성폭력 실태조사는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심 씨는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는 학내 폭력에 대응하고, 이를 사전 방지하기 위해 학교 차원의 조사를 실시한다. 2021년 교육부에서는 초·중·고등학교 성폭력 실태를 전수조사하기도 했다"라며 "이런 전수조사가 대학교에서만 불가능할 리 없지 않는가"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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