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어르신. 이 많은 약을 어떻게 다 드시고 계세요?"
"이 약을 먹어도 저 약을 먹어도 아프니 어째유. 이것 저것 다 먹어 봐야제."
통증 조절이 안 되니 기분에 따라 약을 조합해서 드시고, 이렇게 약을 들쭉날쭉 먹으니 치료용량에 도달하지 못하여 통증 조절은 커녕 부작용만 자꾸 늘어나는 상황이 된 것이죠. 이분은 재택의료센터 대상자로 등록하고 제가 주치의가 되어 기존의 약물들을 조정하고 상황에 맞는 약을 꾸준히 쓰면서 통증이 많이 조절되었고, 약물 부작용도 줄었습니다."어르신, 당뇨약 받아 오셨어요?"
"아뉴~말도 못 했어유. 들어가면 나오기 바빠서. 지금까지 그대로 먹었는데 괜찮겠지유"
환자 대신 병원에 간 팔순이 넘은 보호자는 의사와 간호사가 너무 바빠 보이는데다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약을 그대로 받아온 것입니다. 결국 제가 한 번 더 설명을 드려 물약을 중단시키고 당뇨약을 처방하였습니다. 이렇게 거동이 불편한 분들은 직접 다니면서 의사를 만날 수가 없으니 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방문진료하다가 만나면 힘에 부칩니다. 근이영양증 환자가 피부질환이 생겨 과거 진료를 받았던 큰병원에 진료 요청을 했으나 환자가 직접 와야 한다고 하여 곤란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환자는 산소호흡기가 없으면 숨쉬는 것도 힘들어서 병원을 갈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보호자가 저희 병원으로 도움을 요청하여 방문을 나가 보니 피부 곰팡이 감염이 의심되어 치료를 했지만 어느정도 좋아지고 나서는 더이상 호전이 없습니다. 할 수 없이 피부과 교수인 친구에게 전화로 상태를 설명하고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하여 자문을 받아 처방을 하였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상태가 급격히 좋아지고 있습니다. 이 경우만 봐도 의사들끼리의 소통은 분명 환자를 좋아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의료제도 특성상 의사들끼리도 서로 경쟁을 해야 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협력을 위한 소통을 하기가 쉽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장애인 건강주치의와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을 통해 주치의로서 환자를 만나보니 다른 의료인들과의 소통이 정말 절실합니다. 입원을 하거나 수술을 하고 나온 환자들의 상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환자의 변화를 해당 전문과 선생님과 바로 공유하기가 힘들어 참으로 답답합니다. 거동이 힘든 장애인이나 여러가지 질병을 갖고 계신 어르신들은 특히 그렇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의사들이 그럴 것입니다. 제발 의사들이 경쟁하기보다 환자를 위해 아낌없이 소통하고 협력하여 최선의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제도적, 구조적 변화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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